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정부의 양육비 피해 아동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삭발식이 열렸다 ⓒ뉴시스
지난 1월 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정부의 양육비 피해 아동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삭발식이 열렸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신상정보 공개로 명예훼손 재판에 휘말린 ‘배드파더스’(Bad fathers) 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다. 이·미혼 한부모가정 자녀의 생존을 위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한국은 이·미혼 한부모가정의 비양육자 양육비 이행 비율이 낮다. 한부모 10명 중 7명은 단 한번도 양육비를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다. 

현행법은 이·미혼 한부모가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로 책임을 회피하기가 쉬워, 양육비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양육비는 자녀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법의 구멍을 보완하고 제재수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에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부모 10명 중 7명 “양육비 받아본 적 없어”

우리나라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육비이행법)에 근거해 미성년 자녀를 직접 양육하는 부 또는 모가 비양육자 부 또는 모로부터 양육비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양육비 이행확보 등 지원을 보장하고 있다.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해서는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 ▲감치명령 ▲세금환급금 압류 및 추심명령 ▲과태료 부과 신청 등의 제재가 가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자가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제대로 보장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한부모가족 가구주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번도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 가구주가 73.1%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최근까지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지급받았다’는 가구주는 15.2% 수준이었다.

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지난해 한국건강가정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양육비 이행 모니터링 내역’에서는 2015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양육비 소송을 통해 양육비이행의무가 확정된 1만414건 중 단 3297건(31.7%)만 양육비가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양육비 지급 이행률이 72%인 미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양육비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양육비를 지급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비자발적 이유’와 경제적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고의적 이유’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가 양육비 지급 이행률이 낮은 원인을 비자발적 이유도 있지만 양육비이행관리기관의 권한과 역할 및 불이행 시 강제조치 등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육비 지급 이행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가장 엄중한 제재는 법원의 감치명령이다. 감치명령은 감치 대상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일치해야 가능한데, 유효 기간은 선고일로부터 3개월이다. 때문에 잠적, 또는 위장전입 등을 통해 그 기간만 피하면 제재 조치가 무효화돼 집행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이라는 감치명령마저도 이 같은 사각지대가 존재하다 보니 양육비 지급 이행률이 전반적으로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허 조사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원에서는 가사소송법을 통해 채무불이행 조치를 마련했다고 얘기는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별다른 조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현행법에서 가장 무거운 제재가 감치인데, 채무자가 3개월 동안 잘 피해 다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실상 제재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국세청에서 한부모가정, 긴급구조 등 특수한 경우에만 재산조회가 가능하도록 돼있다. 채무자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도 안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외국에서는 특정 기관에서 채무자의 소득정보를 확인하고 그 수준에 따라 재산을 직접 압류한다던가, 사법절차를 밟는다. (우리나라 현행법으로는) 채무자의 자발적 이행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양해모 회원들이 서울중앙지검에 양육비 미지급자 처벌을 촉구하는 고소장을 접수했다. ⓒ뉴시스

“양육비 채무자 제재수단 강화해야”

지난 2월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양육피해 부모 모임인 양육비 해결 모임(이하 양해모)는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지난 7월에는 대법원이 양육비가 아동의 생존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하고, 감치 명령 집행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규정을 신설하도록 가사소송규칙을 개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육비 이행 절차를 간소화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부모의 본인동의 없이도 주소나 근무지 조회가 가능토록 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안도 지난 6월 25일부터 시행됐다.

이처럼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기 위한 개선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나, 보다 강력한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2월 25일 정춘숙 의원은 양육비를 정당한 이유 없이 의도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부모를 심사해 △신상명단공개 △운전면허 제한 △출국 금지 △형사처벌 강화 등 제재 조치를 강화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양육비이행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아동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학대행위다”라며 “현행법을 빠져나가는 양육비 불이행 부모들을 제재하는 법안이 빠르게 통과돼 이행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운전면허 제한 항목과 관련해 면허 제한이 양육비 지급 불이행이 실질적으로 관련이 있는지를 놓고 부당결부금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허 조사관은 면허 제한의 궁극적 목적이 양육비 이행 촉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양육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한부모가정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다른데 적법하게 사용돼야 할 세금이 개인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사용되는 게 부당하다는 판단이 이미 1800년대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행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건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더불어 살펴봐야 하는 것은 운전면허는 천부적 권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행정부가 일시적으로 허용한 권한일 뿐 뺏을 수 없는 천부적 권리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만 박탈하기까지 조건이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이행을 하면 권한을 박탈하지 않겠다고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다”라며 “면허정지를 부당하다고 보지 말고, 이는 결국 이행을 촉구하기 위함이라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비자발적 이유로 양육비 지급이 어려운 경우를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동의하며 “경제적 능력이 없는 비양육자를 위해 취업을 알선하는 제도가 있는 국가가 실제로 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이 효과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부연했다.

허 조사관은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제재를 더욱 강화했을 때, 양육비 이행 의무를 지키지 않은 자를 무조건 처벌해서 징역 혹은 벌금을 무는 게 아니라 충분한 소득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