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항공직원연대 박창진 지부장
회항사건 발생 이후 5년, 극적으로 변화한 삶
여전한 업무상 불평등,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
“조씨의 행태, 사회가 만든 괴물 권력의 모습”
대한항공 적자행진, 전문경영인 체제 만들어야 
“공동체서 상처 회복,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은 최근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경영복귀에 대한 시각과 땅콩회항 이후 지난 5년의 심정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20일 서울 마포에서 대한항공직원연대 박창진 지부장을 만났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한국사회는 공익제보자들에게 전형적인 이미지를 덮어씌운다. 침울한 표정, 굳게 다문 입, 절제된 삶 같은 것이 그런 예시다. 그 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며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피해자 프레임. 대한항공직원연대 박창진 지부장이 땅콩회항 이후 수년간 겪고 있는 2차 피해다. 한 시민은 쇼핑에 나선 그의 모습을 보며 ‘방송에서 힘든 척 하더니 이런데 와 있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박창진 지부장은 한국사회의 편견보다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불가피했던 과거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또 현실이 절망스럽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사람이었다. 감히 말하자면 2014년의 피해자 박창진은 행동가로 변모했다. 한진그룹에게는 껄끄러운 일이겠다.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한지 5년, 박창진 지부장이 복직한지 3년, 대한항공 4노조인 대한항공직원연대가 출범한지 1년이 지났다. 직원연대가 출범한 이후 조양호 회장의 연임이 부결되며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지만 오너일가가 속속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당사자는 어떤 시각으로 오늘을 바라보고 있을까? <투데이신문>은 박창진 지부장을 만나 대한항공의 현실과 지난 5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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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지부장은 여전히 업무상 부당한 대우와 내부 감시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최근 팔 부상도 입게 됐다고 전했다. ⓒ투데이신문

끝나지 않은 2차 피해, 공익제보자의 현실

Q. 최근 팔을 다쳤다고 들었다. 부상은 심한가. 

이중으로 적재된 면세품 박스가 27개 있었는데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쌓여 있었다. 그걸 꺼내다가 다쳤다. 무게가 너무 무겁더라. 무게를 알 수 없으니 한 손으로 들었다가 손목이 꺾였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동료에게 부탁할 수 없다. 또 뒷말이 나오기 쉽다. 완치까지는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흘정도 휴가를 냈는데 이후에는 바로 복귀해야할 듯싶다. 

Q. 여전히 업무상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나.

팔 부상도 제 지위 하락에 기인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정도 경력이 되면 사실 비행기에서의 허드렛일에서는 제외가 되는데 기내면세품 판매 업무를 두달 연속 한번도 쉬지 않고 배정 받았다. 이게 꽤 힘든 일이라 보통 갈 때 하면 올 때는 안 시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지만 계속 맡고 있다. 상대적으로 편안한 업무라고 볼 수 있는 퍼스트나 비즈니스 객실 업무는 거의 배정 받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자동 전산처리로 업무를 배정해 불이익이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스케줄을 보면 인위적으로 조정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기피 노선이라든가 휴식공간이 없는 열악한 기종 등에 집중적으로 배치되기도 한다. 저 같은 내부고발자들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너는 내쳐진 존재야, 네 주제를 알아, 너는 뒷방 신세야’라는 걸 간접적으로 전달 받는다. 

Q. 내부의 감시나 곱지 않은 시선도 이어지고 있다고.

통상적으로 팀장과 부팀장이 장거리 비행을 함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거의 항상 두 사람이 동행한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또 복직 이후 외부 인터뷰를 하면 ‘누구 허락을 받고 인터뷰를 진행했냐’는 지적이 나오고,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사인이나 사진, 대화를 원하시면 응대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허락 없이 사진을 왜 찍었냐’는 말까지 듣는다. 지속적으로 행동을 제약받고 있다고 느낀다. 

이 외에도 박창진은 비행기에서 거울만 처다보더라, 화장실을 5번 가더라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비방들이 난무한다. 14시간 비행하는데 화장실 5번이 많은 건가. 이렇게 제가 폄하의 대상이 되길 원하는 집단이 있고 조직의 해를 끼치고 명예를 실추시키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이 있다. 사실 상당한 스트레스다. 

Q. 복직 이후 팀장직에서 밀려났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한국어와 영어를 못한다고 팀장에서 배제됐다. 2016년 복직 이후 10번의 시험을 쳤는데 R발음이 안 좋다. F발음이 안 좋다라는 식으로 탈락했다. 복직 이후 10번의 시험을 쳤는데 안 됐다. 국가행사에서 생방송 사회를 맡았는데 한국어를 못한다고 배제한다. 굉장히 주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직접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외부 공인 시험을 통해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토익 스피킹에서도 150점을 받았는데 대한항공 평균 점수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제게 적용되는 것처럼 엄격하게 기준을 들이대면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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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4년 JFK에서의 그날을 회상하며 “사회적 죽음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투데이신문

그날의 기억, 그리고 5년의 시간

Q. 2014년 JFK에서의 일어난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비행기에서 내려 혼자 공항에 남겨졌을 때 어떤 심경이었는지?

사회적 죽음을 예감했다. 책에서도 기술했지만 제가 서있는 그 공간이 관처럼 땅으로 꺼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덤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사회적 인간이라는 것이,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야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나. 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것들이 갑자기 순식간에 모두 사라진 순간이었다. 근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는 거다. 횡령을 했다든지, 갈취를 했다든지 부정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제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죽임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막연한 예감이 있던 것 같다. 

뉴욕으로 넘어갈 때는 VIP들을 담당하며 스스로도 특별한 대열에 포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은 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뉴욕공항에서 출발할 때 저를 이코노미석 제일 뒷자리, 화장실 옆에 앉혔다. 원래는 비즈니스석을 주도록 돼 있다. 그날 비어있는 좌석도 많았다. 그날 티켓을 아직도 갖고 있다.  

Q. 당시의 정황이 담긴 여러 글이 있지만 조현아가 화를 냈던 이유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조씨는 왜 화를 냈다고 생각하나.

저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어이가 없었고 혼돈상태였다.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해보니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권력자 집단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조씨는) 내가 갑질을 한다는 생각도 없고, 내 밑에 있는 사람이 을이라는 의식도 없고, 내 기준에서 마음에 안 들면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을 한 거다. 근데 그 사람의 기준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그날 본인의 기분이었든지, 아니면 당시 함께 있던 승무원이나 저의 어떤 행동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회사에서 고객응대가 우수하다고 뽑혀간 직원들이 별안간 선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본인이 갑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기대치를 우리가 맞추지 못했다고 느낀 것 같다. 그 사람에게는 그게 일상이었던 거고 그걸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그게 고착화돼서 그런 행동이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 부당함을 표현했다.

왜 제가, 승무원으로서 이미 많은 상황을 겪었던 사람이 그 순간 도드라진 행동을 했냐고 묻는다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던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제 위치가 아무리 을이지만 을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에 항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들은 아시다시피, 저를 사회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지라시가 유포되고 회사의 입장이 담긴 기사들이 나왔다. 길을 가던 평범한 시민들도 제가 쇼핑하는 모습을 보고 비난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한국사회는 을은 무조건 감내하고 참아야 한다는 시각이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를 매일 현장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 구조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에 부당함을 표현하고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 그런 게 저를 비롯한 많은 공익제보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자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Q.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복직했다.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

저는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세상을 살아왔다. 또 열심히 살아 온 만큼 한 직장에서 높은 지위에도 올랐다. 회사에서도 승객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날 이후 모두가 적으로 돌아섰다. 조현아에게는 두 쌍둥이의 엄마이자 대한항공 물류사업을 이끌던 가문의 딸이라는 동정여론이 일 때, 제 인생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미래도 보장할 수 없었다. 저희 어머니는 노환으로 누워계신데 TV에 제 얼굴이 계속 나오니 사회적 살인 이상의 공포를 느꼈다. 큰누님은 말기 암인데도 가족들에게 말도 못하고 저를 돌봤다. 우리사회가 강자를 대변하는데 익숙하고 무한대의 동정표를 주는구나 한국사회의 성실한 시민으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 순간 사회는 약자에게 철저하게 차가웠다.  

죽음에 대해 고민할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 누님이 삶의 의지에 대해 정말 많은 말씀을 해주셨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결심했다. 배경이나 사회를 탓하지 말기로 했다.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거나 개혁을 이룬다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포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은 생존을 생각했고 그건 대한항공으로의 복직을 의미했다. 물리적으로도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가족들이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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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지부장은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경영복귀를 비판하며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투데이신문

오너일가의 경영 복귀, 권력의 사유화

Q. 지난 3월 故조양호 회장의 연임이 좌절됐을 때만해도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조현민 전무가 한진칼로 복귀했고 이명희씨는 한국공항과 정석기업의 고문으로 복귀했다. 오너일가의 경영복귀를 어떻게 보고 있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단번에 개혁과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故조양호 회장의 불신임안이 통과됐을 때는 선한 의지와 세상의 변화가 일치하는 경험이었기에 희망을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포기에 대한 마음이 목젖까지 올라와 있던 때라 더욱 의미 있었다. 다만 오너일가가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60세가 넘도록 가정주부로 있던 이명희씨가 계열사 고문으로 와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다. 이건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의미다.

Q. 조원태 회장의 선임과 최근의 경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지금의 조원태 회장을 보면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나 변화 의지는 없다고 느껴진다. 노조를 탄압해 민주적인 의견을 감쇄시키는 기존의 악습을 되풀이 하고 있다. 선대 경영진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경영을 해야 한다. 외부에서는 대한항공의 승무원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지표가 나온다. 입사 3~5년차이지만 한 번도 휴가를 못간 직원이 있다. 일반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아프거나 죽어야만 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승무원을 안 뽑고 인건비를 줄여서 나온 결과가 2분기 1000억원 적자다. 이 가운데 故조양호 회장은 퇴직금으로 700억원 가량을 수령했다. 대한항공을 찾는 고객은 넘쳐나는데 제가 다니는 25년동안 적자가 나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조원태 회장은 권좌만 승계할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Q. 조현아도 지난해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를 시도했다가 여론이 악화돼 물러난 적이 있다. 최근에 다시를 복귀설이 나오고 있는데 칼호텔 대표는 어떤 의미를 가진 자리인가.

칼호텔은 조현아의 입장에서는 언젠가 다시 자기 세력을 취합해 경영 전면으로 나설 수도 있는 자리다. 예전 평창올림픽에서 갑자기 등장했던 때를 생각해보라. 칼호텔은 무엇보다 방만경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주력인 대한항공에 집중하지 않고 오너일가들이 서로 나눠먹고 싶으니 만든 호텔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대한항공이 수조원을 들여 LA에 호텔을 지었는데 몇 년째 마이너스 수익을 내고 있다. 대한항공 노동자들이 피땀흘려 번 돈을 내부거래를 통해 사실상 착복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승무원들의 호텔비는 100달러 이하로 한정해서 쥐까지 나온다는 불만까지 제기된다. 모 해외지점에서도 비용에 맞춰 호텔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Q. 대한항공이 달라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나.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제가 왜 이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너일가는 자신들의 행동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고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현시점에서는 어쩌면 변화의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최근 일본불매운동이 삼성에 대한 면죄부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더 그렇게 느꼈다. 70일 동안 삼성노조파괴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에 대한 기사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시점에서 큰 희망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고 해서 모른척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더라. 예전에는 저도 제가 그런 사람으로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또 변화의 계기는 분명 올 거라고 생각한다. 2018년 대한항공 가면집회부터 시작해 노조가 발족한 지금까지 앞장서서 투쟁한 이유는 대한항공이라는 조직 안의 사람들만이라도 민주적인 눈을 뜰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더 큰 공동체로 퍼져 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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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한항공직원연대를 통해 한국사회 공동체의 연대를 키워가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투데이신문

새로운 시도, 대한항공직원연대 출범 1년

Q. 대한항공직원연대가 출범한지 1년이 넘었다. 지난 1년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일단은 일반노조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왔다. 내부 직원들의 이권과 노동권 이슈를 갖고 국회를 찾아갔다. 토론회도 개최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걸 광장으로 가지고 나와 집회도 진행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냈고 압력행사의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을 직접 만나 회사에 어떤 경영상 문제가 있고 노동권 침해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전달했다. 이후 처음으로 대한항공에 근로감독관이 파견돼 실사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수박 겉핥기로 진행돼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지만 의미 있는 변화였다. 동료들의 동참이 미진한 점은 실망스럽지만 이건 반대로 얘기하면 이 같은 활동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우리 책임도 있다. 그런 자기반성을 하면서 발전과 개선을 거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일반노조와의 갈등은 점점 격화되는 듯하다.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인가.

일반노조는 우리가 비난을 했다고 하는데, 임금교섭을 언제하냐는 질문을 공격이라고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서로 비판도 하고 견제도 할 수 있는 관계 아닌가. 일반노조의 예산은 30억원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힘을 과연 자신들을 위해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 조합원을 위해 힘을 사용하지 않고 또 그걸 방관하는 내부의 노동자들이 있다. 막연하게 일반노조는 회사와 한몸이라고 생각해 문제제기 하지 않는 기조도 있다. 일반노조 조합원들이 정당한 조합 활동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Q. 2000년대 초반 노조 파괴 전문가의 활동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최근 그런 움직임을 목격하거나 체감한 적은 없었나.

예전에 노조파괴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인사의 기틀을 닦아 놨다. 많이 보인다. 행사를 진행할 때라든지, 익명게시판에 대한 신고라든지, 인사팀 직원들이 집회 현장에 나타난다든지. 직원들 입장에서는 회사가 국가처럼 통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다. 

직원연대는 처음 700여명으로 시작했는데 부당징계를 당하는 직원들이 생기자 지금은 많이 줄었다. 일례로 한번은 직원연대 소속 승무원이 상급직원으로부터 면담을 하자는 얘기를 들었는데 처음에는 다른 대화를 이어가다가 대뜸 “회사에 불만이 많아? 그러니까 직원연대에 든 거 아냐”라는 말을 했다는 거다. 그런 압박을 계속 주는 거고, 이 걸 지켜본 다른 직원들은 이런 상황을 피하는 게 안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들이 대한항공 역사에 뿌리 내리고 있다. 

Q. 과거 노조활동을 하던 동료들을 도외시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는데, 이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는지.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하고 2만명의 직원들이 제게 등을 돌렸을 때, 해직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연락을 해줬다. 제 책에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이라는 꼭지가 있는데 성인들이 자기 문제에 대해 모르는 경우는 없잖은가, 그래서인지 옆에서 조용히 지지를 보내주는 게 큰 힘이 된다. 그분들도 비슷한 사례를 겪어봤기 때문에, 타인들에게 내침을 당해봤기 때문에 제게 먼저 다가와 위로를 해줬다. 

Q. 대한항공직원연대의 앞으로의 과제와 계획은.

직원연대 규모가 줄었다고 해서 실망감을 느끼진 않는다. 혼자 대한항공 전체 직원 2만명과 대립한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바뀌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숫자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200여명이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다른 곳과 연대를 하며 사회적 소명을 갖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공동체의 공감대를 키워갈 수 있는 연대의 장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게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되고 그런 발화점들이 많아지면 또 다른 공익제보자들도 나타나지 않겠나. 그런 확산이 변화를 만들어 낼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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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지부장은 아직도 때로 악몽을 꾼다면서도 과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투데이신문

개인 박창진의 변화, 새로운 삶의 모색

Q. 땅콩회항 이후 스스로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가끔 누더기가 돼있는 꿈을 꾼다. 저라는 사람이 갈기갈기 찢기는 꿈도 꾼다.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화형을 당하는 꿈도 꾼다. 전에는 없던 그런 상처가 생긴 게 제게 있어서는 아주 큰 다름이다. 

하지만 저라는 한사람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이기적인 사회구성원에서 지금은 공통체에 대해 생각하고 그 속에서 나를 규정하고 있다. 그걸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공포감과 상처감을 회복해 나간다. 그것도 아주 큰 변화다. 
 
Q. 과거의 삶이 더 나았다고 생각하나, 지금의 박창진이 더 낫다고 생각하나.

대답하기 어렵다. 잃은 게 너무 많다. 그렇다고 불만이 넘쳐나는 건 아니다. 종교적으로 바라본다면 제게 감당할 수 있는 문제들을 준 것 같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숙명이라고 받아들였다. 

다만 한 가지는 되돌리고 싶은 게,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건 참 불편하다. 우리가 대단한 정의나 높은 가치의 도덕을 얘기하는 게 아닌데, 사회의 부당함을 말한다는 이유로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행동에 대한 제약이 커졌다.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익명의 공익제보자가 되고 싶다. 

Q.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저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어디 가지 말라면 안가는 타입이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사회문제도 노조는 나쁜 거야 하니 멀리했다. 그러다가 제 사건이 터지고 해결해보려 하니 아무도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힘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됐다. 그런 사람이 한번 전화를 하니까 문제가 해결은 안 되지만 귀는 열더라. 

그런 의미에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노동자 운동이라든지 시민운동도 압력단체로서의 힘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권리에 대한 정치적인 눈을 떠야 한다. 정치인들이 다수의 국민을 대변하는 게 아닌 이상, 우리는 당연히 정치적인 사회인, 시민이 돼야 한다. 그리고 제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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