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 지음/432쪽/145*210mm/1만6500원/김영사

때에 따라 대중의 상식에 반하는 내용도 보도해야 한다. 그것도 탐사보도의 운명이다.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지 않고 사실 확인을 꼼꼼히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누군가 세상의 진실을 자세히 밝히려고 할 때 이것을 방해하려는 자들이 들이대는 논리가 음모론이다(126쪽).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탐사보도의 일과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기록을 담은 책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이 출간됐다.

매일 접하는 뉴스 속에서 진실만을 추출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에 암흑의 핵심으로 파고들어가 빛을 발견하는 일을 하는 공익 탐정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탐사 저널리스트 이규연이다. 

스포츠에서 지체된 시간을 뜻하기도 하는 이 책의 제목 ‘로스트 타임’은 사법과 정치, 경제에도 출몰한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누군가의 시간은 사라진다. 탐사 저널리스트는 사라진 누군가의 시간, 목소리, 삶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직업이기도 하다.

악을 추궁하는 일은 늘 고통스럽다. 시시때때로 선을 가장하여 진짜 얼굴을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악의 뿌리가 우리의 방관을 자양분 삼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혁이 어떻게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탐사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탐사 저널리스트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규연은 말한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공익 탐정으로 탐사보도의 길을 개척해온 한 탐사 저널리스트의 분투기며 성장기다.  

책은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장에 세 가지씩 취재 현장 사례를 묶어 총 12장, 36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에필로그로 글을 마치며 탐사노트도 실었다.

1장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한 사람은 깨울 수 없다>에서는 조두순 사건과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법을 적용받지 않는 법 집행자인 검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2장 <진실을 땅속에 묻으면 더 큰 폭발력을 축적한다>에서는 버닝썬 사건과 최순실 국정농단, 십상시 문건에 대해 소개하며 권력과 침묵의 카르텔에 대해 말한다.

3장 <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에서는 촛불혁명과 정유라 사건, 대통령 탄핵의 전말을 이야기한다.

4장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에서는 세월호와 재난의 수습, 팩트 없는 진상의 허상 등을 소개한다.

5장 <악행 그 자체보다 악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파괴된다>에서는 가습기 사건과 루게릭 병 환자, 정서적 사다리와 가난에 관해 이야기하며 방관에 대해 말한다.  

6장 <악인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에서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황우석 신화, 지존파 일화 등을 소개하며 악인과 악행에 대해 말한다.

7장 <우리는 언제든 모비딕과 마주칠 수 있다>에서는 5.18 보도와 기자의 진실, 감시사회를 감시하는 자와 만들어진 간첩들을 소개하며 정보 기관의 변신 등을 말한다.

8장 <두 도시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에서는 10년 만의 평양 취재와 대동강 변의 변화 탐사, 북한 녹화사업의 두 얼굴을 소개한다.

9장 <진실도 때로는 다치게 할 때가 있지만 머지않아 치료받을 수 있는 가벼운 상처다>에서는 북한 식당 종업원의 인권과 대북제재와 단둥의 실제 물동량, KAL기 사고 수습 실태 등을 알린다.

10장 <봄은 왔지만 여전히 침묵의 봄이다>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함께 사는 사람들과 X-이벤트 대비 시나리오의 필요성, 메르스 창궐의 비밀에 대해 소개한다.

11장 <스컬리, 진실은 저 너머에 있어요>에서는 목격된 UFO와 프레임에 묶인 〈미인도>, 화성 연쇄 살인 추적 등에 대해 말한다.

12장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에서는 광주로 간 군인들과 전두환 회고록의 진실, 인혁당 유가족의 통곡을 알린다.

이처럼 저자는 굵직한 사건 뒤에 얽힌 취재 일화들을 소개했다. 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던 36개의 생생한 기록이다.

또한 탐사의 정의, 구성, 인터뷰 방법 등을 정리한 탐사보도 취재 원칙과 요령이 12개의 ‘탐사 노트’에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다.

탐사 저널리스트인 저자 이규연은 중앙일보 탐사기획 에디터와 JTBC 초대 보도국장을 거쳐 현재 탐사기획국장으로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기획 및 진행을 맡고 있다. 2005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탐사보도협회 특별상을, 두 번의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탐사보도 한길을 걸었으며 고려대학교에서 과학학과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미래학을 공부했다.

악행 그 자체가 아니라 악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파괴된다. 정의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저자 이규연은 다시 독자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탐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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