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핏빛 복수극...불협화음이 주는 특별한 매력, 뮤지컬 ‘스위니토드’
[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핏빛 복수극...불협화음이 주는 특별한 매력, 뮤지컬 ‘스위니토드’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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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컴퍼니

이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숨 막히게 기괴하고 짜릿하다.

라이선스 뮤지컬 ‘스위니토드’가 브로드웨이 초연 40주년을 기념해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이번 ‘스위니토드’는 기존에 올라왔던 것과 상당히 많이 달라진 모습이어서 더욱 주목해 볼 만 하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산업혁명 당시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 뒤편에 가려졌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조명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를 온몸으로 느끼며 커져만 가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던 사람들, 가진 자의 횡포에 그저 내둘릴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한 자들의 이야기는 ‘스위니토드’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1979년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초연 당시 토니상 8개 부문, 드라마데스크상 9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는데, 이후에도 꾸준히 빛나는 수상 이력을 더해오며 ‘스위니토드’만의 확실한 경쟁력을 입증받고 있다.

‘면도칼로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 이발사와 인육으로 만든 파이 가게 이야기’라는 도시 괴담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탄생된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스위니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로도 익숙하다. 국내에서는 2007년에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가 복수의 대상을 향해 핏빛 칼날을 휘두르며 이를 위해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른다는 파격적인 소재와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광기로 가득 찬 등장인물들, 낯선 음으로 가득한 음악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연을 거듭하며 새로운 프로덕션과 만나 대중적인 요소를 더하고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다시 돌아온 ‘스위니토드’는 뮤지컬답게 무겁고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는 소재를 재치있게 풀어가는 부분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음악과 매 순간 반짝이는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져 작품을 아끼는 마니아층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

특히 이번 시즌 ‘스위니토드’는 정말 새롭다. 사뭇 달라진 코드에 기존 작품이 가졌던 매력을 더 배가시킬만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더해지며 마치 새로운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독특하면서도 혁신적인 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 그리고 그의 작품을 무려 27차례나 맡았던 뮤지컬의 대가 에릭 셰퍼 연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현실로 옮기는 역할을 톡톡히 한 폴 테이트 드푸 디자이너의 무대 디자인은 ‘지킬앤하이드’, ‘맨오브라만차’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대작 흥행을 일으켜 온 ‘미다스의 손’ 신춘수 프로듀서의 남다른 감각과 만나 이번 시즌 ‘스위니토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확 달라진 무대 디자인이다. ‘스위니토드’는 직선 형태가 강조된 다층의 단조로운 무대 구성이 특징이었는데, 이번 무대는 마치 영국의 으슥한 공장 골목 어딘가를 그대로 들어내 공연장에 옮겨놓은 것처럼 상당히 실감 나게 꾸며졌다. 또 그로테스크한 조명은 인물의 표정 변화를 극대화하며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였고, 달라진 배우들의 동선과 소품 배치는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스위니토드’만의 매력인 독특한 음악 역시 새로우면서도 재미있다. 낯선 불협화음이 선사하는 짜릿한 전율은 처음보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빠져들게 만든다. 마치 눈앞에 놓인 칠판을 날카로운 무엇인가로 긁어대는 듯한 소리도 어느새 ‘엉망인 듯 하나 된’ 소리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조금씩 익숙해진 선율로 관객들의 마음을 감싼다. ‘Epiphany’의 선율에 더욱 고조되는 불안감은 묘한 쾌감마저 준다.  

스위니토드(벤자민 바커) 役 홍광호
스위니토드(벤자민 바커) 役 홍광호 ⓒ오디컴퍼니

여기에 ‘믿고 보는’ 최고의 배우들이 함께하게 되면서 공연을 예매하려는 분주한 손길들도 더욱 바빠졌다. 소중한 아내와 딸을 빼앗긴 채 외딴 섬으로 추방을 당했다가 15년 만에 힘겹게 살아 돌아와 처절한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 이발사 ‘스위니토드(벤자민 바커)’ 역에는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가, 그리고 그의 조력자이자 그를 향한 연모의 정을 품어온 파이 가게 여주인 ‘러빗부인’ 역에 옥주현, 김지현, 린아가 함께 하면서 다시 한번 흥행 돌풍을 예고했다.

지난 13일 무대에서 환상적인 조합을 선보였던 홍광호와 옥주현은 뮤지컬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작품에 재미를 더했다. 2007년 초연 때 같은 작품에서 ‘토비아스’로 관객들과 만났던 홍광호는 그동안 더욱 깊어진 감성과 표현으로 타이틀 롤 ‘스위니토드’를 연기한다. 마치 커다란 짐승의 포효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음성은 처절하면서도 차갑다. 무엇이든 당장에 베어버리고 말 것 같은 살기, 살인이 사명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불행한 삶에 집중해서 보다 보면 어느새 ‘스위니토드’의 잔혹한 슬픔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가운데 작품 중간중간 드러나는 위트는 능청스러우면서도 한없이 따뜻해서 이로부터 느껴지는 온도차가 커다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위니토드’ 홍광호는 능숙하게 파이 반죽을 주무르듯 작품을 이끌어가다 최후의 장면에서 또 한 번 소름 돋는 전율을 선사한다.    

러빗부인 役 옥주현 ⓒ오디컴퍼니

 

‘러빗부인’ 역을 통해 다시 관객들과 만나는 옥주현도 대단한 내공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그녀만의 유연하면서도 능청스러운 개그와 사랑스러운 몸짓, 불친절한 선율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고운 음성은 고통에 울부짖는 ‘스위니토드’를 달래기에 충분하다. 관객들은 무겁고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한 장면들을 숨죽이며 지켜보다가도 옥주현이 연기하는 ‘러빗부인’ 덕분에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잠시나마 여유를 찾는다, 두 배우의 합은 특히 ‘A Little Priest’에서 더욱 빛난다. 이처럼 홍광호와 옥주현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조화로 뮤지컬 ‘스위니토드’를 그저 광기에 휩싸인 날 선 복수의 향연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블랙 코미디 요소를 잘 살려내며 작품 몰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

이 밖에 부패하고 타락한 ‘터핀 판사’로 분해 섬뜩한 연기를 펼치는 김도형과 ‘스위니토드’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녀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청년 ‘안소니’역 임준혁, 새장 속 새처럼 갇혀 살아가던 여린 소녀 ‘조안나’역 최서연도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장면에서 실감 나는 연기와 아름다운 노래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또한 ‘러빗 부인’의 충직한 조수로 작품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펼치는 ‘토비아스’ 역의 신주협은 조금 모자란 듯 순수해 보이던 한 청년의 입체적 인물 변화를 확실하게 그려냈고, ‘거지 여인’ 최은실 역시 인상적인 모습으로 무대를 사로잡았다.

ⓒ오디컴퍼니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중학생 이상 관람등급답게 전반적으로 다소 거칠고 잔인한 장면들이 많다. 첫 장면부터 귀를 찢을 듯이 강렬하게 들려오는 괴성, 순간 뜨겁게 뿜어져 나오는 희생자들의 피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들도 그렇고, 여과 없이 전해지는 욕설 또한 불편하게 느껴질 만하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 한계를 둘 수 없듯 ‘스위니토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특유의 멋스러움을 지녔다. 날 것 그대로의 표현에도 조금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찰지게 내뱉는 욕설은 마치 타락한 세상에 대한 풍자처럼 느껴져 조금은 후련하기도 하다. 이렇게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낯설음의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비로소 작품이 가진 비범한 매력과 만나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대중이 반길만한 요소를 모두 갖춘 ‘스위니토드’만의 화려한 레시피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이제, ‘스위니토드’가 선사하는 특별한 핏빛 레시피를 맛볼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귀에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다. 아주 낮고, 은근하게 말이다.    

“들어는 봤나, 스위니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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