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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중인 국립암센터 소속 노동자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국립암센터 소속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촉구하며 개원 이래 13년 만에 첫 파업에 나섰다. 파업의 영향으로 내원 환자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어, 협상을 통해 진료를 정상화하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국립암센터지부 조합원 972명은 6일 오전 6시 이후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지난 6월 24일부터 사측과 교섭을 해왔다. 조합원들은 △인력충원 △개인평가성과급 비중 하향 조정 △시간외수당 기준 마련 △인금 6% 인상 △수당 신설 △무료노동 근절 및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내용이 담긴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했다.

그러나 사측은 공공기관 임금가이드라인을 넘는 임금 인상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노조 측이 요구한 임금 인상률은 6%로, ‘2019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 지침’에 따른 총액 인건비 인상률인 1.8%를 넘길 경우 기관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노동자들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사측의 주장이다.

지난 5일 이와 관련한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조정회의가 자정까지 이어졌고, 공익위원들은 임금 인상 관련해 총액 1.8% 인상 및 일부 직종에 대한 수당 인상을 골자로 하는 조정안으로 제시했다.

조정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간외수당 제외한 임금총액 1.8% 인상 △온콜 근무자 매회 교통비 3만원 및 시간외수당 지급 △특수부서 위험수당 5만원 지급 △야간근무자 및 휴일당직자 등에 5000원 상당 식비 쿠폰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는 해당 조정안을 수용했지만 사측이 거부함에 따라 교섭이 최종 결렬됐다. 총액 1.8% 임금 인상안에 시간외수당까지 포함할 수 없다는 게 사측의 주장이다.

이에 노조는 자신들이 제시한 요구 중 극히 일부만 수용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공적기구인 노동위원회 조정안마저도 거부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규탄하며 다음날 오전 6시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보건의료노조 한미정 사무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소위 말하는 무료노동을 계속해왔다. (포괄임금제로 인해) 한달에 48시간에 달하는 초과근무에 대한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지난해 교섭에서 24시간이 넘는 시간외 근무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하라고 임단협을 맺었다. 이에 따라 센터 측에서는 그만큼의 예산을 확보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 사무처장은 “초과근무가 공공연하다 보니 그 금액이 만만치 않다”며 “사측의 주장대로 시간외수당까지 포함한 임금인상 1.8%를 가정했을 때, 1.8%에 해당하는 금액이 20억이라면 이중 12억 정도가 시간외수당으로 분배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부 노동자는 임금인상이 전혀 안 된다”고 부연했다.

이어 “공공기관 임금가이드라인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안 되는 문제”라며 “(임단협에 따라) 미리 마련했어야 할 예산인데 그러지 못한 국립암센터의 책임이 명백하다”고 규탄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치료 환자들 발 ‘동동’

노조는 불가피하게 파업에 나섰지만 관련 노동법을 근거해 필수 유지업무를 유지하고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암 환자의 방사선 치료 일정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필수유지업무 부서가 아닌 양성자치료센터에 인력을 추가 배치하기도 했다.

사측은 임금협상이 최종 결렬 이후 환자들의 안전을 이유로 절반 이상의 암 환자를 전원·퇴원 조치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 폐쇄와 입원형 호스피스 휴업도 신청도 이뤄진 상태다.

갑작스러운 파업으로 치료중단 위기에 놓인 환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파업이 시작된 6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국립암센터 파업철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까지 올라왔다.

청원자는 “6일 새벽 4시 40분경 파업 시작을 알리며 치료기 불가능하다는 문자통보를 받았다. 파업이 협상되면 추후 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며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3주에 한 번씩 표적치료제를 맞아야 하는데 파업으로 치료일정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노조와 양측 임금협상이 되지 않아 파업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양측 입장은 이해하지만 최소한의 진료와 매일 받는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일정은 미뤄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원자는 “생명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치료 중인 환자들”이라며 “부디 조속히 파업 협상이 성사돼 진료 정상화가 되길 바란다”고 간곡히 호소했다.

파업 중인 국립암센터 소속 노동자들 ⓒ뉴시스
파업 중인 국립암센터 소속 노동자들 ⓒ뉴시스

재개되는 교섭, 그 결과는

지난 10일 국립암센터 이은숙 원장은 이번 파업과 관련해 환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는 한편 노조에는 빠른 복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당부했다.

이 원장은 “환자들을 두고 파업이 지속되고 있는 이례적인 사태로 환자와 국민에게 송구하다”며 “현 상황을 정부에 호소해 문제의 시간외수당 인상을 따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요청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노조도 환자들의 눈물과 고통 헤아리고, 빠르게 현장으로 복귀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11일 국립암센터 노사 간 현장교섭이 예고돼 있다. 노조는 사측의 진정성 있는 자세와 내용으로 원장의 결단을 촉구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예정된 교섭에서도 사측이 기존 입장만 고수해 국립암센터지부 1000명 조합원을 계속해서 기만한다면 국립암센터가 노동존중 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집중 투쟁으로 강력히 규탄하겠다는 뜻을 굳건히 했다.

한미정 사무처장은 “병원 노동자가 환자를 두고 파업에 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환자와 보호자를 맞대면서 불편한 마음으로 파업 현장에 내려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요구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돌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한 사무처장은 “사측에서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복귀만 하라’는 입장인데 오늘 현장교섭에서 안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지금이라도 사측에서 조정안을 수락한다면 당장이라도 파업을 접겠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정안을 수락하고 남은 문제는 보건복지부나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에서 능력껏 풀어나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다시금 열리는 현장교섭에서 노사 간 합의가 이뤄져 국립암센터 노동자들이 제자리를 찾고,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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