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식의 삶은 자식의 것
[칼럼] 자식의 삶은 자식의 것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10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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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했다. “매 맞으며 큰 자식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형벌을 받는 백성은 임금의 정책을 따르지 않으니, 급하게 다스리면 행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급히 결단하지 않고, 임의로 사람을 부리지 않는데, 이것이 혼란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설원(說苑)>

아빠가 반대한다고 내가 안 갈 거 같아?

자식의 진학이나 취업을 앞두고 갈등을 겪는 가족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부모는 자신의 경험과 현실에 바탕을 두고 되도록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을 택하기를 바라고, 자식은 적성이나 꿈을 중심으로 진로를 계획하는데, 양자 간의 생각이 어긋날 때 갈등이 일어난다. 이와 반대로 부모는 꿈을, 자식은 현실을 중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기는 한데 살펴보면 옛날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부모의 말을 따르는 자식이 따르지 않는 이보다 많은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자식은 부모의 말을 따르고, 거역하지 않는 것을 효도라고 여겼고, 그 여운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 마음으로 자식을 대하니 자식 처지에선 마음에 맞지 않는 게 있어도 거역하기 쉽지 않다.

첫째 딸아이 가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수시 원서를 쓸 때였다. 희망하는 학교와 학과를 정해야 했는데, 우선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학교의 담임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과 잘 상의해서 결정하라고만 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막상 나도 부모가 되어 아이를 바라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걱정의 내용이 참 단순했다.

내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이 생각 속에는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문제, 내가 바라는 아이의 상이 포함되어 있다. 잘 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아이의 결정이 내 맘에도 맞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아내와 특정 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아내가 말했다.

그 학과가 전망도 밝고, 가진이 성격에도 잘 맞을 거 같아. 권해 보려고.”

그 과 별로인데? 선후배 간에 상하관계가 엄하고, 사람들도 좋게 보는 것 같지도 않던데?”

기존의 내 생각대로라면 이 말을 듣고 아이 판단에 맡기라고 해야 한다. 이것도 잘못인데 나의 선입견을 가지고 그 학과를 폄하한 것도 잘못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즉시 반박했다.

당신이 그 과에 대해 다 알지도 못하잖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냐?”

그건 맞는 말인데, 나는 반대를 하고 싶네. 그리고 자기 맘에 맞는 게 우선 아닌가?”

당연히 가진이 맘에 맞아야지. 그래서 권해 보겠다는 거야.”

알았어.”

애초에 나는 이 선택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말하지 않았고, 만약 아이가 그 학과를 선택한다면 알았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다만 여기에서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아내는 가진이한테 그 학과를 권했는데 아이는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아내는 아빠는 반대하던데?’라고 했더니 가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빠가 반대한다고 내가 안 갈 거 같아?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갈 건데?”

급히 결단하지 않는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의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들키지 않았다는 의미의 한숨이기도 하고, 아이의 생각이 분명한 것에 감탄하는 마음을 담은 한숨이기도 하다. 아이가 어릴 적에 조금 엄하게 대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나한테 주눅 들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안심이 됐다. 아내한테 이렇게 말했다.

하하, 우리 가진이가 잘 컸네. 그래야지. 아빠한테도 눌리지 않아야 돼. 의지가 확고하네. 그렇다면 나는 가진이를 믿을 수밖에 없어.”

아내한테는 끝내 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알았다고 했지만, 내심 미안하면서 역시 좋은 엄마라는 생각을 했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녔으되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권해보겠다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결과까지 좋으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한(漢)나라 유향(劉向, BC77-6) 이 편찬한 설화집 『설원(說苑)』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매 맞으며 큰 자식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형벌을 받은 백성은 임금의 정책을 따르지 않으니, 급하게 다스리면 행하게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급히 결단하지 않고, 임의로 사람을 부리지 않는데, 이것이 혼란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설원(說苑)』>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고, 감정이 가는대로 대하지 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해선 안 되겠다. 이렇게 보면 아내와 나는 표현 방식은 조금 달랐을 뿐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대해오지 않았는가 한다.

여섯 군데에 수시 원서를 접수하고 나서 가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가진아, 너 엄마하고 말할 때, 아빠가 반대해도 너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했다며? 하하.”

.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잖아.”

그래 맞아. 그 이야기 듣는데 아빠가 참 기분이 좋더라.”

?”

네 의지를 꺾지 않았으니까. 아빠가 부모고 너보다 경험이 많긴 하지만, 아빠가 다 옳지도 않아. 아빠 생각 고집할 생각 없어. 그 과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있겠지만.”

아빠 생각이 맞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건 내가 겪어야 하는 거잖아. 내가 선택해서 하는 건데 안 좋은 게 있다면 감수해야지. 안 좋은 거만 따지면 세상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적응해야지.”

그래. 그러니까 아빠가 고집하지 않겠다는 거야. 앞으로도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주눅 들지 말고 해라.”

.”

가진이의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역할

부모는 자식을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하지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여 조종하려고 해선 안 된다. 내 맘에 맞지 않더라도 지금의 현실과 다소간 거리가 있는 선택을 했더라도, 자식은 자식의 삶이 있고,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의 현실은 지금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부모는 자식말만 들으라는 거냐? 자식이 틀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누구 말마따나 부모 노릇을 처음으로 하다 보니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저 생각도 옳다. 여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만인의 존경을 받는 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말을 참고해 볼만하지 않을까 한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왜곡된 기억> 외 6권

“자식을 훌륭하게 성취시키려 하는 것은 사람의 지극한 바람이지만, 애정에만 이끌려 타이르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김을 매지 않고 벼가 익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이황(李滉), 『퇴계집(退溪集)』 권40, 「기자준(寄子寯)」>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위해 꾸중을 할 수도 있고, 칭찬을 할 수도 있다. ‘타이르기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개념과 범위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찌되었건 부모는 자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끊임없이 타이르기를 해야 하겠다. 다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자식의 삶은 자식의 것이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결국 가진이는 아내가 권한 학과에 지원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지원해서 현재 그 학교 그 학과에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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