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전문 업체와 손 잡은 유통 공룡, 안전은 나 몰라라
물품 공급계약만 언급…‘배송 문제’ 계약업체에 떠넘겨
나우픽, 배송 시스템 효율화 강조…안전 등 문제는 회피
안전 사각지대로 밀려난 배송 노동자의 가혹한 현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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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유통업계의 공룡으로 불리는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 하이마트가 새벽배송에 뛰어들며 영역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중소기업과의 협업을 통한 30분 배송 서비스까지 노린 행보를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24시간, 30분 내 배달’을 목표로 하는 유통물류 중소기업 나우픽과 손잡고 자체 PB상품인 ‘피코크’ 상품에 대한 공급 계약을 맺었다. 지난달 18일 롯데하이마트도 같은 업체와 상품 공급 계약을 맺어 협업을 결정했다.

이번에 두 대형 유통업체와 상품 공급 계약을 맺은 배송 전문 업체 나우픽은 ‘24시간, 30분 안으로 배송’ 서비스로 유명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마트와 롯데하이마트도 사실상 유통업계 총알배송 경쟁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총알배송을 목표로 하는 배송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것 자체가 분 단위 배송 전쟁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30분 배송 서비스는 피자 등 요식업계에서 30분 내 배송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음식 값을 면제해 주는 등의 혜택으로 인기를 끌었던 서비스다. 하지만 배달원들의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아 2011년 폐지된 바 있다. 

하지만 점점 빠른 배송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유통업계에서는 이른바 총알배송 서비스 도입 경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같은 경쟁은 배송 노동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한편 노동 강도를 높인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하이마트는 이번 배송업체와의 계약이 평범한 물품 공급 계약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형마트가 빠른 배송에 인력과 관련한 임금이나 사고위험 문제에 대한 부담 없이 중소기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유통 판로를 확대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배송 전문 업체와 ‘상품공급계약’만 맺었을 뿐이라는 이마트와 롯데하이마트

이마트·롯데하이마트가 배송 전문 업체와의 협업을 결정하며 소비자는 24시간 언제든지 피코크나 하이마트의 상품을 주문 후 30분 내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눈앞의 편리함 너머 신세계와 롯데가 배달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무한 속도 경쟁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하이마트도 빠른 배송 서비스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30분 내 배송 서비스는 없다. 이처럼 기존 영업시간 등에 제약이 있다 보니 이번 배송 업체와의 협약 또한 ‘24시간, 30분 내로 배달’된다는, 말 그대로 시간제한 없는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유통판로의 확대를 모색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24시간 내내 판매 가능한 유통판로 확대 과정에서 기업이 빠른 배송의 혜택만 누리고 책임에선 벗어나는 구조에 ‘손 안대고 코풀기’라며 책임 회피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통상 소비자는 대기업에 대한 신뢰로 제품을 구매한다. 그럼에도 이마트와 롯데하이마트는 배송 업체에 제품을 판매했을 뿐이라며 빠른 배송 강요로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배송 노동자 문제 등의 상황에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피코크 제품의 유통 판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배송 전문 업체와 물품 공급계약을 맺은 것은 맞다”면서도 “배송 전문 업체가 피코크 제품을 대량 구매해 재판매하는 것이며 일부 언론에서 강조하는 ‘30분 배송’은 그들의 판매 전략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도 “배송이 강점인 모바일 플랫폼과 상품 공급 계약을 맺은 것뿐이라 배송 문제는 그 업체에 문의해야 할 것 같다”며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배송 전문 업체에서는 사회적 우려의 시선이 있는 30분 배송과 관련해 상품 준비시간을 줄인 시스템과 배달 지역을 좁게 한정해 가능한 서비스라는 설명을 내놨다.

배송 업체 관계자는 본지에 보낸 이메일 답변에서 “도심지 내에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오토바이를 통해 배송하는 시스템으로 30분 내에 배송된다”라며 “물류센터 주변 반경 약 2.5km 안에서만 주문받는 서비스지역 한정과 자체적인 시스템 개발로 상품 포장하는 시간을 효율화한 것이라 배달원들의 배달 시간을 줄인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배달 노동자들은 시간에 쫒기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생명을 담보로 도로를 질주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있지만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등 안전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있다.

이에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과 관련해 사고 시 책임 소재는 어떻게 되냐는 본지의 질문에 업체는 답변을 피했다. 

‘24시간, 30분 내 신속한 배송’ 이면에 남은 ‘유령노동자’의 어두운 그늘 

‘30분 배달 보증제’는 잇따른 사망사고로 배달 종사자의 안전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며 2011년에 폐지됐다.

그러나 8년이 지난 2019년 현재, 배송 서비스의 폭발적 소비가 당일·새벽·총알 배송으로 한층 진화하며 30만 명이 넘는 배달 종사자들의 현실은 더욱 가혹해졌다. 

배달 종사자의 근로형태가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바뀌면서 업무상 재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자’신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건당 수수료를 받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 ‘일한 만큼 버는’ 자영업자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돈이다. 낮은 건당 수수료에 쫒기며 과속하고 신호를 위반하게 된다. 게다가 배송 속도 제한까지 걸린다면 위험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배달원 권익보호단체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건당 수수료가 낮아 빨리 달려야 하는데 배송시간 제한까지 걸리면 인명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며 “결국 사고가 나면 배달원들이 책임져야 하는 현재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빠른 배송으로 인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제도적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는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근로자 범주에 배달종사자들까지 포함시켰다. 이에 앞으로 사업주는 배달종사자들의 안전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다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현행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개정된 법에 따라 업주에 대한 벌금형의 상한선은 높아졌지만, 하한선을 따로 정해두지 않아 실제로 강한 처벌로 이어질 것인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도 나온다.

비정규직, 임시직, 초단기직 일자리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필요할 때만 단기로, 임시로 일을 맡기는 ‘효율적 경영’ 이면에는 노동자 권리에 대한 책임 회피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시민단체 청년유니온 김영민 사무처장은 “기업은 빠른 배송을 강조해 광고하면서도 그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한 책임에서는 수동적이다”라며 “이처럼 생명을 담보로 편안함을 누린다는 발상에 대한 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한인임 연구원은 “대기업에는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다른데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강력한 노동 강도에 시달리는 배달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활용하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면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적 책임에서마저 벗어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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