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지하철 안.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거나,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이동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내리고 탄다.

지하철이 서초역에 섰다. 청년들과 장년들, 성인과 청소년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린다. 직전의 방배역까지는 내리는 이들이 드문드문했다. 전동차의 문을 나서는 그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지만, 서로의 행선지를 확인했다는 듯 간간이 시선을 마주친다.

9월 28일 저녁의 서초역 개찰구 앞은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검찰개혁을 위한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의 집회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애초 주최측은 10만명 정도를 예상했지만, 후일담으로는 전체 참가인원이 백만명인지 이백만명인지 알 수 없는 정도가 됐다.

지상에는 이미 빽빽하게 도로를 메운 사람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도로 중앙의 분리대 위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흡사 기념탑 위의 군상 조형물 같았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집회를 주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저 얼마간의 박자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자연스럽게 구호의 파도를 타고 있을 뿐이다. 군중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쪽을 바라보고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번갈아 외친다.

30대로 보이는 이가 검찰개혁구호가 인쇄된 팸플릿을 흔든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의 종이를 높이 들고 묵묵히 서 있다. 이들은 각자 따로 왔을 것이다. 오면서 서로 눈인사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서초역 앞의 시민들은 맞은편 검찰청 앞 구릉에 자리잡은 시민들이 치켜든 불빛의 일렁임을 본다. 저쪽에서 함성과 함께 불빛 파도가 일면 이쪽에서도 화답하듯 촛불과 스마트폰 불빛을 환하게 치켜든다.

검찰청 앞으로 가는 내내 겉옷이 흘러내리고 서로의 땀에 젖고 몸이 짜부라졌다. 거의 한시간이 걸려 꾸역꾸역 도착한 검찰청 정문 앞에는 모여든 시민의 규모에 비해 초라하게 보이는 작은 무대가 있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외친다.

이들이 외치는 ‘조국수호’라는 구호는 단순히 법무부장관 조국을 보호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구호에 등장하는 조국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최측근이었던 조국, 대학교수였던 자연인 조국을 지칭하지 않는다. 조국수호에서의 조국이란 시민들이 검찰을 성토하기 위해 필요한 ‘대명사 조국’이다.

그간 일반 시민들이 검찰에 불려가 겪은 고초에 대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토로했다. 역사는 검찰이 없는 죄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수없이 증언해 왔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과거 검찰이 무소불위의 힘을 남용해 온 모습 그대로의 방식으로 조 장관 일가를 수사하고 있다고 본다. 아닌 게 아니라 수사중인 내용이 강력한 추단을 곁들여 정권과 대치하는 야당에 흘러가고, 언론은 검찰수사라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변론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신나게 사냥을 했다.

아마 검찰이 개혁된다면 일부 야당의 조잡한 공격과 언론의 편향된 정보장사도 어느정도 교정될지 모른다. 그러니 집회에서 불린 이름 조국은 검찰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아이콘이며, 검찰청은 그들이 개혁대상으로 바라보는 구습의 아이콘이다. 이는 오래된 이야기다.

검찰개혁의 한 장면이 될 공수처 설치는 과거 김대중 정권 때부터 주장됐다. 무려 20여년이 된 내용이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노무현 정권때도 좌초했었다. 지금은 공수처 설치를 주장해온 장관의 행보가 검찰수사에 가로막힐 상황이다. 검찰개혁이라는 개혁적 시민운동의 서사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운동의 의미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집회에 참가하거나 지지하는 시민들은 이 갑갑하고 지난했던 개혁운동의 서사를 몸소 겪어 잘 안다. 그리고 지금 조국이라는 이름의 아이콘이 그들에 의해 새롭게 밀어 올려졌다.

때문에 사람들은 무대 위 영상에서 노무현과 문재인 그리고 조국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지지의 함성을 지른다. 그들은 운동의 맥락에서 왜 ‘내가 조국이다’라고 외쳐야 하는지 그 당위를 절실히 느낀다. 비판론자들은 이들이 조 장관에 대한 수사와 언론보도에 반응하는 모습을 노무현 트라우마로 읽지만, 실제로는 노무현 트라우마가 아니라 노무현 서사가 담긴 개혁서사의 연장이다. 개혁의 길을 목마르게 내달려온 사람들로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20대 청년들 입장에서 그것은 자신들의 삶이 만들어온 서사와 거리가 있다. 검찰청 앞 무대 주변은 대부분 40대에서 60대 사이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청소년들은 종종 보이지만 서초역과 교대역 주변에서 마주쳤던 20대 청년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다양한 연령대 중 일부를 충분히 구성했던 20대가 서초역 집회의 중앙에선 잘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지금의 20대가 태어난 90년대엔 이미 온 사회가 변혁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그들이 97년의 경제환란을 지나며 각자도생의 철칙을 익히던 청소년기에, 서초역에 모인 중장년은 개혁의 성과를 하나씩 만들어가며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20대에게 있어 개혁세력은 기존세계의 일부였으며,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던 자신들의 삶과는 조금쯤 떨어져 있었다. 고등학생들이 죽어간 세월호 사건과 국정농단의 한 축이었던 최순실 모녀의 학사비리가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20대들이 살아온 서사와 직접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다음 세대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서라도 검찰개혁은 필수적이다. 그것을 무대 앞에 앉아있는 중장년층도 잘 안다. 그러나 서사를 공유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검찰개혁엔 동의하지만 정권에는 비판적인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시민운동에 동참하지 않아 온 이들에겐 자신들만의 다른 서사가 존재한다.

때문에 조국수호라는 구호는 아이콘 호명 이전에 정권지지자들의 진영 지키기로 윤색되기 쉽다. 실제로 조 장관의 입지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믿음과 연결돼 있다. 정당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길라잡이 역할을 위해 많은 제안을 하고 정당원들은 그 제안을 지지하며 확산시킨다. 비정당원인 시민들 중에 동의하는 이들이 거기에 지지를 보탠다. 따라서 여당과 정권의 모토가 시민의 열망과 맞닿은 지금의 검찰개혁 국면과 같은 경우, 외견상 이 운동이 친정권 지지자들의 세 과시인지 시민세력의 요구인지 분리되지 않는다. 사실 분리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권과 시민이 한 몸으로 섞인 운동은 많은 것들이 겹치고 그만큼 여러 설명이 동원돼야 한다.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구호는 주장의 선명성을 잠식하기 마련이다. 조 장관에 대한 호오에 관계없이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 입장에선 운동의 확산과 동참에 여러 장애가 생긴다. 집회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 중 일부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언론이 이 부분을 진영대결로만 그리며 시대정신의 관찰에 게으름을 부리는 탓에 검찰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은 산 넘어 또 산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 구호를 외치는 것도, 고충을 겪는 것도 시민들의 몫이다.

서초역 집회의 복잡한 주변부를 하나씩 지워가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단 하나는 시민들이다. 자신들의 운동을 위해 조국 법무부 장관을 아이콘으로 불러냈지만, 정작 그 운동을 대표하는 건 수십년의 개혁서사를 이끌어온 시민들 자신이다. 서초역에 모인 시민들이야말로 이 시민운동의 진정한 아이콘이다.

누구든 운동을 대표하게 되면 무거운 짐을 이게 된다. 무엇을 가리켜야 하며 어디로 끌어야 하는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주동자가 없는 운동의 한계와 적대적인 정보환경을 뚫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짐이 시민들 각자에게 주어진다. 산업화 시대를 이끌던 노년층은 그 짐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 몰라 이 부분에서 큰 실패를 맛보았다. 그들이 물러가는 역사의 자리를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이 물려받는 중이다.

산업화 시대의 민중들은 경제적 풍요라는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어 낸 전적이 있다. 지금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목적을 완수하지 못했다. 미완의 운동을 마무리 짓는 게 다음 세대들을 위해 그들이 줄 수 있는 최종적인 선물이 될 것이다. 그 무거운 짐을 묵묵히 이고 가는 사람들, 2019년 9월 28일 서초역의 아이콘은 시민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집회가 끝나고 다시 서초역으로 향했다. 밤늦은 검찰청 앞 반포대로는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 때문에 더욱 황량하다. 집회장 주변의 경찰들이 도로 위를 정비하느라 분주하다. 모퉁이 인도에 열을 지어 앉아있던 경찰들이 지휘자의 인솔에 따라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때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보인다. 검찰청 앞 집회참가자들 사이에서 발견하려던 20대들의 얼굴이 거기에 무더기로 있었다. 지나가던 중년의 집회참가자들이 웃는 낯으로 그들에게 수고했다며 손을 흔든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의무경찰을 수행하는 청년들은 함께 손을 흔들 수 없다. 그래도 아저씨 아줌마들은 계속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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