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 “가상통화는 무형자산”
대안화폐로서의 가능성 축소 불가피
비트코인, 하룻밤 새 10% 이상 폭락
가상통화 확산 규제정책에 힘 실릴 듯 
“주요국 사례 참고해 면밀한 검토 필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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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4차 산업혁명시대의 대안화폐로 떠올랐던 가상통화가 위축되는 모습이다.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위원회가 가상통화의 화폐성을 부정한 후폭풍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상통화 시장은 사업의 확장을 위해 제도권 편입과 화폐성 인정에 사활을 걸어왔다. 하지만 IFRS 해석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따라 국제회계기준을 준용하는 각 국가에서는 가상통화를 제도금융권에서 배제하는 움직임이 확산될 전망이다. 이미 각국에서는 정부가 발행하지 않는 가상통화에 화폐의 지위가 부여되는 걸 경계해왔다. 

“가상통화는 화폐·금융상품 아니다”

최근 한국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을 통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BS) IFRS 해석위원회가 가상통화를 금융자산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상통화는 현금 또는 금융상품으로 분류할 수 없으니, 재고자산 및 무형자산으로 간주하라는 결정이었다. 

IFRS 해석위원회는 세계 각국에서 가상통화 규정 부재에 따른 혼란이 발생하자 회의·잠정결정·의견조회 등의 과정을 거쳐, 지난 6월 최종 유권해석을 내렸다. IFRS에는 한국을 비롯한 100여개의 나라가 가입돼 있는 만큼 국제적으로 준용해야할 기준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형자산은 물리적 실체가 없지만 미래에 경영상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영업권, 광업권, 어업권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경제적 자산으로 인정은 되지만 화폐로서의 기능은 없다는 의미다. 재고자산 역시 판매를 통해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이지만 일반적인 광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가상통화는 다음 단계로의 성장을 위해, 현금 및 금융상품으로서의 지위를 얻으려 전력투구 해왔다.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다면 다양한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금융상품으로서의 지위라도 확보한다면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해 대안화폐로서 상당한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실제 이번 IFRS 해석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가상통화에 투자하는 펀드 사업이나,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가상통화공개(ICO) 같은 사업 다각화의 길은 사실상 막혔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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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시장의 폭락, 심리적 저지선 붕괴

이를 반영하듯, 가상통화 시장은 이달 하순을 기점으로 폭락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가상통화 비트코인은 최근 심리적 저지선인 9000달러(한화 약 1080만원) 선까지 무너졌다.  

이달 21일 1214만원가량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연일 하향세를 보이다, 지난 25일 새벽을 기점으로 수십만원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 비트코인의 시세는 하룻밤 사이에 10% 이상 낮아진 1030만원대로 급락했다. 

주요 가상통화 거래소인 빗썸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25일 오전 비트코인의 가격은 24시간 전 대비 114만9000원(10.01%) 하락한 1032만7000원을 기록했다. 비트코인 외 가상통화를 일컫는 알트코인 시장의 폭락은 더 심했다. 이날 이더리움은 3만5600원(14.99%) 떨어진 20만1900원을 기록했고 비트코인 캐시도 6만2600원(18.35%) 내려간 27만8600원에 매매됐다.

가상통화의 하락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7일 오후 기준 현재 비트코인의 거래가는 코인원, 업비트, 빗썸, 코빗 등 모두 950만원선에 머물러 있다. 이더리움 역시 19만원대로 떨어졌으며 비트코인 캐시도 25만원대로 추가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가상통화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다양한 이유를 지목하지만, IFRS 해석위원회의 결정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 무게를 실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의 심리적 저지선인 9000달러가 무너지며 매도세가 이어졌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하락이 일시적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가상통화의 가격변동은 심리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추가 하락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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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뉴시스

기업 가상통화 확산에도 제동 불가피

가상통화의 화폐성 부정에 대한 후폭풍은 각국 정부들의 규제정책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가상통화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일정 부분 제도권에 편입시켜왔던 국가들도 가상통화가 통화주권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전통적으로 화폐는 국가의 권위를 대리했다. 국가가 공인한 화폐만이 공신력 있는 거래 도구로 활용됐고, 그중에서도 몇몇 화폐들만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각국 정부들은 이미 난립하고 있는 가상통화가 시장 거래의 전면으로 나오게 되면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정부는 페이스북의 가상통화 ‘리브라’의 발행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전 세계 23억명의 회원이 사용하는 SNS에서 국가의 온전한 통제를 벗어난 통화 거래가 이뤄진다면 불법적인 자금 유통에 오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가상화폐 리브라는 신뢰성이 없다고 힐난했고 미국 민주당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도 지난 7월 열린 청문회에서 “리브라는 마약 거래자, 인신매매, 테러리스트, 국제 제재 대상자와 탈세범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는 9·11테러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리브라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한데 이어 독일과 프랑스는 현지시간 13일 공동성명을 내고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리브라를 위시한 가상통화가 유럽내 금융안정은 물론 통화주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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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 은성수 위원장ⓒ뉴시스

한국 정부 과세방안에 관심 집중

한국정부 역시 가상통화의 제도권 편입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국가가 공인하지 않은 화폐의 통용을 그대로 인정하기도 어렵고,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가상통화를 시장에만 맡기는 것도 문제였다. 

금융위원회 은성수 위원장 역시 후보자 시절 가상통화 제도화와 관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은 위원장은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가상통화를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할 경우 자칫 투기열풍 재발, 자금세탁 문제 등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국제적 합의에 따라 가상통화 자금세탁방지와 이용자 보호를 위한 법률적 근거가 우선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가상화폐 취급업소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설립·운영 중이나 국제적으로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해 신고제 도입 등 규제강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신고제 도입, 취급업소 자금세탁방지 의무 강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이 조기에 입법화 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과세 방안을 고심해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상화폐의 채굴과 관련 시설에 ‘취득세’를 과세하거나,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과 같이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향 등을 검토한 바 있다. 부가가치세는 계좌의 익명성 때문에 매매거래 추적이 어려워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됐다. 

하지만 IFRS 해석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부의 규제 마련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에 근거하면 가상통화를 무형자산 및 재고자산으로 분류한다면 부가세를 매기는 것도 가능하다. 또 가상통화 매매에 따른 거래 차익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도 정부가 그동안 주요하게 검토해온 만큼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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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은행 ⓒ뉴시스

가상통화의 여전한 가능성, 확장의 향방은?

가상통화의 화폐성 여부에 대한 기준 제시는, 향후 명확한 규제마련과 시장의 안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상통화의 가능성과 성장 방향에 대한 고민은 다음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현금없는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가상통화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선제 대응이 이뤄지는 모습이다. 유럽중앙은행은 공적 디지털 통화 창설을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최근 리브라를 견제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성명을 통해서도 재차 확인됐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지를 통해서는 중국이 인민은행을 통해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를 연내 도입할 방침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중국은 지난 2014년부터 자체 디지털통화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에는 인민은행 직속 기관인 ‘디지털통화 연구소’도 설립했다. 중국의 디지털통화 도입 방침에는 화폐 유통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민간 가상통화의 확산에 따른 화폐의 탈중앙화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본부 국제거시팀 안성배 연구위원은 이처럼 선제적으로 가상통화 정책을 펼친 국가들의 배경과 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국내 정책을 신중히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은 바 있다. 

안 연구위원은 ‘가상통화 관련 주요국의 정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가상통화에 대한 과세, 규제 등의 정책 수립과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가상통화, 관련거래, 관련행위자 등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필요하고 이미 관련 정의를 수립한 주요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라며 “주요국들은 가상통화에 대한 법적 정의에 따라 관련 거래에 양도소득세, 소비세 등을 부과하고 있으므르 이들 국가에서 과세방안을 선택한 배경, 효과 등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국들은 대부분 형행 가상통화의 익명서이 조세회피, 테러지원, 마약밀매, 불법자금 융통 등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관련 업체의 투명성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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