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택배 물량이 집중되는 명절을 앞둔 우편물 특별소통 기간 중 야간 근무를 하던 집배원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만 12명의 집배원이 목숨을 잃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이하 집배노조)는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에 사망한 집배원의 순직 인정과 더불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7시 40분경 배달을 마친 충남 아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박모(57)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우체국으로 향하던 중 1차로에서 갑작스럽게 멈춘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2차로를 달리던 차량이 넘어지면서 오토바이와 박씨를 밟고 지나갔고, 박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우정본부는 배달 물량 폭주를 대비해 매 명절을 2~3주 앞둔 시점을 ‘우편물 특별소통기간’으로 지정하고 비상근무체계에 돌입한다.

평소보다 물량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늦은 밤까지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조에서는 명절 우편물 특별소통기간 중 집배원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배달 물량이 평소보다 47%, 전년보다 12% 늘어났다. 박씨는 평소보다 4배가량 늘어난 배달 물량과 휴가를 떠난 동료 집배원의 몫까지 소화하기 위해 퇴근 시간이 지나서까지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다.

박씨의 가족까지 배달을 도왔지만 오후 7시 40분이 넘어서야 배달을 마쳤고 복귀하던 중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이다. 우정본부에서 집배원 대상으로 ‘해지기 전에 들어와라’, ‘일몰 후에는 배달을 금지하라’고 교육을 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다고 집배노조는 설명했다.

집배노조에서는 우정본부의 부실한 명절 대책이 집배원 사망을 야기했다며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집배노조는 “반복되는 집배원 죽음에 대해 우정본부 대표의 책임 있는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며 “또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야간 배달이다. 명절 우편물 특별소통기 배달인력충원으로 일몰 이후 배달은 반드시 근절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이어 “사고가 발생한 아산우체국에서만 7명의 인원이 부족하다”며 “부족인력을 즉각 증원하고 토요택배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아울러 <집배원노동조건기획추진단(이하 집배추진단)>의 권고인 정규인력 2000명 예산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우정본부는 9일 “아산우체국 소속 동료 집배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가족께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며 “안전보건 관리 추진 및 노동시간 단축을 노력함에도 이 같은 사망사고가 발생해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게 생각한다. 경찰에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정본부에는 일몰 후 집배 금지에 관한 규정은 없다”며 “추석 우편물 특별소통기산 동안 집배 보조인력 1300여명을 포함해 3000여명의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등 급증하는 추석물량을 배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실시간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안전대책 비상상황반’을 구성·운영하고 있고, 13호 태풍 링링 북상 중에는 배달을 일시 중지했다”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사진 제공 = 전국집배노동조합>

집배원 인력충원 ‘요지부동’

지난해 우정본부는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노사와 전문가로 꾸려진 집배추진단을 출범했다. 집배추진단은 집배원 2000명 증원 및 토요일 택배 중단에 합의했으나, 우정본부 측이 예산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행을 연기했다.

결국 한국노총 전국우정노동조합(이하 우정노조)과 집배노조는 대대적인 총파업을 예고했다.

법정 대표노조인 우정노조는 우정본부 측에 ▲주 5일제 근무 ▲토요집배 폐지 ▲정규직 집배원 2000명 즉각 증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정본부 측은 월∼금요일과 화∼토요일 2개 조로 나눈 주 5일제 시행과 정부 750명, 우정본부 500여명의 인력충원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정노조가 ▲위탁집배원 750명 등 포함한 총 900여명 인력 증원 ▲내년부터 농어촌지역 주5일 근무 시행 ▲우체국 예금 수익 우편사업에 사용 등 내용이 포함된 최종 중재안을 수렴하면서 파업은 철회됐다.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합의안 자체도 굉장히 부족했고 이행 과정도 더딘 상황”이라며 “얼마나 진행됐는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정본부에서 위탁집배원을 늘리는 방식이 차량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위탁 근무를 원하는 사람이 차량과 번호판까지 구입해야 하는 데 총 40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우정본부의 택배가 다른 민간 택배기업과 비교했을 때 이렇다 할 장점이 있는 게 아닌데다 배달 개수까지 제한되니 인력이 모집되고 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뉴시스

‘집배원 처우개선법’ 발의

매년 반복되는 집배원 사망 소식에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대책방안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지난 14일 집배원 등 우정사업 종사자의 처우 및 역량 개선을 보장하는 내용의 개정안 이른바 ‘집배원 처우개선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우정사업의 경영합리화 계획 주요 내용에 ‘우정사업 인력의 업무환경과 안전 개선 및 역량 간화에 관한 사항’을 추가해 집배원 등 우정사업 종사자의 처우 및 역량 개선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서영교 의원은 “집배노동자 과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내 집배노동자 노동시간은 1년 기준 2700시간 이상으로, OECD 평균의 1.5배에 달한다”며 “과로사가 매년 10여명이 넘는 것, 명절 직전 교통사고가 반복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인력충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과중한 업무로 올해에만 12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다. 집배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적극 대응하지 않는 사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