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한달, 긍정적 변화 있어
폭언·모욕·강요 등 괴롭힘 제보 2배가량 증가해
시행령 개정으로 ‘5인 미만’ 적용 대상 포함시켜야
직장 문화 민주적·수평적으로 개선돼야 회사도 발전
변하지 않으면 사문화로 끝나…직장인들 의지에 달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 ⓒ투데이신문 최성찬 인턴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국회에서 오랜 시간 잠자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깨어나 시행된 지도 한 달여 시간이 흘렀다.

모호한 규정, 법 처벌 없는 규정, 조직문화 훼손 등 다양한 우려 속에 첫발을 내디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저 관행처럼 여겨졌던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임을 노동자들이 인식하게 됐고, 기업들도 이 같은 사내 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있는 과제들도 많다. 5인 미만 소규모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또 이 법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알고는 있지만 괴롭힘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이 없고 회사의 자체적 조사결과에 따라 징계를 내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후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망설이는 노동자도 존재한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집을 지었으니, 이제는 그 집을 채워나가는 일이 남았다고 했다. 법 개선, 직장 문화 개선, 당사자 간 연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박 운영위원은 말한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8일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직장갑질119 사무실에서 박 운영위원을 만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한 달’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 ⓒ투데이신문 최성찬 인턴기자​

Q.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 정도 흘렀다. 변화가 있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직장갑질119가 문 열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제보 유형은 해고나 산업재해 등 기존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70% 이상이었다. 반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말하는 폭언이나 모욕, 명예훼손, 강요 등은 28% 수준이었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직장 내 괴롭힘 제보 사례는 52~56% 정도다. 고용노동부에서도,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던 문제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고도, 제보도 하지 않았었는데 법 시행 이후 2배 가까이 늘어난 건 직장 내 괴롭힘, 관련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고 평가된다. 긍정적 현상이다.

Q.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돼 처벌된 사례가 있나.

현재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우선적으로 회사에 신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고 자체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하고 징계 절차를 밟게 되는데, 아직은 시기적으로 조사나 징계위원회가 꾸려지는 단계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에 신고될 경우에는 이를 진정사건이라고 하는데 처리해야 하는 기한이 25일 이내다. 그러나 기한 내 이뤄지기가 쉽지 을 뿐더러, 기간 연장도 한차례 가능하다. 때문에 노동부 신고를 통해 가해자에 대한 조치와 피해자 보호가 이뤄졌다는 제보도 아직 없다. 아직 과정에 있는 단계다.

Q. 이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기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우선 노동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유형을 매뉴얼을 통해 명시하고 있지만 기준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노동부가 매뉴얼에 명시한 16가지 구체적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명시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줘 업무환경을 악화시킨 행위, 이로 인해 노동자가 병원 치료를 받았다면 명백한 괴롭힘 행위다. 어느 기업에서는 상사가 업무 시간에 후배에게 인터넷 쇼핑을 요구했다. 과거에는 아무 일도 아니었겠지만 이제는 ‘사적 용무지시’,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이 같은 사례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지금보다 기준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사례 투데이신문 재구성 <자료 출처 = 고용노동부>

Q. 괴롭힘 당했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할 지, 신고를 하는 게 옳은 것인지 확신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가장 좋은 건 회사에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직원이 1000명 정도 되는 어느 기업으로부터 의뢰받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무기명 조사를 실시했었는데 140건 상당의 신고가 접수됐다. 익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고한 노동자들 다수가 보복이 두려워 ‘인사과에서 모르게 해달라’, ‘직장갑질119에서만 알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목적 중 하나는 사내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인지하고 제보자를 보호하는 한편 사내 문화를 변화시킬 의사가 있다면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Q. 회사나 노동부에 신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괴롭히는 게 아니므로 피해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대체로 폭언, 모욕, 사적 용무지시 등은 기업 문화이거나 악질 상사 한 사람이 여러 후배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증거를 챙기는 게 어렵진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을 은밀하게 따돌리고 괴롭힐 경우는 입증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때문에 제일 중요한 건 기록이다. 꼼꼼하게 기록해야 한다. 예컨대 ‘부장이 나에게 욕을 했다’가 아니라 몇 시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욕을 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갑질 일기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유력한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 사실 이런 괴롭힘 상황이 한번 일어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기 때문에 반드시 녹음할 기회가 찾아온다. 직장갑질119에서도 상담할 때 괴롭힘 상황이 또 발생할 테니 미리 녹음기를 준비해 둘 것을 권유한다. 또 우리가 제시하는 직장 내 괴롭힘 대처 십계명 중 하나인 ‘가까운 사람과 상의하기’도 중요하다. 지인과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기록이 다 증거가 될 수 있다.

Q. 사내 자체조사 방식이 피해 축소·무마 등 부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은 없나.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노동부에 신고를 하면, 이를 접수한 노동부가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법적으로 처리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어렵다. 회사 신고했을 때 사측은 피해 사실을 축소·무마하고 싶을 수 있다. 이것이 실행에 옮겨지면 노동자는 노동부에 신고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 법의 한계이기도 하다. 노동부 조사를 통해 괴롭힘 사실이 드러났고 조치하라고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았을 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으로 처벌할 순 없지만 노동부에는 근로감독이라는 수단이 있다. 비용 부담이 없는 직장 내 괴롭힘 조치도 취하지 않는데 다른 건 지키겠는가. 근로감독을 실시해 다른 문제를 밝혀내야 한다. 이 같은 힘있는 정부기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네거리에서 열린 갑질금지법 시행 맞이 캠페인 ⓒ뉴시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네거리에서 열린 갑질금지법 시행 맞이 캠페인 ⓒ뉴시스

Q.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된 점도 논란을 빚었다. 

이 또한 해당 법의 한계 중 하나다. 이 문제는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들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비용이이 필요한 사안에 있어 영세사업자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3종 근로수당이라고 불리는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장근로수당은 50%를 더 줘야 하는데, 영세사업자는 부담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일부 특정 조항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은 근로기준법 시행령만 바꾸면 되는 일로, 금전적으로 부담될 소지가 없다. 노동부가 의지만 있다면 무조건 가능하다고 본다. 직원 존중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인데 당연히 5인 미만 사업장도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 5인 미만은 괴롭혀도 되고, 5인 이상은 괴롭히면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관련 시행령 개정을 올해 하반기 최대 과제로 보고 있다.

Q. 젊은 노동자들은 미디어나 SNS 등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법을 많이 접할 수 있는 반면 고령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그렇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는지 묻고 싶다. 그나마 직장갑질119에서 요구해 최근 지하철 같은데서 홍보되는 편이다. 지자체에서 적극 홍보에 나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이런 법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괴롭힘을 당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일각에는 ‘후배 무서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겠다’는 의견도 있다.

소위 그들에겐 ‘좋은 시절 다 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아무 말이나 막 해온 게 문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직장 생활을 해온, 폭언과 폭력에 익숙한 세대다. 요즘 세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세대 간 문화충돌이 발생하는 것 같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 ⓒ투데이신문 최성찬 인턴기자​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 ⓒ투데이신문 최성찬 인턴기자​

Q. 무사히 법 시행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적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이 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우리가 ‘집은 있는데 냉장고도 없고 유리창도 없다’고 비유했다. 부족한 법은 맞다. 그러나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집이긴 하지만 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이 같은 법이 처음 만들어진 국가는 스웨덴이다. 1994년에 만들어져 25년이나 됐다. 호주에서는 해당 법을 어겼을 때 징역 10년까지 처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 태움 사건처럼 괴롭힘으로 죽는 사람도 있는데 징역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처벌 조항이 없긴 하지만 법은 만들어졌으니 앞으로는 그 내용을 개선해나가야 하고, 최우선 과제는 앞서 말했던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이다.

Q. 제도적 측면 외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직장 문화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수직적이고 위계적이며 폭력적인 직장 문화가 민주적이고 수평적으로 바뀌었을 때 생산성도 높아진다. 회사 발전을 위해서라도 직장 내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

Q. 당사자의 의식 변화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당하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업종별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차이나기 때문에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쳐야 한다. 직장갑질119에서도 직종별 온라인 모임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 늘려갈 예정인데 이 모임에서 같은 업종 노동자들끼리 고민을 나누고 서로 지식을 공유하면서 문제를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

Q. 가장 이상적인 직장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직장은 시키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찾아서 자발적 노동을 한다. 회사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주느냐에 따라 애사심이 생기고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하기 마련이다. 기업이 이를 명심한다면 좋은 직장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1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괴롭힘을 신고하면 가해자에 대해 징계가 내려지도록 기업이 변해야 한다. 만약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법은 사문화될 수 있다. 그것이 가장 두렵다.

용기를 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지속할 것인지, 바꿀 것인지는 결국 당하시는 분들 의지에 달려있다. 혼자서는 어려울 수 있다. 직장갑질119 등과 같은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용기를 내는 만큼 바뀔 수 있다. 법제사법위원회에 묻혀있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괴롭힘을 제보해준 직장인들 덕분에 빛을 보게 됐다. 처벌조항이 없는 반쪽짜리 법이지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보복 처벌 조항이 있으니 용기 내시길 바란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