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상품, 투자자 반발…불완전판매 쟁점
금융사 이자이익 축소, 금융상품 실적 의존↑
은행 도덕적해이, 허술한 제도 맞물린 참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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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DLS) 사태로 금융권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과 유럽 금리가 추락으로 투자자 손실이 현실화되면서 피해 투자자의 집단행동 등 반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파생상품 판매를 주도한 은행이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에 나섰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완전판매에 따른 도덕적 책임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대 95% 손실…개인투자자 피해 집중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판매 잔액은 이달 7일 기준으로 총 8224억원에 달한다.

관련 상품은 은행과 증권사 모두 판매됐다. 우리은행이 4012억원으로 가장 많이 판매했고 하나은행이 3876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국민은행은 262억원을 판매했다.

증권사에서는 유안타증권이 50억원, 미래에셋대우증권이 13억원, NH투자증권이 11억원 순이었다.

전체 판매잔액의 99.1%인 8150억원이 은행에서 나머지 74억원 규모는 증권사를 통해 판매됐다.

증권사는 영국이나 미국, 독일 등 주요국 금리를 기초자산 기준으로 만든 파생결합증권인 DLS를 은행은 DLS와 연계한 펀드상품인 DLF를 사모 펀드방식으로 판매했다.

고객은 개인투자자(3654명)가 7326억원을 투자해 전체 판매잔액의 89.1%에 달한다.

해당 상품은 금리가 오르면 투자자는 1~5%정도 수익을 얻는다. 문제는 반대로 금리가 내리면 투자원금까지 손실을 보는 구조라는 것이다. 금리가 오를 것을 기대하고 투자한 것과 달리 해당 국가 금리가 하락하면서 손실로 이어진 것이다.

이달 7일 기준으로 미국과 영국의 CMS 금리 연계상품은 6958억원 판매잔액 중 5973억원(85.8%)가 이미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만기까지 현재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경우 3354억원 손실이 예상된다. 평균 예상손실률은 56.2% 수준이다.

손실이 특히 심각한 상품은 독일 국채에 투자한 상품이다. 1266억원 정도 판매된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상품 또한 현재 금리가 만기(9~11월)까지 유지될 경우 1204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평균 예상손실률만 95.1%에 달한다. 여기에는 공적자금도 투자됐다. 고용보험기금 위탁운용주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지난해 7월 두 회차에 걸쳐 584억원을 투자해 476억원, 원금의 80%가량 손실을 봤다.

영국과 미국 금리와 연계된 상품의 경우 내년이 만기라 향후 금리 변동에 따라 손실을 만회할 여지는 남아있다. 하지만 독일 금리 연계 상품의 경우 올해 안에 만기가 종료된다. 현재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일정 수준을 밑돌면서 투자자들이 원금을 다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특히 퇴직금이나 전세금 등을 맡기 개인 투자자에 피해가 집중됐다.

투자자들은 금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등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쟁점은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피해 투자자들은 금융사가 상품 판매시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소비자원은 DLF와 DLS 투자자들을 모아 전액 배상을 요구하는 소비자 공동소송을 추진할 예정이다. 법무법인 한누리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참여할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 다음달 11일까지 신청을 접수받은 뒤 같은 달 말께 정식으로 소장을 접수한다.

고위험 상품, 불완전판매 논란 본격화

주요 은행 상대로 불완전 판매 피해 보상 싸움을 오랫동안 벌여온 키코(KIKO) 공동대책위도 ‘파생상품 피해구제 특별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집단행동에 동참했다. 이들은 시민단체와 연대해 판매 잔액이 가장 많은 우리은행을 상대로 형사고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융사들은 상품 위험성 등을 충분히 고지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경우 판매 금융사에 대한 신뢰도 타격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에 몰두한 은행 등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빚은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하나은행 등 금융기관이 판매한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은 사전에 정한 계약조건에 따라 특정자산을 사고팔 수 있는 ‘옵션 거래’ 상품으로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거래 과정이 특별히 복잡하고 까다롭기도하고 거래에 수반되는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

구조가 복잡하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이 다수의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은행에서 판매하는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이 해당 상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금리연계 상품의 경우 파생결합상품 중에서도 위험성이 더 큰 상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금리의 경우 하락세가 한 번 정해지면 반등 없이 방향성이 오랜 기간 지속하는 특성이 있어 손실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이익 낮아진 은행권, 금융상품 판매 주력 

특히 은행이 DLS와 같은 초고위험의 옵션매도 상품을 권유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은행들의 과도한 실적주의가 낳은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은행 등 금융사가 예대마진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줄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판매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 이자이익이 올해 상반기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9% 증가하는데 그쳤다. 반기별로 보면 작년 하반기에 비해 2000억원가량 감소했다.

대신 예대마진보다 비이자이익 비중이 크게 늘었다. 금융상품 판매와 연계된 자산관리부문 실적이 큰 영향을 줬다. 2016년 2500억여원이었던 하나은행 자산관리부문 수수료 수익은 불과 2년 뒤인 2018년 3590억여원으로 44% 증가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같은 기간 2310억여원에서 3490억여원으로 51% 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상품 역시 투자 전문 증권사보다 은행, 특히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판매가 집중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신한은행은 상품을 다루지도 않았고 국민은행은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로 일부 상품만 취급했다.

업계에서 은행이 과도한 투자상품을 권유하도록 계속해서 허용하는 한 ‘불완전판매’의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보니 금융사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강한 사후적 처벌과 고위험 옵션매도 상품 판매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소법 제정 등 제도적 보완 요구↑

옵션매도 상품은 개인 투자자가 장내 거래하기 위해서는 의무교육 기관 이수와 기본예탁금 예치 등 높은 자격 요건을 제시하며 거래 장벽을 높여놨다.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 옵션 매도가 금융상품으로 팔릴 때는 이 같은 진입장벽이 없다. 금융지식이 없는 일반 소비자도 유의사항 관련 확인서류 등에 자필 서명 몇 차례만 하면 파생결합상품을 쉽게 가입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수년째 계류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제정이 지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금소법은 여당 의원과 정부가 각각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금소법에는 금융회사의 금융상품 영업행위에 대한 준수사항을 담고 있다. 법안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지만 금융소비자가 자신의 연령·재산상황 등에 적합한 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상품의 위험보장범위, 금리·중도상환 수수료 부과 여부 등을 설명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금융 피해에 대한 금융사의 입증책임 전환, 설명 의무 등 위반에 따른 계약 해지 및 변경권 부여,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금소법이 제정되면 DLS와 같은 파생상품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도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금감원도 이번 검사에서 불완전 판매 여부를 중심으로 상품 구조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는 계획이다. 불완전 판매와 관련된 분쟁 조정에도 나선다. 지난 16일 기준 금감원에 접수된 DLS 관련 분쟁조정 신청건은 모두 29건이다. 불완전 판매가 확인될 경우 분쟁조정위원회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한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대규모 원금 손실 우려가 발생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DLS) 사태와 관련해 “이번 주 후반부터 실태파악을 위한 검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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