뮤지컬 ‘벤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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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감탄의 연속이었다.

거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고만 한 남자가 목숨 건 질주 끝에 간절히 기다리던 신을 만나 용서로 구원받는다. 언젠가 한 번쯤 보고 들어 봤을 법한 이 이야기는 일찍이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루 월러스(Lew Wallace)의 동명 원작 소설(1880)로부터 시작해 이후 영화로도 수차례 제작되면서 명작으로 극찬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창작 뮤지컬로 탄생하며 또 한 번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무려 반세기 만이다.

2017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뮤지컬 ‘벤허’가 더욱 웅장하고 화려해진 모습으로 팬들의 기대감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방대한 스토리는 탄력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전개를 통해 몰입도를 높였고, 무려 14곡이나 추가된 넘버도 장면 간 연결고리를 더욱 탄탄하게 함으로써 개연성을 부여했다. 한국 뮤지컬 역사상 놀라운 흥행 기록을 세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작곡가의 세심한 작업을 바탕으로 탄생된 ‘벤허’는 <제2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 대상>을 포함한 다수의 수상 이력과 함께 이미 작품성과 흥행성을 널리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공연은 대사를 줄이고 송스루(Song-Through) 느낌을 강화하며 전체적인 흐름상의 완결성을 좀 더 확실하게 높이는 데 주력했다.

배우 이병준-민우혁-김지우
배우 이병준-민우혁-김지우 ⓒ뉴시스

뛰어난 역량의 배우들과 앙상블의 조화는 이 작품의 백미다. 이번 ‘벤허’에서는 카이, 한지상, 민우혁, 박은태까지 총 4명의 배우가 ‘유다 벤허’로 활약한다. 4인 4색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중 지난 시즌 ‘메셀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민우혁이 이번에는 ‘유다 벤허’로 캐스팅되면서 완전히 색다른 모습을 선사할 것을 예고하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된 ‘벤허’ 기자간담회에서 “강렬한 메셀라 연기가 이미지와 잘 맞았다고 생각했고, 벤허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이번에 새로운 제안을 통해 벤허 역을 맡게 되면서 메셀라의 잔상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에 주력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무대에 서는 카이는 최고의 기량으로 ‘유다 벤허’의 고뇌와 아픔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남다른 음성의 깊이와 힘, 노련한 무대 장악력은 과연 그가 왜 ‘벤허’여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복수의 칼날을 갈며 운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으로 향할 것을 결연하게 다짐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솔로 넘버 ‘운명’은 카이의 매력이 한층 돋보이게 하는 곡인 만큼 반드시 집중해서 들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더불어 이번 시즌 추가된 넘버 중 하나인 ‘살아야 해’도 빈틈없이 매력적이다. 걷잡을 수 없는 고통과 절망으로 괴로움에 빠진 유다 벤허의 감정과 동시에 불타오르는 복수심을 생생하게 표현한 곡으로 마치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지상의 ‘유다 벤허’는 에너지 넘치는 청년의 느낌이 강했다. 시간에 따른 인물의 입체적 변화에 중점을 두고 마지막까지 공을 들이려 노력했다는 그의 연기는 유연한 몸짓, 화려한 가창력과 한데 어우러지며 마치 가상의 인물을 실제로 불러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마지막으로 벤허’라는 인물이 가진 갈등과 고뇌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하며 연기했다고 언급한 박은태도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또 다른 색깔의 ‘유다 벤허’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이번 시즌 ‘벤허’는 전반적으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배우마다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채비를 단단히 했다.      

‘유다 벤허’의 친구였지만 결국 그를 배신하며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메셀라’역 문종원은 강인하면서도 목표지향적인 인물의 모습을 잘 나타냈고, ‘유다 벤허’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여인이자 굳건한 용기로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지혜로움의 상징 ‘에스더’역의 김지우도 감동적인 무대를 펼쳤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부르는 ‘그리운 땅’과 듀엣 넘버 ‘카타콤의 빛’은 김지우의 음색에 디테일이 어우러져 더욱 애절하다. 마찬가지로 명망 있는 가문의 로마 장군 ‘퀸터스’역으로 열연한 이병준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도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토록 훌륭한 주연 배우들 곁에는 완벽한 합을 자랑하는 앙상블이 있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떨어지는 군무나 역동적인 몸놀림, 곡의 흐름에 생동감을 더하는 합창은 ‘벤허’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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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무대 디자인과 영상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예루살렘과 로마 한복판에 서 있는 듯 생생한 공간구성은 공들인 의상과 소품까지 한데 어우러져 더욱더 실감나게 만들었다. 수많은 장면전환이 필요한 작품이다 보니 여기에 필요한 시간이나 공간적 제약이 적지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벤허’에는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해적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배로부터 ‘퀸터스’ 장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유다 벤허’의 모습이나, 작품 후반부 메시아의 죽음을 암시하는 언덕 위 십자가 이미지 연출도 인상적이다. 또, 최후의 질주가 펼쳐지는 회전무대 위 전차경주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독보적인 명장면이다.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마지막으로 이렇게 잘 만든 ‘벤허’가 한국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은 이 작품을 더욱 아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유다. 최근 외국에서도 수준 높은 경쟁력을 가진 한국 뮤지컬에 관심을 갖고 적극 투자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을 보더라도 앞으로 우리 창작 뮤지컬의 미래는 매우 밝아 보인다. 자칫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부담은 내려놓아도 좋다. ‘벤허’는 분명 누구에게나 사랑받을만한 작품이다.

아직도 공연장에서 받았던 그날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남아있다. 그동안 참 좋은 작품들을 꽤 많이 만나왔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벅찬 행복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뮤지컬 ‘벤허’가 관객들로부터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기를, 앞으로 더욱더 멋진 작품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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