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들이 넘쳐 나는 불법보조금 세상
정직한 소비자들 ‘호구’ 되는 시장형성
고객유치 혈안, 보조금 규모 7조원 추정 
“단통법 개정하고 분리공시제 도입해야”

ⓒ뉴시스
삼성 갤럭시노트10이 출시되며 이동통신사들의 불법보조금이 다시 판치는 모습이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새로운 휴대폰 단말기가 등장할 때마다 불법보조금이 기승을 부린다. 단통법(이동통신단말기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무용론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2014년 과도한 휴대폰 보조금을 규제하기 위해 단통법을 도입했다. 이동통신사간 경쟁비용을 절감시키면 통신요금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통사들은 정부의 눈을 피해 불법보조금으로 이용자를 늘리고 높은 요금을 적용해 이를 보전하는 형국이다. 높은 통신요금은 5G시대 개막과 함께 다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선택약정으로 요금의 25%를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5G의 경우 데이터용량이 적은 요금제를 사용하는 게 사실상 무의미한 만큼 애초에 고가의 요금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단통법이 오히려 저렴하게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는 길을 불법으로 막아놨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더욱이 법 취지와는 반대로 이통사들의 마케팅 비용도 되레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에서는 단통법에 대한 철저한 감시‧감독과 폐지 및 개정을 추진해 역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
ⓒ민생경제정책연구소

불법보조금 횡행, 제값주고 사면 ‘호갱’

삼성이 갤럭시노트10을 출시하며 휴대폰 시장이 다시 출렁이는 모습이다. 갤럭시S10이나 V50 출시 때보다는 단속이 강화됐다는 의견도 들리지만 여전히 불법보조금이 횡행하고 있다. 

불법보조금은 은밀한 형태로 지급된다. 자신들만 이해하는 은어를 이용하며 개인 카카오톡은 물론 텔레그램이나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그날의 가격이 개별적으로 공개된다. 판매점들은 이런 가격 정보를 은밀히 흘리며 고객을 유인하고, 소비자들은 암암리에 정보를 접한 후 구매에 나선다. 

실제로 온라인에 올라온 갤럭시노트10의 구매 후기를 보면 ‘ㄱㅂ 할원 10, 요금제 10, 6개월 유지, 부가 2개 2개월 유지’ 같은 글들이 올라온 걸 볼 수 있다. 유사한 글에서 볼 수 있는 ‘ㄱㅂ’은 기기변경, ‘ㅂㅇ’는 번호이동, ‘ㅍㅇㅂ’은 페이백, ‘할원’는 할부원금, ‘현아’는 현금완납을 의미한다. 

위의 후기를 간단히 설명하면 할부원금 10만원의 가격에 휴대폰을 기기변경 했다는 뜻이다. 다만 판매점은 여기에 10만원대 요금제 6개월 유지와 부가서비스 2개 2개월 가입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밖에도 다른 글에서는 ‘현아 7, 할원 7’ 같은 내용도 게재되는데 이 역시 현금으로 7만원을 완납해 휴대폰을 구입을 약정하거나 할부원금 7만원에 계약을 맺었다는 말이다. 

신규 휴대폰 판매를 위한 불법보조금이 판을 치면서 기존에 출시된 휴대폰 가격경쟁도 덩달아 과열되는 모습이다. 8월 말 기준 메신저 등을 통해 공유되는 불법보조금 적용 가격표를 보면 갤럭시노트10은 20만원대부터 시세가 형성돼 있고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S10 5G는 10만원대, V50은 거의 공짜로 계약 조건이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시세는 불법보조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갤럭시노트10 플러스의 출고가는 256GB 기준 139만7000원이다. 갤럭시S10 5G 역시 동일한 가격에 출고됐으며 V50도 119만원으로 공개됐다. 하지만 불법보조금이 시장가격을 형성하면 출고가나 공시지원금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대리점을 통해 정상적인 가격으로 휴대폰을 구매하는 고객이 이른바 ‘호갱’이 되고 마는 역차별이 벌어진다. 

갤럭시노트10의 출시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4일 LG유플러스는 건전한 유통망 확립이 필요하다며 경쟁 이통사에서 고액의 리베이트가 지급되고 있다고 신고했다. ⓒ뉴시스
갤럭시노트10의 출시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4일 LG유플러스는 건전한 유통망 확립이 필요하다며 경쟁 이통사에서 고액의 리베이트가 지급되고 있다고 신고했다. ⓒ뉴시스

이통사들 제살깎기 경쟁, 60만원대 고액 리베이트

판매점들은 이통사들이 주는 수당을 고객에게 주는 방식으로 불법보조금을 지원한다. 이통사들이 이를 묵과하고 있으며 리베이트를 통해 오히려 부추긴다는 의혹은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심지어 LG유플러스는 경쟁사인 SK텔레콤과 KT를 불법보조금 살포혐의로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4일 단통법에 따른 실태점검과 사실조사를 요청하는 신고서를 방통위에 제출한 것이다. 

LG유플러스는 ‘경쟁사 모델별 리베이트 단가표’를 제시하며 타 이통사들이 공시지원금 외 50만원~60만원대 고액 리베이트를 지급한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90만원~100만원을 상회하는 리베이트도 있었다는 주장을 내놨다. 

LG유플러스는 방통위 신고가 시장 과열을 방지하고 건전한 유통망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지만, SK텔레콤과 KT는 적반하장이라고 응수했다. 업계에서는 갤럭시노트10 출시를 앞두고 자금 동원에 부담을 느낀 LG유플러스가 제살을 깎으면서까지 경쟁사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통사들이 신규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불법보조금을 이용한 구매가 일반화되는 기조를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갤럭시노트10 사전판매를 예약했던 고객들은 판매점들의 보조금 지원이 예상보다 적게 책정되자 대거 취소에 나섰다. 불법보조금 동향을 어느 정도 공유한 소비자들이 예상보다 비싸게 개통되는 제품 구매를 포기한 것이다. 

실제로 갤럭시노트10의 사전예약은 130만여대에 이르렀지만 지난 23일 정식 출시 이후 한 주간의 개통량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편 불법보조금이 판치는 휴대폰 시장은 또 새로운 사기 범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통사들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지난 15일 ‘휴대전화 판매 사기 주의보’를 발령했다. 불법보조금을 미끼로 소비자들을 유혹해 선입금을 요구한 후 소위 ‘먹튀’ 발생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불법보조금을 받기 위해 선금을 입급 했다가 당한 판매사기는 기본적으로 단통법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제 받기도 어렵다. 때문에 KAIT “이용자 피해 예방 및 불법 영업의 폐단을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라며 적극적인 신고와 제보를 당부하고 있다. 

ⓒ김종훈 의원실
ⓒ김종훈 의원실

실효성 없는 단통법, 비용 절감 효과 없어

이처럼 다양한 부작용을 낮고 있는 단통법이지만 당초의 취지였던 이통사 마케팅 비용 절감과 소비자 통신비 감액에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통사들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대비 15%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이는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일례로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의 마케팅 비용이 2018년 2분기 대비 500억원 이상 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 민중당 김종훈 의원에 의해 지적되기도 했다. 김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다르면 2017년 이통3사의 영업이익은 3조4935억원이었지만 마케팅비용은 7조950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마케팅비용 중 광고선전비는 7661억원에 불과했는데 나머지 7조원에 가까운 금액 대부분은 대리점과 판매점에 지원하는 판매촉진비로 사용됐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단통법이 시행됐음에도 마케팅비용 과다지출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김 의원은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 비용 지출로 판단하겠지만 사회전체로 보면 상당한 낭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통신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대폭 줄이고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강제성과 실효성 있는 규칙 등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적절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통사들의 마케팅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한 5G 요금도 당연히 고공행진이다. 가령 SK텔레콤의 경우 5G 요금이 일반적인 LTE요금에 비해 2~3만원 가량 높은 수준으로 책정돼 있다.  

SK텔레콤의 5G 요금은 무제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5GX플래티넘이 12만5000원, 5GX프라임이 9만5000원, 200GB를 제공하는 5GX스탠다드가 7만5000원이다. 시민단체의 반발에 5만5000원의 중가요금제가 출시되긴 했지만 데이터가 9G밖에 제공되지 않아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관계자는 “SK텔레콤이 5G 서비스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부터 통신서비스의 공공성, 세계 최고 수준인 가계통신비 부담 등을 고려할 때, 5G 요금이 과도하게 인상돼서는 안 되고 저가요금제 이용자 차별 정책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요구해왔다”라며 “그러나 한 차례의 인가신청 반려에도 큰 개선이 없었고 오히려 5G 서비스의 서비스 품질이나 LTE 이용자들의 속도저하와 같은 불편사항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014년 10월 단통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정부의 미진한 대응으로 불법보조금이 방치됐다며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뉴시스
지난 2014년 10월 단통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정부의 미진한 대응으로 불법보조금이 방치됐다며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뉴시스

“불법보조금 사실상 방치, 단통법 개정해야”

오는 9월 중 삼성의 플래그십 휴대폰 갤럭시 폴드가 출시되면 불법보조금 살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시민사회는 이에 대한 지적을 지속적으로 이어왔지만 정부는 미진한 대응으로 사실상 불법보조금 문제를 방치해왔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는 이에 따라 지난 29일 이통3사를 방통위에 신고하는 한편, 적극적인 단속과 처벌을 촉구했다. 불법보조금 지급으로 시장이 혼란스러워 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 관계자는 “단통법이 발효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이동통신사들은 단통법을 우습게보고 새로운 단말기가 출시될 때마다 불법보조금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라며 “이통사들이 각종 할인혜택을 앞다퉈 내놓으며 고객을 유치하려는 이유는 가입자수가 회사 수익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러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가입자를 늘리는 행위에 불법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안 된다. 이는 특정 소비자들은 과도하게 싼 단말기를 구입하게 하고 정상적으로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일명 호갱이 되는 불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며 “판매점이 싸게 팔 수 있다면 이동통신사 공식대리점도 싸게 팔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힐난했다. 

참여연대 역시 불법보조금을 통한 고객유치에 혈안이 된 이통사들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거론하며 단통법의 개정을 통한 분리공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분리공시제란 휴대폰 단말기를 판매할 때 이통사의 지원금과 제조사의 장려금 등 업계에서 제공되는 보조금을 따로 공시하도록 하는 걸 의미한다. 이 제도는 단통법 도입 당시 함께 논의됐지만 제조사의 영업기밀이 공개돼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제외됐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관계자는 “이통3사는 무분별한 불법보조금 경쟁을 즉각 중단하고 불법보조금에 충당되는 비용만큼 5G 요금 자체를 인하해야 한다”라며 “불법보조금 대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통신사와 제조사가 단말기 출고가에 육박하는 규모의 불법보조금을 살포해도 이익이 남을 만큼 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 폭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통신요금, 단말기 가격 폭리에 대한 대책 없이 애꿎은 보조금만 규제하니 결국 통신사와 제조사의 배만 불리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정부가 믿는 것이라고는 허울뿐인 단통법과 미미한 과징금뿐인 것이 현실이다”라며 “방통위는 지난 3월 이통3사의 불법보조금 살포에 대해 28억5000만원에 불과한 과징금 처분을 내리고 말 뿐인 경고로 사실상 방치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강력히 비판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통신사와 제조사의 배만 불리고 통신요금과 단말기 폭리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는 단통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라며 “분리공시제를 도입해 이통사가 지급하는 보조금과 단말기 제조사가 지급하는 장려금 및 보조금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불법보조금이 설 자리를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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