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광주 남구 광주남부경찰서 정문 앞에서 열린 배이상헌 지지모임이 광주시교육청 규탄 시위를 벌였다. ⓒ뉴시스
지난 3일 광주 남구 광주남부경찰서 정문 앞에서 열린 배이상헌 지지모임이 광주시교육청 규탄 시위를 벌였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수업 중 상영한 단편영화로 성비위 논란에 휩싸인 도덕교사의 사연이 연일 화제다.

여성과 남성의 전통적인 성 역할의 불평등을 미러링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에 대해 일부 학생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이로 인해 해당 교사는 직위해제와 더불어 검찰에까지 송치됐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성 평등 수업이었을 뿐 해당 교사를 성 비위로 몰아가는 것은 과도한 교권침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스쿨미투 성과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사진 출처 = 포털사이트 다음 캡처>
<사진 출처 = 포털사이트 다음 캡처>

성비위 논란에 선 도덕교사

광주 소재 모 중학교의 도덕교사 배이상헌씨는 지난해 9~10월과 올해 3월 각각 1학년,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던 중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Oppressed Majority)’를 학생들에게 상영했다.

201년 개봉된 억압받는 다수는 여성중심적인 세상에서 성희롱과 성적 대상화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남성들의 이야기다. 실제 남성중심적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는 일들을 소재로 해 여성과 남성의 전통적 성 역할의 불평등을 미러링 기법을 통해 드러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이긴 하지만 자국에서는 대중의 큰 관심을 갖지 못했고, 추후 영어 자막이 추가되면서 다른 국가들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유명세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에 게제된 영화 조회수는 1326만회가 훌쩍 넘으며, 한글 자막이 첨부된 영화도 조회수 27만2352회에 달한다.

이 영화는 공식적인 관람 등급이 분류되진 않았지만, 인터넷상에 떠도는 일부 영상은 19금으로 분류돼 성인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다.

배이상헌씨의 수업을 들은 일부 학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며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해당 영화에는 △육아를 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성희롱과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  △여성 경찰관이 가해여성의 편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장면  △아내가 남편의 옷차림을 문제 삼고 지적하는 장면 △대사를 통해 남성성기나 특정 성행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장면 △여성들이 흉기로 남성을 위협하는 장면 등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학생들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학생들은 배이상헌씨가 수업 중에 ‘위안부는 몸을 팔았다’, ‘남자가 여자를 꾈 때 안 되면 강간하면 된다’는 등의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위 사안을 접한 시교육청에서는 성 비위 사건 매뉴얼을 토대로 지난 6월 26일에는 1학년, 7월 8일에는 2·3학년을 대상으로 총 두 번의 전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배이상헌씨를 둘러싼 논란은 ‘성비위 사안’으로 종결됐다.

시교육청은 2차 학생 피해 예방의 취지로 배이상헌씨를 수업에서 배제하고 학생들로부터 분리 조치하겠다고 결정했다.

시교육청은 해당 논란을 성비위로 결론 내리고, 지난 9일 2차 학생 피해 방지 예방을 취지로 배이상헌씨를 수업에서 배제 및 분리 조치할 것을 학교 측에 요청했다.

시교육청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성비위 사안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배이상헌씨가 수업 배제 등은 거부하면서 관련 조사 내용을 개인 SNS 게재해 피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심적으로 불안감을 안겼다. 피해 학생들 입장에서 처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학교 측에서도 배이상헌씨에 대한 ‘성희롱 성고충 심의위원회(심의위)’를 열었다. 심의위에서는 만장일치로 해당 사안이 성비위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이미 시교육청에서 배이상헌씨의 직위해제를 결정한 후였다.

시교육청은 배이상헌씨를 수업에서 배제 및 분리 조치할 뿐만 아니라 경찰 측에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배이상헌씨가 해당 영화를 상영한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학생들이 느꼈을 불쾌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이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 등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었다.

그리고 지난 9일 광주 남부경찰서는 배이상헌씨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임을 밝혔다.

경찰은 “학생들이 영화를 관람한 후 불쾌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며 “성비위 여부는 법원이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 배이상헌씨 페이스북>

“인권수업의 학습도구였을 뿐”

배이상헌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논란이 된 수업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조금 다르다고 입을 뗐다.

배이상헌씨는 “성과 윤리 수업 중에 있었던 일로 알려졌다. 도덕 교과서 속 단원에는 성과 윤리가 아닌 성윤리라는 단원이 있고, 논란이 된 영화는 인권 단원의 소단원인 양성평등 단원을 가르지는 과정에서 상영한 것이다. 또 주제를 정하는 자유학기제 수업에서 여성인권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해당 영화를 상영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과서에서는 ‘성차별 하지 말자’, ‘성평등 해야한다’ 등 당위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성차별이고, 성평등을 위한 실천인지는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런 부분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고심이 생기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라며 “그 부분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청이 성비위 사안으로 종결짓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까지 과정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배이상헌씨는 “학교 심의위가 이뤄지기 전 날 교육청에서 이미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제가 ‘학교 심의도 끝나지 않았는데 왜 결정을 내렸냐’고 따져 물을 필요도 없었다. ‘심의위 결과는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는 게 교육청의 입장이었다”며 “그러나 교육부 매뉴얼은 학교장이 책임지고 판단 내려 경찰에 신고하도록 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중심주의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일은 개개인이 타인이 없는 곳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 공식적인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라며 “위안부 관련 발언 논란은 다수의 학생들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했어야 한다. 이것은 피해자중심주의하고는 다른 맥락이다. 이번 사안은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안의 성격상 최초 사실 확인에 있어 여러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야 마땅하다. 교사가 왜 그런 말을 했고, 오해받을 상황인지 아닌지, 교과서의 맥락 등을 확인해 봤어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 배이상헌씨 페이스북><br>
<사진 출처 = 배이상헌씨 페이스북>

전교조 “지나친 교권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이하 전교조 광주지부)는 성평등 수업과 관련해 교사를 성비위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교권침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비위로 규정하고 진행되고 있는 모든 절차를 멈추고, 교육청이 정당한 교육활동을 한 교사의 수업권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해당 사안을 성비위로 규정한 교육청 담당 부서의 전문성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전교조 광주지부는 “논란이 된 영화는 다수 여성단체에서 성평등 교육자료로 추천하는, 남성의 폭력이 만연하는 가부장제 사회를 성찰하는 게 골자다. 인터넷에서 성인인증 없이도 검색할 수 있고 보호자 지도에 따라 시청도 가능한 등급으로 조사됐다. 해당 영화를 두고 ‘야동’, ‘19금’ 운운하는 교육청 관료들의 천박한 인식은 상식에 벗어난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또 “논란이 된 수업은 △성과 사랑의 의미 △성윤리 △이성교제 등을 다룬다. 일부 학생들이 수업의 앞뒤 맥락을 상실하고 특정 단어들에 대해 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같은 반응과 오해, 불만에 기초한 민원을 모두 성비위로 규정한다면 도덕교사들의 성윤리와 성평등 단원의 수업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교의 성고충심의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는데 직위해제 결정을 내린 교육청의 행정은 교사에게 최소한의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반인권적, 반교육적 조치다”라며 “매뉴얼대로 성비위 사안이 아니라는 성고충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교육청은 최초 민원에 관해 성비위 여부를 판단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기구도 없는 상황에서 교사의 인권과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법적 조치를 자의적으로 집행해온 잘못된 구조를 인정하고 개선책을 빠르게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성단체 의견 엇갈려

배이상헌씨는 전교조 여성위 등 여러 여성단체에서 해당 영화를 성평등 교육자료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성평등 교육을 위한 공인된 자료 일지라도 학교 내 젠더권력에 대한 이해와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된 교육은 성평등 교육으로 볼 수 없다고 비판하는 여성단체도 있다.

인천페미액션과 인천여성의 전화는 “이번 논란의 일련의 과정에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운동, 성폭력예방교육, 성평등 교육 등에서 강조해온 피해자중심주의와 당사자주의가 여전히 존중되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들은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이 느낀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부정하고, 학생들의 피해호소를 과잉해석으로 보는 등 2차 가해를 행하고 있다”며 “지난해 스쿨미투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교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행정도 폭력행정이라고 매도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교사의 의도가 옳았을지라도, 해당 영화가 성평등 교육을 목적으로 한 공인 자료 일지라도, 학교 안 젠더권력에 대한 이해 및 성인지감수성이 부재한 교육은 성평등 교육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이상헌씨는 이번 사안에 대해 교육청이 사과하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 관련 수업은 교사도 불편하고 두렵다. 교과 과정이기 때문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데 이상적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챙기고 보듬으며 수업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학생의 민원이 제기됐을 때 교육청이 보호도 않고 사실 확인도 안 한 점에 많은 교사들이 위기감을 느꼈다. 설령 이 같은 사안으로 인한 징계가 사소할지라도 그걸 감수하며 수업을 하려고 하겠는가”라며 “교육청이 공식적이든, 내부적이든 사과하고 비슷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청은 이번 논란을 판단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피해 학생들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데 집중해, 가해 교사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지 않고, 논란이 벌어진 학교 측의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직위해제를 요청하는 등 판단 과정에 반영됐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놓쳐버렸다. 때문에 교욱청은 성비위 행위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 판단 과정에서 결코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배이상헌씨의 성비위 논란을 둘러싼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검찰의 판단만 남았다. 검찰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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