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리얼돌. 의상과 작은 체구가 아동·청소년을 연상케 한다. 사진출처 =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 캡처
한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리얼돌. 의상과 작은 체구가 아동·청소년을 연상케 한다. 사진출처 =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 캡처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대법원의 ‘리얼돌(Realdoll)’ 수입허가 판결 이후 ‘아동 리얼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7일 대법원은 엠에스제이엘이 인천세관을 상대로 낸 리얼돌 수입통관보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 돼야 한다.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성인용품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리얼돌의 수입통관을 허가했습니다.

리얼돌은 ‘섹스돌’, ‘러브돌’, ‘단백질 인형’ 등으로 불리는 자위기구의 일종입니다. 사람의 실제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전신 인형으로, 주로 여성의 모습을 한 제품으로, 실리콘이나 TPE 재질로 제작됩니다. 구강, 성기, 항문 등을 통해 자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며 관절을 움직여 원하는 자세로 만들 수 있어 ‘여자친구를 대신하는 제품’으로 광고되기도 합니다.

이전까지 세관 성인용품 통관심사위원회는 ‘풍속을 해하고 여성의 수치심을 현저히 자극할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리얼돌의 수입을 불허해 왔습니다.

관세법 제234조 제1항은 ‘풍속을 해치는 서적·간행물·도화, 영화·음반·비디오물·조각물 또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품은 수출하거나 수입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또 같은 법 제237조 제6항은 ‘이 법에 따라 필요한 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 통관을 보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리얼돌의 수입이 가능해졌습니다.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리얼돌 수입·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자는 “한국에선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과 음란사진을 합성해 인터넷에 게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리얼돌도 안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본인도 모르게 본인의 얼굴이 리얼돌이 된다면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져 주는가”라고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를 호소했습니다. 이 청원은 청원 종료일인 지난 7일 26만3792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의 답변 요건을 충족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리얼돌 판매업체에서는 지인이나 연예인의 얼굴을 본떠 주문제작을 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아동·청소년의 모습을 한 신장 100~130cm 크기의 리얼돌이 판매되고 있어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아동 리얼돌이 소아성애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리얼돌 판매업체 홈페이지에서는 아동·청소년의 모습을 한 리얼돌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리얼돌 외에 ‘소녀’, ‘아이’, ‘세븐틴’ 등 아동·청소년을 연상케 하는 토르소형 자위기구도 ‘인기’, ‘추천’이라는 설명과 함께 판매되고 있습니다.

리얼돌 수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아동 리얼돌의 판매로 소아 성애 욕구가 해소돼 아동성범죄율이 감소할 것”이라고 옹호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화 부대표는 지난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남성의 성욕은 분출돼야만 하기에 성욕을 해소할 방법이 있다면 성폭력이나 성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성매매를 합법화한 지역의 성폭력이 증가한다는 전혀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다. 여성을 거래 대상으로 보고 비인격화하고 폭력과 혐오에 둔감해지게 하는 조치가 이뤄질 경우 오히려 성폭력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리얼돌 합법화 또한 이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해외에서는 아동 리얼돌의 제작·판매·소지 규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지난 3월 실제 아동의 신체 형태와 크기를 묘사한 리얼돌을 음란물로 분류하고 수입·유통·구매를 금지했습니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12개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집니다.

미국도 지난해 하원에서 아동 리얼돌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캐나다와 노르웨이 등에서도 아동 리얼돌의 구매·소지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로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도 아동 리얼돌 규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 등 의원 11명은 지난 8일 아동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아동신체형상기구를 제작하거나 수입, 판매 및 소지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정 의원은 “아동의 형상을 한 ‘리얼돌’까지 수입·제작·판매 등이 될 수 있어 아동이 성적 대상화되고 범죄에 잠재적으로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아동 리얼돌 수입, 판매 및 소지 행위를 처벌해 아동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성착취를 엄격히 금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아동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의도를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여성들이 리얼돌까지 질투한다’며 리얼돌 수입허가 판결을 비판하는 여성들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는 ‘질투’가 아닙니다. 저항하지 않는 인형을 여성의 모습을 만들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 있습니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리얼돌 수입허가로 인해 여성혐오가 더욱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고 분노하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 허가 판결에 따라 이제야 리얼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리얼돌 판매 자체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아동에 대한 성적대상화를 막기 위한 아동 리얼돌 규제방안이 속히 마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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