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 7월 24일 엘러간 거친 표면 보형물 회수 요청
식약처, 지난달 29일에서야 사용중지 및 회수 조치
모양 변화, 피부발진 등이 없으면 제거 안해도 된다?
사망 사례까지 있는데 국내서는 미온적 대처 논란
분노한 피해자 한국엘러간 상대로 집단소송 움직임

엘러간 CI
엘러간 CI

【투데이신문 홍세기 김효인 기자】 희귀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돼 회수 중인 엘러간의 거친 표면 인공 유방 보형물로 이식수술을 한 환자들의 불안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식약당국의 늑장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29일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국내 유통 중인 모든 거친 표면 인공유방에 대한 사용 중지를 요청하고, ‘인공유방 이식환자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해외에 비해 대처가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24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엘러간의 거친 표면 인공유방이 다른 제조사 제품에 비해 ‘유방보형물 관련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이하 BIA-ALCL)’ 유발 가능성이 약 6배 높다며 제품 회수를 요청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특히, ‘인공유방과 연관된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BIA-ALCL)’에 걸린 국내 첫 환자도 지난달 14일 보고되면서 사태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엘러간의 회수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보형물(바이오셀 내트렐)은 2007년부터 무려 국내에 11만4493개가 유통됐다. 식약처는 이중 현재까지 확인된 해당 보형물 이식자는 2만8018명이라고 지난 6일 밝힌 바 있다. 

피해 환자들은 이에 엘러간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준비 중이다. 해당 소송을 준비하는 한 법무법인의 경우 소송 참여자만 1000명을 훌쩍 넘겼다. 또 소송을 위해 모인 인터넷 카페 가입자는 4600여 명에 달해 엘러간은 한동안 법정 분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엘러간 사태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해외

이번에 논란이 된 BIA-ALCL은 면역체계와 관련된 희귀암의 한 종류로 유방암과 별개 질환이다. 장액종으로 인해 가슴이 커지거나 덩어리가 생기고 피부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의료제품청(TGA) 자료에 따르면 유방보형물 삽입 수술 이후 3년~14년 사이에 주로 발병한다.

가슴 보형물로 인한 BIA-ALCL 발병에 대한 위험성은 세계적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97년 유방 보형물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서 BIA-ALCL이 처음 보고된 이후 보형물과 BIA-ALCL 발생과의 연관성에 대한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미국과 호주, 프랑스 등에선 해당 제품으로 인해 BIA-ALCL이 생겨 사망하게 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전 세계 573건(33명 사망)의 BIA-ALCL 사례 중 엘러간 제품과 연관된 경우는 481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 공식적으로 유방 보형물에 의한 BIA-ALCL을 림프종의 일종으로 제정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말 의료인들에게 엘러간 제품뿐 아니라 거친 표면 보형물 제품군 대신 스무스 제품을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12월에는 엘러간에 제품 재고를 모두 회수하라고 요구했다. 이로 인해 같은 달 엘러간의 거친 표면 보형물이 유럽 CE마크(유럽연합 통합규격 인증 마크) 재인증에서 탈락했다. 또 EU권역뿐 아니라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에서도 잇따라 유통·판매가 제한됐다.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가슴 보형물 이식 후 BIA-ALCL 발병 위험에 대해 의료인 대상으로 권고했다. 특히 엘러간의 바이오셀 거친 표면 보형물이 BIA-ALCL을 유발할 위험성은 다른 업체 동종 제품의 위험성의 약 6배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지난 4월에도 프랑스와 캐나다가 엘러간 인공유방 제품에 대해 판매중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프랑스국립의약품건강제품안전청(ANSM)은 FDA의 권고사항 등을 수용해 지난 4월 2일 앨러간의 바이오셀 네트렐의 판매를 중단했으며, 같은 날 타 보형물 회사인 아리온, 세빈, 나고르, 유로실리콘, 폴리텍 등의 제품도 판매중단 했다. 이틀 후인 4일 캐나다보건국(Health Canada)은 엘러간의 바이오셀 가슴 보형물로 인해 BIA-ALCL이 발병되지 않도록 사전예방 조치로 판매중지 권고를 내렸다.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가 5월 10일 엘러간 제품 판매 금지를 결정했으며, 호주도 지난 6월 엘러간 제품을 포함한 유방 보형물 25종의 판매 중지에 대해 사전 검토했다.

결국 지난 7월 24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엘러간의 거친 표면 인공유방이 다른 제조사 제품에 비해 BIA-ALCL 유발 가능성이 약 6배 높다는 점을 들며 제품 회수를 요청했다.

이에 엘러간은 FDA 권고를 받아들이고 전 세계적으로 회수를 진행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경 ⓒ뉴시스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경 ⓒ뉴시스

식약처의 뒤늦은 조치…변명 일관

반면 식약처는 이 같은 해외의 발 빠른 조치에 비해 늑장 대책을 내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11일 美 FDA 권고사항이 발표됐지만 이에 따른 대응으로 이미 2018년 12월에 배포했던 실리콘겔인공가슴 부작용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과 함께 인공가슴 해외 안정성 및 권고사항을 배포하는데 그쳤다.

특히, 지난 5월 9일 거친 표면 등 인공유방에 대한 조치 방안을 안건으로 한 소분과위원회를 개최하고도 ‘거친 표면 신중사용 권고 강화 및 지속 모니터링 후 조치 결정’이라는 소극적인 결과만 도출했다. 이어 지난 6월에는 캐나다와 프랑스처럼 판매중지 조치를 내리는 것이 아닌, 사용 시 주의사항을 강화하는 허가변경 조치를 내리는데 그쳤다. 당시 식약처는 해당 조치의 사유로 당시까지 국내에서 BIA-ALCL의 발병 사례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다 7월 25일, 미국 FDA가 해당 보형물 회수 권고를 하고 나서야 하루 뒤 국내 의료기관에 해당 보형물에 대해 사용중지 요청을 하고 보형물 생산·유통업체에 ‘리콜’ 명령과 함께 전 물량 회수명령을 내렸다. 이어 8월 7일에는 가슴이 커지거나 덩어리가 생기는 등 BIA-ALCL 의심증상이 있을 때 신속하게 의료기관을 방문해 검사받을 것을 권하는 안전성 서한을 발송했다. 

일주일 뒤인 14일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엘러간 인공유방 이식 후 BIA-ALCL에 걸린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것.

식약처는 BIA-ALCL 환자가 처음으로 보고됐을 때에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식약처는 “미국, EU 등 선진국에서도 BIA-ALCL 발생 위험이 낮다”며 “의심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 의료기관을 방문할 것을 권장한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과학적으로 연구된 암 발병률과 사망 가능성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외 규제국가들과 학계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한 자료들에 비춰보면 BIA-ALCL이 드물게 발생한다는 식약처의 설명은 근거가 부족하다. 또 발병 빈도가 드물다고 해서 위험성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

이후 식약처는 8월 16일 의료단체들을 통해 해당 보형물 사용중지 요청을 한 후 이틀 뒤 국내 판매·유통업체에 판매중지 명령을 내렸다. 첫 환자가 나온 지 보름이 지난 시점인 8월 29일이 돼서야 식약처는 관련 단체를 통해 의료기관에 거친 표면 인공 유방 보형물 사용 중지를 요청하고, 유방 보형물 부작용 조사 등 환자 등록연구를 진행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서면서 잇따른 해외의 엘러간 보형물 판매중단 결정에도 국내 발병사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주의사항을 강화하는 정도의 조치에 그쳐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거친 표면 인공 유방 보형물은 2007년부터 국내 11만4493개가 유통됐으며 이중 해당 보형물을 이식한 환자는 2만 8018명임이 식약처를 통해 확인됐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유방재건수술을 한 환자만 461명으로 밝혀졌다. 이에 타 국가에 준하는 판매중지 조치만 했어도 환자와 의사들은 좀 더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약처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전문가의 자문과 해외 동향 등을 통해서 위해 정보를 수집했지만 판매 중지 조치를 하기에는 발생 기전이나 통계 등에서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었다”라며 “국가 차원에서 판매 중지 조치를 했던 나라는 프랑스와 캐나다이고 유럽이나 미국은 해당 사항이 없다”라며 해외에 비해 늦은 대처는 아니라는 해명만을 늘어놨다.

ⓒ남인순 국회의원실
ⓒ남인순 국회의원실

이식 수술 부작용도 증가…피해자 고통 가중

주로 유방재건이나 미용 목적으로 시행되는 인공 유방 보형물 이식 수술로 인한 부작용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식약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인공유방 부작용 사례 접수 현황’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3년 동안 보고된 인공유방 부작용 사례는 총 5140건에 달했다.

연도별로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2016년 661건, 2017년 1017건, 2018년 3462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접수된 부작용 중에는 ‘파열’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모양이 딱딱해지고 변형되는 ‘구형 구축’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엘러간 제품의 최근 3년간 부작용 건수가 1389건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는 식약처의 뒤늦은 조치에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또 이번 엘러간 사태는 이미 유방암으로 고통 받았던 환자들을 다시 한 번 고통에 몰아넣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엘러간사 거친 표면 제품 사용 유방재건수술환자 현황’에 따르면, 2015년 4월부터 올 6월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유방재건수술을 한 사람은 모두 1만3336명이며, 이중 문제의 제품을 이식한 환자는 5763명으로 드러났다. 유방암 등으로 재건 수술을 하게 된 환자는 이식한 보형물의 위험성으로 새로운 암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유방암으로 재건 수술을 한 피해자 A씨는 “암에 걸려서 겨우 힘든 항암 치료를 겪어 내고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 희귀암을 걱정해야 한다”라며 “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모른다. 하루하루 불안해 심장이 조여든다”라고 호소했다.

이미 미국에서 BIA-ALCL이 152건 발생해 5명이 사망했고 호주 82건 발생에 사망 3명, 프랑스 59건 발생에 사망 3명 등 각국의 발병 및 사망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환자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실상이 이런데 성형외과학회와 식약처는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예방 차원의 보형물 제거는 권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유방보형물 관련 임파종은 발생 빈도가 낮고, 발생한 경우라도 적절한 치료가 이뤄진다면 결과가 좋기 때문에 증상 및 모양 변화, 피부발진 등이 없으면 보형물 제거를 권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

이 같은 주장에 피해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피해자 B씨는 “가슴에 암이 걸릴 때까지 시한폭탄을 달고 다니라는 거냐”라며 “정부는 이렇게 위험한 제품을 막지도 못하고 사건이 터지고 나니 (보형물을)안빼도 된다며 무책임한 말만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엘러간은 식약처의 요청에 따라 BIA-ALCL 확진, 의심, 예방 차원의 단계별 보상대책을 제출했다.

이에 지난 8일 식약처는 엘러간이 제출한 ‘암 증상이 없는 이식자의 교체 수술비는 제공할 수 없다’는 대책에 대해 이 이상의 대안이 필요하다며 엘러간에 추가 대책을 요구했다. 식약처는 이달 중으로 추가 협의를 통해 국내에 특화된 보완 대책을 확정할 방침이다. 

최근 미국 엘러간사는 자국 내 피해 환자 보상 대책을 내놨다. 희귀암인 림프종 증상이 발견되면 900만원의 제거 수술비용과 대체 보형물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불만이 가중될 전망이다.

법무법인 오킴스가 운영하는 집단소송 사이트 캡쳐
법무법인 오킴스가 운영하는 집단소송 사이트 캡쳐

엘러간 상대로 집단소송 예고

이처럼 꾸준히 지속돼 온 인공 유방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식약처의 태도도 문제지만, 위험성이 제기된 심각한 결함이 있는 제품을 10년 넘게 판매해 온 엘러간에 환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6일 식약처에 따르면 엘러간이 식약처에 제출한 회수종료 보고서에서 2011년 품목 허가를 자진 취하한 제품을 이식한 환자에 대한 모니터링 내용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는 엘러간측에 모니터링 계획을 수립해 보고토록 하는 한편 식약처 홈페이지에 ‘Natrelle 168’, ‘Natrelle 363’, ‘Natrelle 468’ 등 누락된 거친 표면 인공 유방 3개 모델을 추가로 공개했다.

식약처는 엘러간과 이번 피해로 인한 치료비 보상 문제에 대해 협의 중이지만, 피해 환자들은 엘러간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해당 소송을 준비하는 한 법무법인의 소송참여자는 이미 1000명을 넘어섰으며, 이를 위해 모인 인터넷 카페의 가입자는 4600여 명에 달해 엘러간은 당분간 법적 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손해배상 소송은 엘러간만을 대상으로 한다. 다른 유방보형물을 사용한 환자에게서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도 있지만, 엘러간의 인공유방보형물의 부작용과 합병증 보고 비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공동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는 “다수의 환자들이 엘러간의 가슴 보형물을 이용한 유방확대술을 받은 상태이며 희귀암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상황이다”며 “작년에 개정된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환자들은 엘러간을 상대로 가슴 보형물 가격을 포함한 보형물 삽입수술비용과 향후 제거 및 복원비용, 이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물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로는 개정된 제조물 책임법이 꼽힌다. 이 법에 따르면, 제조물의 결함으로 신체·생명·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사가 배상해야 한다.

엄 변호사는 “엘러간의 보형물에서 문제가 발생한 비율이 가장 높다”며 “FDA에서도 엘러간 제품의 위험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 또한 유력한 근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상 규모와 관련해 최근 미국 엘러간사가 내놓은 인공유방 희귀암 발생 피해 환자 보상안이 미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엄 변호사는 “미국 엘러간사는 자국 내 피해 환자 보상 대책을 내놓았는데 희귀암인 림프종 증상이 발견되면 900만원의 제거 수술비용과 대체 보형물을 제공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는 부작용 증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환자의 경우다”며 “환자 본인이 원할 때만 무상으로 대체 보형물을 제공하고, 수술비나 각종 검사비는 제공하지 않는다. 부작용 증상은 없더라도 충분히 위험에 노출된 환자에게 진단비나 검사비 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은 의료기기 회사로서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며 비판했다.

덧붙여 “이 같은 미국의 보상대책으로 볼 때 국내 보상안도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고 부연했다.

원치 않게 또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환자들부터 터무니 없는 대책과 보상안으로 인해 환자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태우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