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무기한 전면 파업
노조에게 보장된 교섭 권한 무시
50대 노동자에게 “딸 같다”며 반말
모욕성 발언 등 수십개 증언 쏟아져
조합원 75%, 직장내 괴롭힘 받았다
ITF “대한항공 원청으로서 책임 있어”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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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지난 9일 오전 10시 30분 경. 서울 강서구 방화동 개화산역에 50대 전후의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자연스레 안부를 주고받던 이들은 역전으로 나와 준비된 조끼를 하나 둘 입기 시작했다. 조끼 뒷면에는 ‘대한항공, 한국공항, EK맨파워가 공동으로 책임져라!’는 문구가 새겨 있었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국공항 본사 앞이었다. 현수막을 걸고 보행로를 확보한 이들은,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펴고서는 그대로 털썩 앉았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릴 거라고 했지만 이날 9월의 날씨는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사람들은 비가 아닌 더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폈다. 

이날 조끼를 입은 채 한국공항 본사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62명. 평균연령은 만 54세다. 이들은 모두 대한항공 항공기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다. 지난해 1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약품으로 기내 청소를 해왔다는 논란이 제기돼 심각한 안전문제에 노출됐던 항공기 청소노동자들은 이번에는 사측의 직장 내 괴롭힘과 임금체불을 참다못해 거리로 나왔다. 

대한항공 항공기 청소노동자들은 EK맨파워라는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원청은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한국공항이다. 대한항공은 2단계의 계약과정을 거쳐 항공기 청소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항공, 한국공항, EK맨파워는 별개의 노동현장이지만 노동자들은 사실상 대한항공의 업무지시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한 노동자는 항공기 청소 후, 승무원들로부터 검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원청 및 최상위 원청과 EK맨파워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한국공항의 퇴직 인사들이 EK맨파워 관리자로 이동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공식적으로는 독립법인이지만 사실상 자회사처럼 운영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볼만한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항공기 청소노동자들은 10년을 근속해도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우를 받아왔다. 참다못한 240여명의 노동자들은 지난 2017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사용자에게 정당한 임금 및 단체협약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탄압으로 응답했다.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김태일 지부장은 “노동운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삶을 살아왔지만 회사가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는 하나, 둘씩 공부하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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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시작의 이유, 준법투쟁에 대한 소송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지난 7월 23일 무기한 파업에 나섰다. 파업의 단초가 된 건 노조 간부들에 대한 사측의 소송이었다. EK맨파워는 지난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노조 간부 12명에게 총 1억1600만원의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사유는 조합원들의 휴게시간 미준수다. 노조가 쟁의활동을 하는 중 취업규칙 상 휴게시간을 임의로 변경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 후, 조합지침에 따라 진행한 준법조업이었다고 항변한다. 

노조는 1시간의 중식시간과 휴게시간이 그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니, 이를 적절한 때에 보장하는 방법으로 준법투쟁을 추진한 것이며, 이 같은 행위가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사측의 소송을 명백한 탄압 행위로 받아들인 노조는 소속 조합원 150명과 함께 손배 철회 및 노조파괴 중단을 촉구하며 전 조합원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또 EK맨파워가 제기한 소송의 배후는 한국공항 등 원청이라고 판단한다. 노조는 한국공항의 2018년 4분기, 2019년 1분기 여객사업부 회의자료를 근거로 “원청이 노무관리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현장통제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복수노조의 설립, 사측의 탄압 본격화

노조에 따르면 사측의 탄압이 본격화 된 건 지난해 7월 무렵이다. 2017년 4월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한 지부는 그해 말 12일간의 전면파업을 전개했고 2018년 4월 단체협약체결을 위한 교섭에 돌입했다. 

하지만 EK맨파워는 같은 해 7월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결성되자, 민주노조에게 보장된 교섭 권한을 무시하고 복수노조에 대한 개별교섭을 진행했다. 이후 사측은 급기야 민주노조의 쟁의행위를 핑계 삼아 교섭권한이 없는 한국노조와 2019년 임금협약까지 체결했다는 설명이다. 

민주노조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한 전형적인 노조파괴 행위라고 주장한다. 승급과 정년연장 촉탁 등으로 복수노조를 우대하는 한편, 교섭권을 가진 민주노조 조합원은 홀대하며 탄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조는 사측의 노조파괴는 ‘친사용자노조결성→복수노조 우대교섭진행→민주노조 조합원 인사 불이익 및 징계→손해가압류 청구→교섭 대표권한 박탈→현장 탄압’으로 이어져 왔다고 토로한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총괄반장 등의 직책 가진 조합원 면·보직 ▲조합간부에 대한 연이은 징계 ▲회사 임원이 동원된 노조 탈퇴 회유 ▲여성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관리자들의 폭언 및 모욕행위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와 직장갑질119가 대한항공 항공기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결과 ⓒ공공운수노동조합

광범위하고 빈번한 직장 내 괴롭힘

대한항공 항공기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한 EK맨파워 내부의 직장 내 괴롭힘 사례는 이미 다양하게 취합됐다. 조합원들은 사측의 관리자급에 의한 폭언, 모욕, 협박성 발언 등이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노조가 수집한 사례에 따르면 한 관리자는 불과 4살 어린 50대 노동자에게 “딸 같다”며 반말을 이어왔고,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자 “싸가지 없는 것들”이라고 발언했다. 또 지난 4월 경 안전사고 위험을 겪은 조합원은 당시 상황을 관리자에게 전달한 후, “조용히 하라고” 면박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부당한 업무편성이나 불평등한 도구 지급, 재계약에 대한 협박, 인종차별성 발언 등 40여개를 넘는 사례가 노조를 통해 취합됐다. 

본지가 파업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도 유사한 얘길 들려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파업이 시작되기 전, 소장급 직원으로부터 “한국공항에 다니고 있는 아들 승진 안 시킬 거냐”는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조합원의 취약 지점인 자녀의 사정을 빌미로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이 조합원은 “기분이 나쁘고 속이 상했다. 그때 생각만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덜덜 떨린다. 아들 승진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중요한 시기에 위로 못 올라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다”라며 “다른 가족들의 지지로 여기까지 왔지만 그 말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미어진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사실 (관리자에게) 승진 시키면 노조를 탈퇴 하겠다고도 말했다. 앞이 창창한 아들 승진이 걸려있는데 탈퇴 안할 부모가 어디 있나. 내 돈이 억만금 쌓여도 자식 불이익은 못 보는 게 부모마음”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항공기 청소 노동자로 13년간 근속해왔다는 김전경(50)씨도 부당한 업무 강등 지시와 지속적인 괴롭힘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식사 이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데 갑자기 다른 업무장으로 옮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년에 걸쳐 어렵게 올라온 자리인데 그동안 받던 수당도 줄어드는, 사실상 강등인 상황이었다”라며 “그 사건만이 아니라 (관리자는) 수시로 사람을 따라다니며 빈정대고 면박을 줬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이어 “노조하기 전부터도 다니기 힘든 회사라는 걸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며 “막말로 관리자에게 잘 보인 직원만 진급되는 모습을 보면서 배신감 같은 것도 많이 느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봉(60)씨 역시 “툭하면 폭언, 반말을 듣고 까딱하면 ‘징계위원회에 넘기겠다’, ‘경위서 써라’ 같은 말들이 돌고 있다. 노조 활동 이후 회사에 찍혔다는 걸 많이 체감한다”고 전했고 김승호(44)씨도 “소속된 부서에 5명이 있었는데 입사일이 제일 느리다는 이유로 부당한 부서이동을 당했다. 조합원이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직장 상황이라 볼 수 없다”

대한항공 청소 노동자들이 겪는 직장 내 괴롭힘은 노조가 직장갑질119와 함께 추진한 실태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7월 말 조합원 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서는,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들의 사례와 매우 흡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설문 응답내용을 살펴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조합원은 75%나 됐으며, 이중 87.5%가 괴롭힘의 수준이 ‘심각한 편(54.7%)’ 혹은 ‘매우 심각한 편(32.8%)’이라고 응답했다. 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한 조합원 중, ‘신체적·정신적 고통 때문에 진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54%가 그런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후의 대응에 있어서도 절반에 가까운 48.7%가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고 응답했고, 이중 69.5%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해 조합원들이 겪는 일상적인 좌절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직장 괴롭힘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냐’는 질문에, ‘매우 안전하다’고 응답한 조합원은 한명도 없는 반면,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대답은 34.6%나 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통과 이후 긍정적인 변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67.6%의 조합원이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번 실태조사와 직장갑질119가 경제생활인구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비교하며 대한항공 항공기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노조 실태조사 보고서는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75%나 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1000인 표본에서 19%만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 것에 비췄을 때 일반적인 직장상황은 아니다”라며 “진술 등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특정 노동조합의 조합원임을 이유로 회사의 임원과 관리자, 조반장 등에게 일상적으로 폭언·모욕적인 발언 등에 노출돼 있고, 나아가 업무상의 불이익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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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운수노련이 한국공항에 보낸 항의서한 ⓒ공공운수노동조합

노동부의 엄정한 관리감독으로 갈등 끊어내야

해외 항공업계에서도 대한항공 항공기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탄압을 주시하고 있다. 국제운수노련(ITF) 항공분과에서는 평화로운 쟁의행위에 대한 노동자들의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며 한국공항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ITF는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한국에서의 평화로운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적용과 사내하청업체 사용을 통해 교섭의무를 회피하는 원청업체의 행위를 비판하는 권고를 수차례 발표한 바가 있다”라며 “기내청소 노동자들의 지부와 지부 간부에 대한 탄압행위들은 ILO 권고의 취지를 위배하는 행위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공항은 노사 분쟁에 연루돼 있고 대한항공은 원청으로서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부와 지부간부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가 중단되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취할 것을 두 회사에 요구한다”라며 “특히 지부 간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취하되고 통장에 대한 가압류가 해제되도록 영향을 행사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지부가 공정한 임금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나서줄 것을 요구한다”라고 촉구했다. 

노조가 이번 파업을 통해 사측과 정부에 요구했던 바는 4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손배가압류에 대한 철회 및 책임이다. 준법투쟁에 대한 부당 소송인만큼 EK맨파워와 원청인 한국공항, 최상위 원청인 대한항공이 사태해결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소송을 철회하는 방향으로 노사간 어느정도 이야기가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은 노조탄압 갈등에 있기 때문에, 향후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부의 공정한 부당노동행위 수사 진행일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원청개입 노조파괴행위에 대한 엄정한 수사 및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폭언과 모욕 등에 대한 근로감독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바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 확인한 조합원들의 우려도 이와 맞닿아 있다. 

조합원들은 일정부분 타협이 이뤄져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하더라도, 불평등한 업무지시나 복수노조 조합원들과의 갈등은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염려한다. 사측의 차별행위나 민주노조에 대한 회유, 모욕적 표현들이 멈추지 않는 한 거리에 나와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은 또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녀차별·통상임금 등 노동부체불금 확정금원에 대한 지급도 요구 대상이다. 이는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2018년 중부지방노동청은 당시 조합원 192명에 대한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고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사측이 지급을 거부하고 있어 현재 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 이 문제는 노조와 사측이 파업에 대한 합의점을 찾고 업무복귀에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싸움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밖에도 노조는 조합의 존재 이유인 노사간 성실교섭 등도 당면요구에 포함시켰다. 

EK맨파워는 손배가압류나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검토를 진행하겠다면서도 일부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남아있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EK맨파워 관계자는 “아직 자세히 말씀 드리긴 어렵지만 현재 어느정도 교섭이 진행되고 있고 손배는 이미 철회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내부적으로는 다른 부분에 대해 더 갈등이 있던 상황”이라며 ”노조탄압이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지만 파업철회의 조건이라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체불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직원들이 해오던 중량물 업무를, 힘이 드니까, 남자직원을 급여를 더주고 채용해 해당 업무를 맡겼던 것"이라며 ”남녀차별이 아니고 업무가 다르다. (여직원들이) 바쁠 때 조금 도와 준다고 해서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건 논리상 안 맞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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