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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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에는 초경을 하면 성인이 돼가는 여정의 시작을 응원한다는 의미로 케이크, 꽃다발과 함께 축하하거나 ‘초경 파티’까지 여는 등 특별하게 여기는 가정이 많아졌다.

생리가 누군가에게는 축하를 받을 만큼 기쁜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남에게 말 못 할 고민이 되기도 한다.

3년 전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리대를 살 여유가 되지 못해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했다는 이른바 ‘깔창 생리대 여중생’ 사연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깔창 생리대 사연을 계기로 정부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한부모가족·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 가정 청소년들을 위해 생리대 지원 사업을 시행했다. 현물을 지원해오던 정부는 올해부터는 바우처 형태로 일정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청소년이 스스로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을 사회적 낙인이라는 부작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생리대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면 누구나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인 만큼 ‘생리대 인권’ 문제는 보편적 복지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일부 지자체에서는 모든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조례안까지 공론화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리대 지급 확대는 과잉복지라는 지적도 있어 쉽사리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자료 출처 = 한국소비자원>

고공행진하는 생리대 값

2017년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한국 생리대 개당 평균 가격이 331원으로, 해마다 20% 이상 인상되고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면 프랑스 202원, 일본·미국 181원, 덴마크 156원으로 한국 생리대 가격 수준은 높은 편에 속한다.

2004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2004년부터 생리대를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으로 지정했다. 당시 재정부는 생리대 부가세가 면제로, 그 가격이 4~5% 정도 인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재정부의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7월 대비 2017년 7월 소비자물가는 13.2% 상승했다. 생리대는 같은 기간 26.3% 올랐다. 생리대 가격이 전체 소비자 물가 대비 2배 이상 올랐다.

생리대 생산업체들은 프리미엄 소재 사용과 신기술 적용, 이로 인한 원가 인상을 이후로 생리대 가격을 매년 7~8%가량 높였다.

그러나 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정작 생리대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펄프나 부직포 수입물가 지수는 하락하는 추세다. 2010년 4월에서 2016년 4월 사이 펄프는 29.6%, 부직포는 7.6%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생리대 가격 인상이 원가 상승 때문이라면 결코 오를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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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대신 고른 ‘신발깔창’

계속해서 오르는 생리대 가격으로 인해 이를 감당하지 못한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휴지나 신문지, 수건, 심지어는 신발 깔창에까지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16년 5월 국내 굴지의 생리대 생산 업체인 유한킴벌리는 신제품 가격을 기존 제품에 비해 7.5%를 인상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보다 앞서 수면 시 사용하는 오버나이트 제품을 20.2% 인상하겠다고 밝히고 논란으로 인해 백지화한 후에 다시금 이 같은 결정을 내려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생리대 가격 인상 논란은 우리 사회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만한 또 다른 논란을 가져왔다. 이른바 ‘깔창 생리대’ 사연이었다.

언론을 통해 생리대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에서 생리대 가격 부담을 호소하는 여론이 일었고, 대체품을 찾아 대신 사용하고 있는 청소년의 사연이 연이어 전해졌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과 휴지로 대신했다는 편부 가정 청소년 사연뿐만 아니라 생리하는 동안 학교도 가지 않고 수건을 바닥에 깐 채 누워만 있었다는 청소년, 학교 보건실에서 받아 사용했다는 청소년 등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같은 상황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깔창 생리대 사연이 알려지기 이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생리대 가격에 대한 담론이 형성돼 있었다.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그동안 생리대에 관한 이 같은 담론들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이유는 개인적인 문제 영역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이전에도 생리대 가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여러 담론이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제도화되거나 바꾸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6년 깔창 생리대, 2017년 생리대 안전성 문제가 불거진 이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해를 거치며 월경과 생리대가 개인적인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고 공적인 담론과 인식전환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공감대를 얻으며 훨씬 다각도로 접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 국가바우처 통합카드 국민행복카드 홈페이지 캡처>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나선 정부

정부는 깔창 생리대 논란 후 같은 해 10월부터 저소득층 여성청소년들에게 3개월치(소형·중형·대형 각 36개씩 총 108개) 생리대를 한 묶음으로 지급하는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보건소에 직접 방문하면 생리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후에는 이메일로 신청한 후 보건소를 방문해 찾아갈 때는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봉투에 넣어서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저소득층 가정임을 확인받고 생리대를 수령하게 하는 방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와 한정된 생리대 종류 등으로 인해 ‘배려 없는’ 생리대 지원 사업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현물로 지급됐을 때는 저소득층이라는 게 드러나기도 하는데 청소년에게, 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저소득층이라고 낙인 되는 것은 민감한 문제”라며 “더불어 일반 생리대가 아닌 월경컵이나, 플라스틱 프리 월경용품 등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정된 물품을 지급받다 보니 선택권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해 올해부터 바우처 형태로 생리대 구매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나 한부모가족 지원대상자, 법정 차상위 가구에 속한 만 11~18세 여성청소년들이 국민행복카드를 통해 생리대 구입 바우처를 지원받게 됐다. 지원금액은 월 1만500원으로, 연 최대 12만6000원이다.

읍·면사무소나 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신청할 수 있으며 내년부터는 복지로 사이트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서도 신청 가능하다. 온라인 쇼핑몰과 대형 마트뿐만 아니라 일부 편의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다. 기본 생리대 뿐 아니라 생리컵, 탐폰 등도 구매할 수 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현물에서 바우처 형태로 제도가 변화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국민행복카드에 지급된 금액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원하는 월경용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월경용품 선택권이라는 측면에서 바우처 제도로의 변화는 개선되고 진전됐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만 “2019년 4월 기준 바우처 신청 비율이 전국 6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전히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등만 지급되다 보니 ‘가난하기 때문에 받는다’는 수치심이나 낙인을 지울 수가 없다”며 “선택적 복지라는 건 세심하게 계획할지라도 이 같은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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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소년 생리대 무상지원 공론화

최근에는 생리대 지원사업이 저소득층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인다.

경기도 여주시의회는 올해 4월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생리대를 무상 지원하는 ‘여주시 여성 청소년 위생용품 지원 조례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여주시에 거주하는 만 11∼18세 모든 여성청소년들은 연간 12만6000원의 생리대 구매비를 지원받게 된다.

여성 청소년 모두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원하는 것은 여주시가 전국에서 최초다.

여주시에 이어 서울시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조례안이 발의됐다. 서울시 어린이·청소년 인권 조례 제19조 6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생용품 지원 대상에서 ‘빈곤’을 삭제해 만 11∼18세 모든 여성 청소년들에게 생리대가 무상으로 지급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조례안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원 대상인 저소득층 학생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생리대 지원을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주시의 여성청소년 생리대 무상 지원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최종미 의원은 “생리대가 일부 저소득층에 지원됨에 따라 해당 여성청소년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다”며 “생리대도 무상급식처럼 선택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써 전국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에서 대표 발의한 권수정 서울시 의원도 “아무리 섬세하게 복지 제도를 만들어낸다고 할지라도 포함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저소득층에게만 생리대를 지원하면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신청을 꺼리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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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복지·역차별 우려도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잉복지라는 의견도 있다. 예산 문제가 가장 큰데, 서울시를 기준으로 발의된 조례안에 따라 생리대 무상 지원이 이뤄지면 대상자가 1만7000명에서 32만5000명으로 늘어나, 예산이 약 411억원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월경은 여성의 기본권에 기초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편적 복지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생리대 가격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월경용품 구입 비용이 부담되는 것은 비단 저소득층 만의 얘기는 아니다”라며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40여년 동안 생리를 한다. 건강권, 인권에 기초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리대 구입을 위해 월 1만5000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평생으로 치면 400~500만원인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는 게 오히려 차별이다”라고 부연했다.

역차별 우려에 대해서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것을 돌봄이 필요 없는 사람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라며 “차별을 없애기 위한 어떤 제도를 만드는 것이,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른 사람에 대한 역차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복지라는 것은 사회구성원이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게 맞다”며 “때문에 지금은 더 많은 논의와 공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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