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자신의 모습으로 살고자 했던 설리를 추모하며
[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자신의 모습으로 살고자 했던 설리를 추모하며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9.10.15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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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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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10월 14일,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씨가 경기 성남시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설리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설리씨는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선 연예인이었습니다. 그가 ‘노브라’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을 때 다수의 언론들은 이를 캡처하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 보도했습니다.

또 설리씨가 그룹 f(x)를 탈퇴한 뒤 출연한 영화를 두고 온라인에서는 설리의 노출 장면을 모은 편집본이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면 마치 누군가 피해를 보는 것처럼 설리씨를 비난하던 이들과 이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던 언론. 과연 그를 둘러싼 ‘논란’은 누가 만든 걸까요. 여성이 자신의 가슴을 숨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설리씨를 비난하던 이들이 그의 노출 장면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설리’ 연관검색어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설리’ 연관검색어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는 설리씨의 포털 연관검색어에서도 드러납니다. 포털에서 ‘설리’를 입력하면 그의 노출 관련 검색어가 연관검색어 상위에 속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숨진 날, 몇몇 언론사는 모자이크 처리된 설리씨의 노출사진을 사용하며 사망소식을 보도했습니다. 한 언론사는 보도에서 설리씨에 대해 ‘노브라를 주창해온’이라는 설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보도를 한 기자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해당 언론사들은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또 설리씨의 시신이 운구되던 자택 앞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그의 시신을 촬영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아울러 그의 사망소식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는 그가 ‘페미니스트’라며 조롱하는 댓글과 함께 수많은 성희롱 댓글이 넘쳐납니다.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고인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없이 여전히 그를 성적대상화하며 ‘놀잇감’으로 삼는 이들은 여전히 가해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설리씨는 자신이 좋은 것을 선택해 살아가고자 하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노브라’를 지적한 이들에 대해 망설임 없이 “시선 강간이 더 싫다”고 받아치는 등 자신을 향한 악플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려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설리씨는 자신을 비난하는 악플에 엄청난 압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JTBC2 ‘악플의 밤’에서 그는 “브라를 하지 않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사진을 SNS에 게시했습니다. 이처럼 당당한 그의 모습을 응원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사진제공 = JTBC2 ‘악플의밤’>
<사진제공 = JTBC2 ‘악플의 밤’>

그러나 이미 악플로 인해 활동을 중단한 바 있던 설리씨는 자신을 향한 비난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어오던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악플이 설리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합니다. 그를 향한 악플은 여성에 대한 성희롱·성폭력을 용인하는 ‘강간문화’에서 기인합니다. 이는 남성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상에 부합하도록 여성을 억압하고 제한합니다. 남성이 원하는 기준에 맞도록 자신의 몸을 ‘숨기면서 드러내길’ 강요하는 관음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없을 것입니다. 설리씨에게 향했던 비난을 보고 여성은 더욱 더 자신을 검열해야했습니다.

이 같은 ‘강간문화’를 만들어 낸 여성혐오가 결국 그를 향한 악플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연애, 옷차림, 체중변화, 화장 등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쏟아지던 자극적인 보도와 악플은 결국 그의 삶을 앗아갔습니다. 설리씨는 여성혐오의 피해자이며 그의 죽음은 강간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입니다.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억압하는 여성혐오는 사라져야 합니다. 개인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관음적으로 들여다보는 강간문화도 사라져야 합니다.

설리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곳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자신의 모습으로 안식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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