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숙·박은성·임채도·전명혁·한성훈·홍순권 엮음/356면/152*224mm/2만원/푸른역사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은폐, 왜곡된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을 밝힌 책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이 출간됐다.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과거사 정리의 역사적 의미와 그동안 은폐됐거나 왜곡돼왔던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책이다. 

대구 10월 항쟁부터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 해방 직후 좌우의 이념 갈등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뿐만 아니라 국민보도연맹사건, 미군의 민간인 포격 등 한국전쟁이라는 혼란한 상황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아래에서 발생한 시국사건, 간첩조작사건, 의문사사건 등 각종 인권탄압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진행되어온 과거사 청산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의 방향과 과제를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시대순으로 3부로 구성돼 있다. 한국전쟁 발발을 기준으로 나눴으며 해방 이후 1990년대 초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만 함께 묶기에 너무 비중이 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미처 취급하지 못한 여러 사건들이 제외됐다.

1946년 10월 항쟁은 현대 한국사회의 틀이 형성되던 초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자 전후 냉전 통치체제 구축의 출발점이 되는 사건이다. 1946년 10월 항쟁 이전의 지방 단위에는 애국세력과 친일세력의 구분만 있을 뿐, 좌익과 우익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항쟁 후 우익세력은 미군정의 지원을 받아 마을공동체 단위까지 하부조직을 형성하고 지방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이승만 정권은 이를 토대로 국가권력을 하향적으로 이식했다. 학살에서 생존한 지역민들은 패배와 학살의 공포로 인해 집단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트라우마는 전쟁 후 한국사회 전반에 ‘반공=빨갱이 혐오’의 사회심리 구조를 만들어내 냉전 통치체제 구축의 토대가 되었다. 이 세대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나중에 대구․경북 지역이 보수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는 친미 반공정권이 안정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31쪽).

제1부 〈전쟁 전야―이념 갈등 속의 민간인 학살〉은 해방 직후 좌우 이념 갈등으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 집단학살 문제를 다뤘다. 1장 〈민간인 학살의 시발점, 대구 10월 항쟁〉에서는 ‘좌익 주도의 폭동’이라는 시각 때문에 오랫동안 정부 차원에서 진상 규명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대구 10월 항쟁’이 발생한 원인과 전개 과정, 피해 현황, 향후 영향,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본다.

2장 〈제주 4․3사건과 브레이크 없는 국가폭력〉은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대회에 참가한 뒤 관덕정 광장을 향해 행진하던 참가자 행렬에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한 사건을 발단으로 1948년 4월 발생한 소요 사태, 그리고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제주 4․3사건을 살펴본다.

3장 〈여순사건, 빨치산 토벌 과정서 희생 확대〉에서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난 뒤, 1950년 9월 28일 수복 이전까지 약 2년 동안 전남, 전북,경남 일부 지역에서 군경의 토벌작전 과정에 비무장 민간인이 집단학살되고 일부 군경이 피해를 본’(진실화해위원회) 여순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순사건은 분단 반공체제의 이념 장벽 때문에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다가 1997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등 시민단체의 조사활동을 통해 수십 년 만에 세상에 드러나게 된 바 있다. 이 장에서는 반군과 지방 좌익의 경찰, 우익인사 학살뿐만 아니라 진압군의 민간인 학살, 토벌대의 산간 지역 민간인 학살, 군경의 반군에서 이탈한 군인들 학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국민보도연맹원과 요시찰인 등에 대한 대규모 학살은 국가기관이 계속해서 범한 민간인 집단학살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여러 지역에서 인민군과 좌익세력이 보복학살을 벌이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92쪽).

제2부 〈전쟁과 국가폭력〉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문제와 관련된 주요 사례를 가해 주체와 사건의 성격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해 정리했다. 대부분은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국군의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은 전쟁 이전에도 있었으며 전쟁 중 일어난 민간인 학살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만큼 함께 서술했다고 한다.

1장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특히 한국전쟁 중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살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과거사 기본법〉에 의거해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총칭해 ‘적대세력사건’으로 분류했다. ‘적대세력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인민군 점령 시기, 군경에 의한 수복 시기, 1․4후퇴 시기 등 세 시기에 일어났다. 주로 지방 좌익에 의한 희생과 인민군에 의한 희생사건, 빨치산에 의한 희생사건 등이 많았는데, 이 장에서는 공음면 정씨 일가의 희생사건, 영광 지역 희생사건, 당진읍 지역 집단학살사건 등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 등을 들여다본다.

2장 〈예비검속 희생자들〉에서는 국민보도연맹사건과 형무소 재소자 집단희생사건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이승만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원 등 요시찰인들에 대한 단속과 검거를 단행한 바 있다. 내무부 치안국이 1950년 6월 25일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이라는 통첩을 일선 경찰서에 하달하자 6월 말부터 9월 중순경까지 육군본부 정보국CIC와 경찰, 헌병, 해군정보참모실, 공군정보처 소속 군인과 우익청년들이 이들을 연행, 구금한 후 살해하는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했다. 형무소 재소자들 또한 이러한 명령에 따라 체계적으로 학살당했다. 대부분의 형무소에서는 무기징역 등 중형 이상의 정치·사상범과 주요 보도연맹원을 가장 먼저 학살했으며, 마지막으로 후퇴가 임박한 시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정치·사상 관련 미결수와 일반 보도연맹원을 학살한 이른바 형무소 재소자 집단희생사건이 일어났다.

3장 〈부역이라는 누명을 쓴 사람들〉은 인민군 점령 지역을 수복한 뒤 군경 또는 그 하부조직이 점령 치하에서 적에게 협력했거나 아군에게 위해가 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다수의 민간인들을 법적 절차 없이 처형한 ‘부역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강화도를 죽음의 섬으로 만든 강화도 민간인 집단학살사건, 경기도 고양군 금정굴 집단학살사건 등을 들여다본다.

4장 〈빨치산 토벌과 민간인 희생〉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한국정부에 저항해 봉기한 좌익 무장집단인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에 대해 살펴본다. 한국전쟁 중 빨치산 활동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일원의 산악지대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다. 군경의 토벌작전도 이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졌다. 이렇게 빨치산과 군경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전남의 영광, 영암, 함평과 경남의 산청, 거창, 함양 등지의 산간 지역 주민들이 양측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민간인 희생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5장〈난을 피하다 난을 만나다〉는 흥해읍 흥안리사건과 북송리사건 등 ‘해변 마을 피란민 폭격사건’과 단양 곡계굴사건 등 ‘내륙의 인민군 점령지 또는 교전지 폭격사건’을 통해 한국전쟁기 미군의 피란민 공격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1971년의 교련 반대시위, 1972년 이후 유신 반대운동, 1980년대 학생운동 등 반정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제 징집, ‘녹화사업’을 실시했다(269쪽).

제3부 〈독재정치하의 인권탄압〉은 역대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일어난 각종 인권탄압 사례들을 시국사건, 간첩조작사건, 강제징집과 노동운동 탄압 및 의문사사건, 언론탄압과 언론인 강제해직사건 등 네 가지로 분류해 정리했다. 

1장 〈시국사건〉에서는 1952년과 19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에 대항한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해 ‘간첩죄’를 덧씌워 조봉암을 사형시키고 진보당을 궤멸시킨 진보당과 조봉암사건부터 5·16쿠데타세력이 자행한 《민족일보》 폐간 및 조용수 사형사건, 김일성이 보낸 ‘특사’로 볼 증거가 있는 황태성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이른바 황태성사건, 유신체제하의 대표적인 인권침해사건인 인혁당사건과 민청학련사건 등 여러 시국사건을 통해 권위주의 정권의 인권 탄압 실태를 자세히 살펴본다.  

2장 〈간첩조작사건〉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권이 ‘국가 안보’라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정권 안보’를 위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을 다뤘다. 울릉도간첩단 조작사건 등 월북가족 관련 간첩조작사건, 납북 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 등을 통해 간첩조작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3장 〈인권의 사각지대〉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건을 살펴본다. 정권이 학생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악용한 강제 징집, 선후배와 동기들을 감시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녹화사업, 노조간부를 불법 연행하고 노조활동을 감시하고 도시산업선교회를 탄압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던 노동운동 탄압, 비전향 수형자를 전향시키기 위해 5단계의 공작을 행했던 전향공작, 민주화운동 탄압 과정에서 각종 공안기관들이 개입해 사인을 조작하거나 은폐한 여러 의문사사건 등을 세세하게 다룬다.

4장 〈언론탄압과 언론인 강제해직〉은 권위주의 정권 시기 벌어진 각종 언론탄압 및 언론인 강제해직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1974년 10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유신체제의 언론탄압에 맞서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하자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어 동아일보와 자매 회사의 광고를 해약하도록 했던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부터 ‘사이비 기자’ 척결과 언론사주의 비리 철폐를 내세워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길들이려 했던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그동안 자행된 국가폭력 사건과 이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고통을 잊지 않고, 더 이상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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