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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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의료용 대마 사용이 허용된 지 약 6개월이 지났으나 뇌전증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까지 사용이 금지됐던 의료용 대마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 3월 12일부터 처방이 가능해졌다.

의료용으로 승인된 대마추출물(CBD, 칸나비디올) 뇌전증 치료제는 2가지 특정 뇌전증(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드라벳 증후군) 환자의 경우에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해당되지 않는 뇌전증 환자들은 처방을 받을 수 없어 의료용 목적이 아닌 건강기능식품 수준의 CBD 오일이라도 구매하고자 함에도 현행법상 CBD가 대마로 규정돼 있어 구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CBD란 대마초에서 등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인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 성분으로 통증, 염증 및 다양한 건강 상태와 관련된 전반적인 불편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뇌전증 등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들에게 CBD 오일을 사용하면 1분 내로 발작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대마추출물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환각과 같은 부작용을 연상하기 쉬우나, 환각을 일으키는 카나비노이드 성분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과 달리 CBD는 환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중독성도 없다.

때문에 해외의 경우 CBD를 모르핀, 옥시코돈, 하이드로코돈, 메타돈, 펜타닐 등 중독을 일으키는 오피오이드(Opioid, 마약성 진통제)의 대체 성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와 캐나다, 유럽, 일본 등에서는 CBD 오일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CBD 오일은 특정 2가지 뇌전증 환자에게만 처방된다. 뇌전증이라도 이에 해당되지 않으면 처방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환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CBD 마약 제외해 달라” 국민청원도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CBD 카나비노이드 oil 해외직구 제품을 희귀난치성 환자들한테 개인 소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자는 의료용 CBD 오일을 처방받을 수 있는 두 가지 유형의 뇌전증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다. 때문에 건강기능식품 수준의 CBD 오일을 구매하고자 했으나, 현재 식약처에서 성분분석 절차를 통과해 정식 수입신고 된 제품 중 CBD 오일은 뇌전증 환자들의 증상에 효과있는 수준의 CBD 함량에 미치지 못한다.

이 청원자는 “식약처 식품안전나라 페이지에서 관련 제품을 찾아 2가지를 주문해 복용했다”며 “그나마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지만 효과가 확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직구로 구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수준) CBD 오일의 CBD 함량이나 성분이 (식약처 승인 제품보다) 훨씬 환자들에게 확실하고 큰 효과를 발휘한다”면서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환우들이 CBD 오일을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고, 증상에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CBD 오일 등 해외 제품의 허용과 선택권에 있어 가장 고려하고 배려 받아야 할 사람은 정부, 식약처, 병원, 관련 기관 등이 아닌 환자”라며 “당장 지금 환자들의 생활이 불편하다. 꼭 행정에 반영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같은 날 게시된 ‘CBD를 대통령 시행령에서 제외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에서 청원자는 “해외에서는 THC에 관한 규제만 있을 뿐 CBD에 대한 규제는 없다”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CBD는 중독성이 없는 물질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CBD의 안전성은 WHO와 한국과 교류 중인 수많은 나라에서 입증돼왔다”면서 “THC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하고 CBD를 마약규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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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제외·보험적용 등 환자 고통 덜기 위한 제도개선 필요

한국의 경우 CBD가 마약으로 지정돼 있어 환자들이 제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마약류관리법 제2조 제4호 다목은 THC와 함께 CBD를 대마로 규정해 규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 대표 강성석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료용 CBD 오일을 처방받기 위해서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처방을 받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두 가지 뇌전증에 해당되지 않으면 같은 뇌전증 환자임에도 처방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약처에서 허가한 특정 외국 제약회사에서 만든 의료용 CBD 오일을 제한된 환자에게만 처방할 수 있는 것이다.

강 목사는 “해외에서는 이미 CBD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돼 비타민이나 홍삼액과 같은 건강기능식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며 “CBD 오일은 미국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에서도 건강기능식품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약품으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CBD 오일의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 처방받을 수 있는 CBD 오일 제품은 100ml에 약 160만원 수준이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CBD 오일 제품은 개봉 후 12주 내로 복용해야 하며, 이를 초과하면 폐기해야 한다. 사용기한을 기준으로 한다면 약값으로 최소 3개월에 160만원을 소비하는 것이고, 복용량이 많을 경우 훨씬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하다. 그러나 CBD 오일은 보험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환자가 이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

강 목사는 “100ml에 160만원이나 하지만 뇌전증은 산정특례 대상 질병도 아니다. 보험처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중에서 ‘CBD 오일’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헴프씨드(대마 씨앗) 오일에 대해 “CBD 효과가 있는 것은 대마 전체에서 추출한 오일이다. 헴프씨드 오일은 효과가 없다”며 “CBD 효과가 있는 것처럼 판매되고 있는 헴프씨드 오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CBD 오일에 대한 규제가 없어 헴프씨드 오일이 CBD 효과가 있는 것처럼 판매되고 있다. 뇌전증 환자들은 의료용 CBD 오일을 처방받지 못해 효과가 있는 건강기능식품 수준의 CBD 오일이라도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관련 규제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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