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풀과 나무가 자라고 벌레들이 생기니 새들이 먹이를 위하여 모여드니, 식물들은 자라고 시들고, 동물들은 먹고 먹히니 기운생동 하더라“

노자는 도덕경에서 그 기운이 생동하는 상태를 곡신(谷神)이라고 했다.

김석영은 그 곡신이야말로 바로 자연과 대지가 가진 무한한 에너지를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골짜기의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곡신불사(谷神 不死)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미묘한 도(道)를 형상화한 작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석영은 그것을 화폭에서 증명하고자 한다. 중국 베이징의 송좡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생명 지향적인 말그림에서 출발한다.

그 생동과 생명의 뿌리는 아무래도 그의 아주 특별한 유년시절의 경험으로 귀결된다.

아름다운 시절을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7삭동이로 태어난 십남매의 막내였던 어릴 적, 시골서의 나의 유년기는 행복했다. 다섯 살 무렵부터 학교가기 전까지 망토를 입던 소년검객이었고 온종일 물고기를 잡으며 냇가에서 살았으며 동지들과 수시로 논 뜰에서 어른들이 쌓아놓은 볏집성을 공격하여 장한 불로 축제를 벌였다.....비온 뒤의 풀냄새와 해지는 저녁노을을 사랑했고 그 노을 속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등판에 업혀서 바라보는 풍경을 더욱 사랑했다.  - 작가노트중 -

그가 즐겨쓰는 화법은 강한 스트록(stroke)의 붓질과 그가 기억하는 시절의 <나무의 춤> 핑크빛 말 그림 <곡신> 그리고 아버지 등에 업혀 바라보던 노을처럼 그의 회화적 무대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풍경이다.

이런 회귀적인 그에게 <곡신>은 추억을 건지기 위해 부르는 자연과 대지를 향한 정한의 노래이자 사모곡에 다름 아니다.

늘 그림이란 치유와 생명의 에너지로 자신을 살려내는 작업이며 “삶은 살아감이면서 살아남이다”라고 스스로의 작가적 삶을 처절하게 토로하는 김석영. 그만큼 그는 뜨거움과 치열한을 안고 산다.  

그의 화폭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꽃이며, 풍경이며, 말 그림들은 결코 예사스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 속에는 작가의 참을 수 없는 격정과 떨림이 존재한다.

그 떨림과 격정의 힘은 끊임없이 이글거리는 붓질을 통해 실현되며, 그의 심장에 용광로는 우리를 전율케하는데 그는 더욱 말의 표현에서 뜨겁고 격정적으로 색채들을 혼재 시키며 카오스 속에서 달리고 있다.

김석영의 변화무쌍한 넉넉한 표현법이나 주제들은 유년의 기억들로 단단한 층을 엮어진 듯 하지만, 그 묘사는 다층적이다. 가운데로 가끔 말할 수 없이 현란한 꽃이 무더기로 피는가 하면, 당찬 모습으로 솟아나는 그 야성의 벌판을 누비는 수 십 마리의 다른 얼굴을 한 야생마가 그 뿌리에 있다.

때때로 그 풍경 속 봄이 오는 소리에 미친 듯 꽃이 피고, 침묵의 사운드처럼 여름도 오고, 색색의 몸짓으로 곡신의 주제들이 벼락처럼 다가와 우리들 시선을 붙들어 놓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김석영이 토해낸 카오스적인 나무가 있는 정원과 꽃과 말들의 축제에 초대받고 있다.

그 말들은 사실적이지도 않다. 철저하게 고흐의 자화상처럼 심경을 반영하듯 거칠게 몰아치듯 그리고 만장처럼 휘날린다.

그 말들은 하늘에 떠 있고, 홀로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에 격하게 진동한다. 우리는 그 소리들을 보고 있다. 고개를 숙이거나 침묵하며 시위하며 눈물 흘리며 인간 삶의 녹록치 않음이 빚어내 교차하는 중국화가 서비홍의 분노하는 예술가의 말의 영혼에 접신하기도 한다.

우뚝 솟거나 품위 있는 말의 갈기 사이로, 당찬 기세로 벌판을 질주하는 그 말들은 한없이 외롭고 절규한다.

동시에 격정과 색채로 난무하는 형상을 닮아있다.

그는 말의 근육 골격 표정 그리고 동작에 대해 세밀해질 것을 거부한다. 말이 있는 곳을 자주 찾기보다는 그의 영혼과 심장과 박동이 뛰는 영혼과 가슴 속으로 말을 형상화 한다.

온통 휘갈기거나 그대로 물감을 짜 그려낸 휭거 페인팅처럼 덕지덕지 검고 짙은 말속에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김석영스러운 말들의 초상이 있다.

대찬 붓질이 스쳐 가면 그의 말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형형색색의 말들로 변신하며 달려와 지금의 말이 된다.

그 거침없는 말들은 어쩌면 김석영이 그리는 것으로 지난 일을 한탄하고 자신의 우울함과 희망을 소나기처럼 쏟아내는 풀어낸 듯하다. 꽃의 격렬 하는 표정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언제나 순간처럼 왔다 사라지는 삶에 감정의 순간, 영감들을 어떻게 화폭에 붙잡을 수 있을까 고뇌한다.

김석영은 그 스스로의 물음에 오로지 화폭으로 격하게 응답한다.

삶의 위로와 희망의 에너지를 전하는 ‘곡신불사’가 가장 큰 존재의 이유가 된다.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사람을 닮은 혹은 감정이입 된 역동적인 말의 매혹적 형태가 탄생하고 쏟아질 듯 달려드는 한 묶음의 꽃그림도 탄생한다.

그가 집요하게 추구해온 <곡신 > 시리즈와 꽃그림은 우리들을 경쾌한 감정과 이성 그리고 낯선 경험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보여준다. 작품 내면에 살아 움직이는 색채들의 파장과 진동에서 우리는 그의 얼굴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뜨거운 표현주의와 구상의 차원을 넘나들며 달리고 있다.

그 속도감 속에 지나치게 분방한 듯 보이는 작품들은 작가의 얼굴을 비추는 독창적인 하나의 거울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의 회화가 모두 편하지만은 않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색채의 향연들은 날마다 새로운 대지의 축복처럼 신선하지만, 다양한 낯선 형식과 표정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낯설게 한다.  

낯섬이라는 것이 미술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예술가들을 괴롭히게 욕망이지만 자유로운 표현방식 속의 일관성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이 진정한 치유와 생명의 에너지이길 희망한다면, 작가는 화면에서 좀 더 거리를 두고 이성적이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특히 자신의 감정이 절대적으로 이입 된 분방한 말보다 최근 그가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나무의 춤- 비밀정원>의 풍경에 더욱 흥미를 가지고 주목한다.

그곳에서 삶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시선과 감정의 절제, 감정을 이입하는 세련미와 표현의 원숙함이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명화들을 통하여 작가가 스스로의 화법과 양식을 가지는 것이 자신의 언어를 전달하는 형식에서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지금 김석영만의 스타일 구축을 위한 진지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그렇다. 누군가 김영석의 작품을 “고통의 외침이 삶의 찬가로 변하는 그 지점이 바로 ‘곡신’이라고 했듯이 그는 지금 그러한 삶의 찬가에 출발점에 서있다. 그것을 위한 성취가 있을 때 김석영의 예술은 화려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그리고 노자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곡신불사도 이러한 의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작품들은 특히 중국에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 작품전은 그러한 그의 해외진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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