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해 9월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실에서 열린 제13차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해 9월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실에서 열린 제13차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총선 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미루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성소수자 인권에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권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한겨레>의 지난 18일 단독보도에 따르면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총선 전까지 차별금지법·인권기본법 관련 논의를 하지 않도록 결정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性的指向),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입니다.

차별금지법은 보수 기독교계의 강력한 반발에 제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적지향을 차별금지 조항으로 포함하면 동성애를 허용하게 되고 나아가 동성애를 조장하게 된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습니다.

최 위원장의 차별금지법 논의를 미룬 것은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해석됩니다. 실제 조직 내부에서도 차별금지법 논의가 정치적 고려 등으로 표류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9월 4일 취임사에서 “제 첫 번째 책무는 우리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라며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평등권 실현을 위한 제도적인 기반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울러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인권에만 예속된 기관으로 흔들림 없이 임무를 수행할 때 인권위의 독립성은 비로소 실체를 갖추고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차별금지법 제정과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조했던 최 위원장은 종교계의 눈치를 보고 정치적 계산으로 차별금지법 논의를 막았습니다. 또 인권위가 인권이 아닌 정치와 종교에 예속되도록 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논평을 내고 “인권위가 설립 이래 차별금지법 제정을 준비하고 추진해왔던 것은 ‘차별금지’가 인권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라며 “혐오와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인권위의 핵심과제 중 하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국 법무부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상규 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하자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 밖에도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성소수자 인권을 부정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동성혼의 법적 인정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6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조 장관은 박지원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습니다.

박 의원은 “목사님들이 물어봐달라고 한다”며 조 장관에게 동성애·동성혼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고 이에 조 장관은 “동성애는 법적으로 허용하고 말고 할 사안이 아니며, 동성혼의 법적 인정은 한국 상황에서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항문성교를 금지해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조항으로 이용되는 군형법 제92조의 6에 대해서도 “영내 동성애 병사의 경우 휴가 중과 복무 중을 나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근무 중 동성애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나 휴가 중 영외에서의 동성애까지 형사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조 장관은 지난 2010년 7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최고의 기본권이며 행복추구의 핵심 중 하나는 성적지향”이라면서 “성소수자가 차별받는 문제를 법과 제도가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지난 2011년 형사법연구에 기고한 논문 ‘군형법 제92조의5 ‘계간 그 밖의 추행죄’ 비판: 군인간 합의동성애 형사처벌의 당부(當否)’에서 군형법 제92조의6(당시 제92조의5)에 대해 성적 자기결정권·평등권·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조 장관이 성소수자 탄압에 이용되는 법 조항에 대해 ‘근무 중 동성애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은 지난 6일 논평을 내고 조 장관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트랜스해방전선은 “후보자의 부족한 인권 감수성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개혁의 적임자라던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성소수자 혐오적인 사회는 개혁의 대상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평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수 세력의 공격에서 가장 쉽게 치여 미뤄지는 성소수자의 인권이 누군가에겐 삶이고 생존”이라며 “언제부터 적당히 뒤로 미루고 나중에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불렀는가. 대선 정국에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의) 동성애를 반대한다던 발언에 트라우마를 겪은 성소수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 선언은 성소수자들에게는 공허한 울림일 뿐입니다. 정치적 계산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은 언제나 ‘나중’이었습니다.

그 ‘나중’은 도대체 언제 도래하는 걸까요. 인권을 미루다보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나중’은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는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합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