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창원시청 홈페이지 캡처
<사진출처 = 창원시청 홈페이지 캡처>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제의 잔재인 일본식 지명을 고유지명으로 정비·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1914년 4월 1일 한반도에 대한 행정구역 통폐합을 시도하면서 고유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을 시도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1996년 발행한 <국토>의 ‘땅이름 바로잡기’에 따르면 일본은 1914년 4월 1일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행정구역 통폐합을 실시한다. 이때 고유지명이 일본식으로 바뀌게 된다.

서원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박병철 교수가 지난 6월 <지명학>에 기고한 논문 ‘일제강점기 이후의 지명 관련 자료집 편찬과 지명’에 따르면 일본은 효과적인 식민지 지배와 군사작전용 지도의 표기수단 등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지명을 수집하고 정비했다.

서울 종로구를 기준으로 몇 가지 창지개명 사례를 살펴보면, 너더리(널빤지를 깔아 놓은 다리가 있는 곳)는 청계천의 흐름을 살피는 곳이라고 해 관수동(觀水洞)으로, 잣골(잣나무가 많은 곳)은 숭교방(崇敎坊)의 동쪽이라는 뜻의 동숭동(東崇洞)으로, 탑골(탑이 있는 동네)은 낙원동(樂園洞) 등으로 바뀌었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익선동(益善洞)은 일본이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익동(益洞)과 정선방(貞善坊)에서 한 글자씩을 따 만든 합성지명이다.

전쟁에 동원됐던 일본의 군함의 이름을 따 만든 지명도 있다. 인천 송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군함 ‘마츠시마(松島)’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처럼 일본이 한국의 고유지명을 바꿨으나 광복 이후 현재까지도 서울시의 경우 32%, 전국적으로 50% 정도가 여전히 일본식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식 지명을 고유지명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땅이름학회 배우리 명예회장은 “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에 대한 정비 시도가 있었으나 제대로 정비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명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일본이 욱천이라고 부른 서울 용산의 만초천은 1995년 일본식 이름이라는 이유로 만초천으로 변경해 고시가 됐다. 그런데 아직도 욱천고가도로 등 변경되지 않은 표지판이 붙어있다”며 “고시가 되면 하부조직까지 개선이 돼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배 명예회장은 “일본이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잃어버린 지명도 많다”면서 “인사동의 경우 관인방(寬仁坊)과 사동(寺洞)의 글자를 따서 만든 행정구역인데, 일본이 이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향나무골, 숭동, 절골, 탑골 등 자연지명이 다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식 지명을 바꾸기 위해 나선 지자체도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는 지난 6월부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본식 지명 정비사업’에 나섰다. 시민들의 제보를 받아 일본식 지명을 발굴해 고유지명으로 정비한다는 것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현재까지 5건 정도의 제보가 있었다. 올 연말까지 제보를 받아 고증을 거쳐 정비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지명을 바꿀 예정”이라며 “지명 정비가 필요한 경우 의견 청취, 공청회 등을 통해 충분히 안내하고 시민 혼란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광복 74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 일본의 ‘창지개명’으로 망가진 지명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정비하기 위한 관심이 촉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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