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99% 폭염 관련법 위반
현장서는 ‘어불성설’ 폭염기 대책
강제성 없는 권고사항 무용지물
쉬는 만큼 임금 줄어 일할 수밖에
“임금 보장되는 폭염 대책 내놔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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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찌는 듯한 한여름 폭염에 밖에서 근무하는 건설노동자들을 위해 정부가 건설현장 폭염기 대책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관련 노조에서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휴식시간 보장과 식수 제공, 휴식 장소 제공 등 내용을 담은 폭염기 권고사항을 시행규칙으로써 체계화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24조(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들을 위해 적정 휴식시간과 그늘진 휴게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또 고용노동부는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옥외 작업자 건강보험 가이드’를 배포했다. 해당 가이드에는 휴식 시간이나 작업 중단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기온이 35도 이상 지속될 때 가장 더운 시간대에 작업을 멈춰야 하며, 2~5시 사이에는 긴급작업이 아니라면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 밖에도 1시간 단위로 10~15분 휴식 시간을 제공해야 하며, 쉴 공간은 노동자가 근무하는 곳으로부터 가깝고 그늘진 곳으로 햇볕을 완전히 막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현장 노동자들에게 이 같은 법과 가이드라인은 어불성설인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목수, 철근, 해체, 타설 등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3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을 기준으로 볼 때 건설현장의 99%가 폭염 관련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휴식 장소 여부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의 66.9%가 ‘있긴 한데 부족하다’고 답했으며 ‘없다’는 응답자도 23.1%에 달했다. 휴식 장소의 햇볕 차단 여부에 대해서는 73.5%가 ‘아무 데서나 쉰다’고 답했으며, ‘햇볕이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자는 26.5%로 집계됐다.

오후 2시~5시 긴급작업을 제외 한 작업 중단 여부에 대해서는 ‘폭염에도 별도 중단 지시 없이 일 한다’는 응답자가 78%, ‘폭염으로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22.0%로 나타났다.

실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20대 노동자 A씨는 본지에 “계약할 때 휴식시간에 관한 조항이 있긴 하지만 건설현장 특성상 빨리 일을 끝낼수록 이득이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 쉴 수 없다”며 “정말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시간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증언했다.

A씨는 “식사를 마친 후 남은 시간 동안 휴식 장소에서 쉬려고 가더라도 이미 자리가 꽉 차있어 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아무 데나 누워서라도 쉬어야 할 수밖에 없다. 쉬어야 할 사람은 수십명, 수백명인데 수용 가능한 인원은 수십명도 안 되는 것 같다”며 “폭염주의보에 작업을 중단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현장에서 의미가 있는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부연했다.

건설노조는 정부에 실질적인 폭염대책 강구와 더불어 서울시의 휴식시간에 대한 임금손실 보전 대책을 공공공사 전역으로 확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7일 폭염경보 발령 시 시·자치구·투자출연기관 발주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오후 시간 실외작업을 중지하지만 임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조치에 나섰다.

폭염경보는 일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이어질 것으로 관측될 때 발령하며, 이때 작업시간을 1시간~2시간 앞당기고 경보가 발령된 오후에는 작업을 중단한다.

이와 더불어 폭염주의보가 발령됐을 때 필수공정 등 특수한 상황을 빼고는 실외작업을 되도록 자제하고 1시간당 15분 이상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노동부는 물, 그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고 TV광고까지 했다”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가 적정한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그늘진 휴게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처벌조항도 있다”며 “하지만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 내년 여름에도 TV광고는 나올지 몰라도 건설 현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폭염은 사회적 재난이다. 정부의 대책은 말만 있을 뿐 실질적인 예산 투자가 되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 폭염이라는 사회적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며 “서울시와 같은 휴식시간에 대한 임금손실 보전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공공공사 현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노조 전재희 교육선전실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노동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권고사항으로 강제성이 없다”며 “속도전이 관행처럼 굳어버린 건설현장에서는 시간이 돈이다. 빨리 공사를 마쳐야 이윤이 남기 때문에 아무리 더워도 이 같은 대책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선실장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입장이다 보니 쉬면 임금이 그만큼 줄어들어 폭염이라고 할지라도 일하는 걸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서울시에서는 1시간을 쉬든, 2시간을 쉬든 임금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노동자 스스로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대책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폭염은 재난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회적 비용이 들더라도 재난이니만큼 예산이 투입돼야 마땅하다”며 “서울시와 같이 더운 시간에 일을 못하더라도 급여에 대한 보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확장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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