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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됨에 따라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기업들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각종 대책들도 잇따라 마련됐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노동시간과 업무방식을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의 ‘재량간주근로시간제’(이하 재량근로제)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재량근무제가 자칫 장시간노동 및 무료노동을 야기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재량근로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재량근로제 운영 안내서’를 발표했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재량근로제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 업무수행 방법을 노동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에 적용된다. 연구개발, 정보통신기술, 언론·출판 및 디자인, 법률·회계·납세 등 노동자가 스스로 업무수행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업무들이 대통령령에 따라 대상에 포함됐다.

이 제도의 근거법령인 근로기준법 제58조에서는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한 시간을 노동으로 인정하게 되는데, 서면 합의에는 대상 업무가 포함되고 사용자가 업무의 수행 수단 및 시간 배분 등과 관련해 노동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해선 안 되며, 노동시간은 서면 합의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산정된다고 정하고 있다.

합의된 서면에 명시된 간주노동시간을 실제 노동 시간으로 보기 때문에 노동자가 “더 많이 일했다”거나 또는 사용자가 “노동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간주되는 노동시간이 바뀌지 않는다.

재량근로제가 노동자가 원하는 시간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위처럼 노동시간을 초과하더라고 그 시간을 인정받을 수 없는 탓에 장시간노동 및 무료노동이 우려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재량근무제는 최근 정부에서 지양하도록 하도록 하는 ‘포괄임금제’와 매우 비슷하다.

포괄임금제는 초과노동 시간을 입증하면 고정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인데, 추가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일했는지 일일이 계산하고 이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보니 그동안 포괄임금제를 둘러싸고 장시간노동 및 무료노동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런데 재량근로제는 초과노동 시간 입증 자체가 무의미하다 보니 포괄임금제 보다도 노동자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재량근로제의 명확한 운영 기준 등을 포함한 가이드라인 ‘재량근로제 운영 안내서’를 발표했다.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 범위 구체화와 ‘사용자 지시가 가능한 범위’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 제시가 안내서의 골자다.

노동부는 “주 최대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따라 재량근로제 등 유연근로제 도입을 준비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며 “각 제도들이 취지에 맞게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어려운 점을 개선해나가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장시간노동 근절을 위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지만,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에 정부가 법을 어긴 사용자들에 대한 처벌유예 및 탄력근로제 확대도입을 추진해 무력화 시켰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했지만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현장의 어려움을 이유로 이 같은 안내서를 발표했다”며 “노동을 시키고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제도로,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에 역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앞장서 장시간노동과 무료노동을 부추겨 노동자들의 건강한 삶을 파괴하는 행위를 조장한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장시간노동과 저임금노동을 강요하는 사업자를 합법적으로 면해주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엄격한 사업장 관리감독과 위반 시 강력한 처벌을 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업종과 직무 특성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한편 반드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노 소장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사측의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취지 아래 여러 가지 제도가 나오고 있는 데 그중 하나가 재량근로제”라며 “각 업종과 산업 단위에 맞는 노동 유연화 제도가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노동자가 일정하게 약속된 노동시간을 조정해 유연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인데 악용되다 보니 명백한 장시간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보상이 안 돼 반발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며 “업종과 산업, 직무의 특성에 따라 효과가 있을 만한 곳에, 그리고 그 조직의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한 후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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