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정상회담’ 프랑스 대표로 활약한 오헬리엉 루베르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통해 ‘프랑스인이 보는 요즘 프랑스’ 전해
중국과 일본 사이 위치한 한국 궁금해서 왔다가 10년째 거주 중
‘바보의 덫’ 투표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 바꾸려는 시민 의식 필요
요즘 세대 힘든 건 프랑스도 마찬가지…“실패 두려워해선 안 돼”

‘비정상회담’ 프랑스 대표로 활약한 오헬리엉 루베르ⓒ크레이저 커피
‘비정상회담’ 프랑스 대표로 활약한 오헬리엉 루베르 ⓒ크레이저 커피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프랑스를 보는 우리의 시선은 너무나 로맨틱하다. 명품 브랜드 샤넬과 루이비통을 탄생시킨 감각적이고 우아한 나라,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예술을 사랑하는 이상적인 곳. 어쩐지 도도할 것만 같은 파리지앵의 이미지.

이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복지 제도의 혜택을 누리고 어딜 가든 정치적 토론의 장이 펼쳐지며, 이민자에게 한없이 관대하기까지. 정말이지 완벽한 나라다.

그러나 프랑스에 대한 환상은 프랑스에서 깨진다던가. 프랑스 북쪽에서 태어나고 자란 80년대생 백인 남자 오헬리엉 루베르(38·Aurélien Loubert)는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를 통해 철 지난 프레임 속에 갇힌 ‘낡은’ 프랑스를 새롭게 보자고 제안한다. 

오헬리엉 루베르는 JTBC<비정상회담>에서 프랑스 대표를 맡아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영화 ‘토르’의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를 닮았다는 평을 들으며 모국인 프랑스에 거침없이 돌직구를 던지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릴3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과 FLE(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어 교육)을 전공한 그는 일본 도쿄와 중국 칭다오에서 잠시 체류한 후 2009년에는 한국 육군사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이후 한국에 10년째 거주 중이며 서울여자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의 강의를 거쳐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4일 크레이저커피 경희대점에서 그를 만나 프랑스에 대한 한국인들의 환상과 현실, 그리고 그의 인생관에 대해 들어봤다.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저자 오헬리엉 루베르가 지난 4일 크레이저커피 경희대점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크레이저 커피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저자 오헬리엉 루베르가 지난 4일 크레이저커피 경희대점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크레이저 커피

살아있는 프랑스를 보는 ‘지극히 사적인’ 시선

Q.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라는 책을 냈다. 간단한 책 소개를 부탁드린다.

몇 년 전 부터 출간 제의는 받았지만 본격적으로 준비한 기간은 1년 정도 된다. 2017년 <비정상회담> 방송을 마무리하고 근무하는 학교가 바뀌어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책을 내게 된 계기는 외국인의 프랑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점이었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의 변화를 말하고 싶었다. 있었지만 사라진 것들과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최근에 생겨난 것들을 성실히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인문, 문화, 사회, 정치 등 전반적인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1980년대에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난 백인남자가 보는 프랑스이기에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점은 책의 제목이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인 이유이기도 하다. 

Q. 프랑스의 불편한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썼다. 책을 내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프랑스인은 원래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미국인들은 샌드위치처럼 앞 뒤 칭찬 사이에 비판을 끼워 넣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비판 사이에 칭찬을 끼워 말한다는 얘기도 있다. 처음에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오히려 고민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 송출되는 방송에서의 몇 마디보다 책에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넓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책을 쓰면서 고민이 생겼다. 가장 먼저 440페이지 가까이 되는 방대한 양이다. 이 책은 틈새책방의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 세 번째다. 그런데 앞서 출간된 <이탈리아의 사생활>과 <상상속의 덴마크>보다 너무 두껍지는 않나 하는 걱정이 됐다. 책이 너무 두꺼워서 들었다 다시 내려놓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두 번째는 오히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다양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부족하지는 않았나 하는 고민이다. 나름대로 깊이 있게 썼지만 지면에도 한계가 있어서 편집을 많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꼼꼼히 봤지만 남아있을 수 있는 오타 부분이나 기타 실수의 여부다. 더불어 같은 프랑스인의 판단이 고민되기도 한다. 특히 주변에 한국어를 하는 프랑스 사람들. 왜냐하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Q. 프랑스는 더 이상 복지 천국이 아니며 이민자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부분이 외국인으로서는 새롭다. 언제부터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건지.

복지제도의 경우 내가 어린 시절 실제로 체험한 부분이다. 그 때는 정말 천국으로 불릴 만 했다. 그러나 20년 전부터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2002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을 때부터다. 그 전까지는 사회주의적 정책의 기조를 어느 정도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유럽의 압박을 받아서 프랑스가 너무 사회적인 나라가 아닌가, 뭔가 좀 더 자유주의 쪽으로 가야한다는 분위기로 갔다. 그래서 국무총리였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두 번째 대통령 임기 시작하고 나서는 지금까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민자 문제는 10년 정도 전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내무부장관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 것 같다. 극우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발언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규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식의 발언이다. 과거에는 이런 말을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인종 차별처럼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영역이 있었는데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으로 인해 극우파가 일부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자유롭게 막말을 하는 등 부정적 의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명백히 그 사람의 실수라고 본다. 현재 프랑스는 이민자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양 극단으로 분열된 상태다. 이민자 문제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정치인들이 이용하고 싶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Q.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다른 나라로 느껴질 정도로 상이하다는 언급을 했는데 아버지 세대와 현재 세대의 가장 큰 장단점을 각각 꼽아본다면.

개인적으로 현재 세대에서 인터넷은 장점, 스마트폰은 단점으로 본다.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인터넷을 하는 시대지만 스마트폰 사용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TV 생방송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은 24시간 뉴스 등 정보가 넘치는 것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다.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인터넷의 장점이 희석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과 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 같다. 관심을 끌기 위해 점점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의 장점은 국제관계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련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 얼마나 간단한가. 그리고 살기에 확실히 편했다. 단점으로는 사회 표면적으로는 인권이 있어도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특히 여성이나 미혼모 문제에서는 정말 여건이 좋지 않았다.

‘비정상회담’ 프랑스 대표로 활약한 오헬리엉 루베르 ⓒ크레이저 커피
‘비정상회담’ 프랑스 대표로 활약한 오헬리엉 루베르 ⓒ크레이저 커피

중국과 일본 사이 놓여 궁금했었던 ‘태권도의 나라’ 한국 

Q. 특이하게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과 FLE(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어 교육)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한국까지 인연이 이어지게 됐는지.

처음부터 외국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겠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일본만을 염두에 두고 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어야 정상적으로 진급이 가능하다. 그래서 평소 관심이 있어 높은 점수를 얻기에 유리했던 일본어를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중국과 일본에 모두 살아봤는데 지도에서 봤을 때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도 한 몫 했다. 영화와 드라마 등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Q. 평소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다면.

솔직히 말하면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웠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태권도장의 엄격한 사범님으로 인해 한국인은 무섭다는 이미지가 생겨 버렸다. 성격이 급하다는 인식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 한국인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겼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또 한국의 ‘조폭’ 영화를 접하고 나서는 폭력적인 사회라는 이미지까지 씌워졌다. 폭력적인 사회라는 것은 완전히 나의 오해였다. 그렇지만 한국에 오고 나서는 친구들 중에 재미로 옆 사람을 때린다던지 게임할 때 세게 때리는 행동에 놀랐다. 친구끼리도 몸이 닿는 것을 조심하는 프랑스와는 느낌이 달라 낯설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도 익숙해져 비슷하게 행동한다.

Q. 프랑스와 달리 비교적 과한 한국의 술 문화에 놀랐다고 밝혔다. 이처럼 문화차이를 체감한 사건이 있다면.

몇 병 마실 수 있나 하는 ‘주량’ 개념도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대학생 파티에 가면 만취할 때까지 마시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취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마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외에 가장 문화차이를 느낀 부분은 길에서 걷는 사람들이 타인의 보행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많아서 놀랐다. 프랑스에서는 걷다가도 뒤에서 누가 오는 것 같으면 얼른 옆으로 비켜 선다. 이는 정면에서 마주칠 때도 마찬가지다. 미리미리 보고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서로 피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리미리’가 아닌 ‘2mm’가 돼야 겨우 피한다. 일단 스마트폰을 보며 걷느라 남을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일행들이 함께 대화하느라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도 빨리 걷는다거나 비켜주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사소한 것인데도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않은 것 중에 하나다.

Q. 유급이 흔한 프랑스에서는 친구가 되는데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한국에서의 나이문화는 어땠는지.

한두 살 차이로 존댓말과 반말을 하는 것이 낯설기는 했다. 다니는 체육관에서는 내가 가장 형인데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나는 반말을 사용해도 대답은 존댓말로 돌아온다. 프랑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 처음 와서는 놀라웠다. 그런데 이런 것이 영어로 말한다면 개선될 수 있겠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미 깊어진 문화라서 바꾸기가 힘들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존댓말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프랑스도 나이에 있어서 완전한 평등사회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다. 대신 한국은 굉장히 현실적인 나라다. 한 두 살의 나이 차이로 깍듯하게 대하는 것들을 처음에는 모순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다. 이제는 나이 문화도 한국만의 고유한 질서로 보인다.

Q. 한국 사람들, 혹은 동양인 전반에서 서양인이 우월하다는 식의 편견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체감한 순간은.

내가 이민자로서 한국에서 받았던 대우는 굉장히 좋다. 동남아시아 이민자였다면 받지 못했을 혜택을 백인 이민자여서 상대적으로 정말 많이 받았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민자들끼리의 비교다. 실제로 백인 이민자라고 해도 자국민에 비하면 학원 영어 선생님으로 추정하는 등 특별하게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적은 없다. 외국인에게 있어 한국사람 만큼의 대우는 아무래도 어렵다. 핸드폰을 개통하기도 어렵고 기타 여러 절차들이 복잡한데 그 과정에서 절실히 느꼈다.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저자 오헬리엉 루베르가 지난 4일 크레이저커피 경희대점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크레이저 커피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저자 오헬리엉 루베르가 지난 4일 크레이저커피 경희대점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크레이저 커피

‘바보의 덫’에 빠져선 안 돼…투표만이 시민 의무 아냐

Q. 정치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투표율은 낮은 프랑스처럼 한국에도 정치문제에 있어 염증을 느끼고 방관하는 국민들이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스무 살 무렵 어렸을 때는 그런 행동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 투표 제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저번 대선 때는 나도 투표했지만 앞으로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참여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투표는 ‘바보의 덫’이라는 말이 있다. 함정인 것이다. 주로 5년마다 투표를 하게 되지만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안한다. 투표했으니까 나는 훌륭한 시민이고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를 바꾸려는 그 이상의 노력은 없다. 이를테면 시위 같은 것들이다. 시위는 나도 해본 적 없다. 게으름뱅이다. 그러나 시민이 활발하게 사회를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너 투표 안 했는데 왜 시위를 해? 늦었어, 투표를 했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최고의 제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프랑스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자유 표현이 있는 나라다. 이유는 대통령의 여당이 득표율의 과반수를 넘지 못했고 소수 중 가장 높은 표를 얻어서 결정됐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투표 후에 국회의원들의 동맹을 통해 합의를 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Q. 과거에 비해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프랑스의 현실은 어떤지.

젊은 세대는 비교적 여성을 대하는 문제에 있어 조심스러운 편이다. 현재 프랑스는 성 평등 관점에서 봤을 때 아직 북유럽 나라들과 비교할 수준은 안 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이 스스로 은행 계좌를 열 수도 없는 등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상황이었던 시대를 살아 온 아버지 세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완전한 평등을 향해 가는 길은 요원하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남성 유명인사들의 성 추문을 폭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처음 시작됐을 때, 한두 달 뒤에 카트린 드뇌브 등 프랑스의 문화계 여성들은 미투 운동이 마녀사냥처럼 극단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투 운동을 마녀사냥이라 주장했던 프랑스 원로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결국 사과했다. 아마도 이건 미국에서 수입된 운동이고 남성들의 유혹하는 행위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실제로 미국에서 생겨나는 사회 운동이 10~20년 후 유럽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미국에서는 문제가 됐더라도 유럽에서는 사회 자체가 다른데도 그대로 수입하는 경우가 좀 있다. 일례로 인종차별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흑인 이민자와 함께 원래 거주하던 흑인들이 노예제도 때문에 살게 된 경우도 있다. 이처럼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령을 제외하고 유럽 내의 프랑스에서는 노예제도가 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프랑스 내에서 인종차별의 문제가 생길 때는 미국의 개념을 그대로 가져온다.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다. 어떤 운동이든 나라마다 상황과 여건에 맞게 적용해야 할 것 같다.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Q. 한국과 프랑스의 가장 큰 차이점과 가장 닮은 점은 무엇인지.

헤어진 애인에 대한 연락문제가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개념 자체가 다르다. 당연히 예외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당연히 전 연인과 연락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연락해도 된다는 쪽이 압도적이다. 프랑스에서도 질투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본인이 싫은 것이지 연락 자체를 이상한 일로 생각하지는 않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가장 다른 점인 것 같다. 또 지인을 만났을 때 음식에 관한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즐겨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만날 때 음식 자체가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프랑스에 계신 아버지랑 스카이프(영상통화)를 할 때도 한 번도 뭘 먹었냐 하는 주제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대신 영화나 책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말 놀랐던 부분이 밥 먹었냐, 뭐 먹었냐는 얘기와 맛집 얘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는 수직적 위계 사회라는 것도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음식에 대해 얘기하면 싸울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정치나 종교처럼 가치관이 드러나는 주제보다 부드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비슷한 점은 교실의 분위기인 듯 하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프랑스의 면학분위기가 자유롭고 적극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럴 것 같지만 한국의 조용한 분위기와 유사하다. 

넘어져도 다시 털고 일어나면 돼…“실패를 이용하세요”

Q.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있다면.

단연 <비정상 회담> 출연이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얼굴이 알려지는 것도 그렇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기도 하고 악마의 편집도 걱정됐다. 이미지가 이상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나.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친구도 많이 생기고 언어도 늘었다. 결국 책까지 내게 됐으니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맞다. 이것도 알베르토의 지인이 되지 않았다면 책을 절대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선순환 과정이었던 것 같다.

Q. 사랑이 금방 식는 편이라면서도 가장 길었던 연애 기간이 무려 6년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본인만의 사랑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어린 시절, 10대 때부터 책이나 매체를 통해 사랑에 대한 환상을 만들지 않나.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 부딪쳤을 때 이상적 사랑이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에 몇 배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해보려 마치 장례식처럼 그 사랑에 대한 추모를 하게 되지만 그 괴로움이 완전히 치유됐는지 나 자신도 아직 알 수 없다. 마치 인생에게 배신당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사랑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내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에 멋지게 속았다. 

Q. 책에 ‘지극히 사적인 여행지’ 라는 꼭지가 있을 정도로 여행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여행지는.

베네치아다. 주변에 물어 봐도 호불호가 갈린다. 나쁜 경험을 겪은 사람도 꽤 많다. 날씨 때문인 것 같다. 베네치아 주데카(Giudecca) 섬에 5일간 머무른 적이 있다. 배를 타고 가는 것도 재밌고 가까운 곳에서 한 발 떨어져서 베네치아를 느낄 수 있다. 겨울에 갔는데 나는 프랑스 북쪽에서 자라 추위에 약하지 않은데도 추웠다. 그리고 날씨가 매일 달랐다. 햇빛 가득한 날이 있는 반면 완전 안개 낀 날도 있어 동화나 영화 같은 어두운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관광객 많지 않은 동네라 더 좋았다. 테라스에서 페이스트리(pastry)를 먹으면서 베네치아를 바라본 기억이 선명하다. 

Q. 밀레니얼 세대의 선발주자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과거에 비해 젊은 세대가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다.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 모두 아버지 세대에는 취업과 내 집 마련 등이 지금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요즘 세대가 힘든 것은 프랑스와 한국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들 ‘도전하세요’라고 하지만 그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현 세대들은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실패를 이용하세요’라는 말을 꼭 건네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다.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 

Q.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나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수줍음이 많고 잘 나서지 않으려 한다. 성적이 좋고 수업에 열심히 임하는 것과는 별개다. 개인적 바람은 학생들이 하루만 선생님으로 입장을 바꿔 봤으면 좋겠다. 역할을 바꿔보면 아마 활발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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