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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두 달,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사례는 늘어나는 등 국민적 관심은 늘고 있지만 정작 해결은 지지부진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고용노동부의 가해자에 대한 징계 및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갑질 근절은커녕 2차, 3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지난 7월 16일부터 50일간 들어온 제보는 총 3272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직장갑질119가 운영되지 않았던 20일간 제보를 제외하면 3121건으로, 하루 평균 104건에 해당된다. 이 중 괴롭힘으로 인정된 제보는 총 1698건(51.9%)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5월 직장갑질119에서 낸 ‘직장갑질119, 6개월의 기록’에서 괴롭힘 비율 28.2%로 집계된데 비하면 1.8배나 높다.

직장갑질 119는 법 시행 이후 제보가 유의미하게 증가한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제도의 개선방안과 관련해 괴롭힘 신고에 따른 보복에 대해 정부기관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러면서 괴롭힘 신고를 거부하거나 미온적으로 조사하는 회사를 신고받는 한편 전담 근로감독관을 통해 적극적인 근로감독으로 문제를 시정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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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현실이 됐다. 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처리 과정에 문제가 제기된 것.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직장 괴롭힘 방지법 1호 진정인 MBC 계약직 아나운서 부당해고 논란이다.

앞서 MBC는 노조와의 갈등을 겪던 2016~2017년 당시 11명의 아나운서를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그런데 2017년 말 최승호 사장이 취임으로 경영진이 교체됐고 지난해 2월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해고 통지를 받았다.

계약이 만료된 아나운서들은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지난 3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 소송과 더불어 근로자지위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같은 해 5월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 아나운서들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같은 달 27일부터 MBC 상암동 사옥으로 복직했다. 그들은 사측이 자신들을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콘텐츠사업국 내 별도 공간에 분리했으며, 업무도 부여하지 않고 전산망을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직장 내 괴롬힘 금지법을 근거로 들어 MBC를 상대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진정과 관련해 노사 양측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사측이 개선의 시도가 있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행정종결이었다.

사측이 비방송 업무를 부여했지만 진정인들이 이를 거부했고, 진정인들의 요구에 따라 방송업무 일부를 부여하고자 의견을 묻는 등 순차적으로 소정의 조치를 취한 부분을 인정, 사측의 조치가 명백히 불합리하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게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설명이다.

근무공간과 관련해서는 진정인들을 아나운서국에 재배치하고 선배 일부를 콘텐츠사업국 내 별도 공간에 이동시키겠다고 제안했고, 이를 진정인들이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사측이 경영질서, 작업환경, 다른 직원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근무공간을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불합리한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끝으로 진정 이후 사내 인트라넷을 개방했기 때문에 해당 진정은 해결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직장갑질 119와 진정대리인 류하경 변호사 등은 사측이 제시한 업무는 아나운서들이 아닌 외부 용역업체가 수행하던 업무이고, 근무공간 재배치는 진정인들로 인해 선배들이 희생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실질을 들여다보지 않고 회사가 개선을 시도했다는 것을 근거로 현재 괴롭힘 상태가 아니라고 본 노동부의 판단은 지극히 형식적인 행정처리라고 비판했다.

지난 4일과 11일에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노동부 이재갑 장관이 “(MBC 아나운서 진정에 대한) 노동부 결정은 아쉬움이 있다”고, 시민석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행위 시 판단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해 노동부는 스스로 직무유기를 인정한 꼴이 되며 비난을 면치 못했다.

한편 MBC와 같은 날 진정이 제기된 한국석유공사 진정 처리과정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 석유공사에서 근무하던 진정인들은 지난해 4월과 올해 1월 경력과 무관한 부서로 전보발령 받았다고 주장하며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울산지노위는 ‘해당 전보는 업무에 있어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고 생활상 불이익이 상당하다.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의 과정도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부당전보에 해당된다’며 진정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같은 괴롭힘 행위가 계속됐고 그들은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이 같은 내용으로 진정을 냈다. 이에 대해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은 ‘관련 사항이 법 시행일인 2019년 7월 16일 이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행정종결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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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 등은 직장 내 괴롭힘 전담 근로감독관들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무성의 등으로 인해 2차, 3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사용자와 상사들의 갑질 근절이 되지 않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 진정들의 처리 결과가 향후 다른 진정 판단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결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첫 번째 진정 사건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더불어, 재조사 과정에서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 사건들을 어떻게 다시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 향후 다른 사건들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조치를 취하고 나면 이 전의 괴롭힘은 문제가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고 괴롭힘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때문에 노동부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 상식을 회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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