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 당분간 곽재우, 허균, 김시습에 대하여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칼럼을 구성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혜량(惠諒)과 관심을 바랍니다.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시기에 대해서는 설(說)이 분분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진왜란 때 왜군 안의 군종 신부에 의해 천주교가 전래됐다는 설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에 천주교 군종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군종이 예수회 소속 신부였던 세스페데스였는데, 고니시 유키나가는 임진왜란 당시 세스페데스에게 미사를 집전해달라고 부탁했고, 당시 왜군에 잡혔던 포로와 왜군이 주둔했던 곳에서 천주교 미사가 집전되었다면, 이 과정에서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문헌 자료가 없고, 왜군 진영에서의 미사가 있었다고 해서 조선 민중들에게 천주교가 전래되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야말로 하나의 “설”로 인정받을 뿐이다.

현재 청(淸)에 보내졌던 사신을 통해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천주교가 학문으로 전래됐던 것이 최초라는 설이 학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다.(그러나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시대에는 종교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학(學)”이라는 말이 학문을 뜻한다고만 볼 순 없다) 그렇다면 조선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천주교를 전래한 사람은 누굴까?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조선에 서학을 최초로 전래한 사람이 허균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평가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허균이 중국에 가서 지도와 『게십이장』을 얻어왔다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게십이장』은 당시 널리 퍼져있던 천주교의 기도서인 것으로 보인다. 게(偈)는 불교에서 자신이 얻은 깨달음이나 불교에 대한 생각을 짧은 시의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뜻하는데, 『게십이장』에서 “게”가 이 한자를 뜻한다면, 노래 형태의 천주교 기도서나 찬송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록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에서 등장한다. 특히 박지원은 사교(邪敎-사특한 종교라는 뜻이며 여기에선 천주교를 뜻한다.)가 동쪽으로 온 것은 아마 허균으로부터 시작되어 주창된 것이고 지금 사교를 믿는 무리는 허균을 좇는 무리라고 밝혀서 박지원이 활동하던 당시 천주교신자들이 허균을 추종하던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구라파(仇羅婆)란 나라에 기리단(伎利但)이란 도(道)가 있는데, 그 나라 말로 하느님을 섬긴다는 뜻이다. 12장(章)의 게가 있는데, 허균(許筠)이 사신으로 중국에 갔을 적에 그 게를 얻어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학이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은 아마도 허균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사학을 배우는 무리들은 자동적으로 허균의 잔당이다. 그 언론과 습관이 한 꿰미에 꿴 듯이 전해 내려왔으니, 그들이 사설(邪說)을 유달리 좋아하고 지나치게 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1)

위의 인용문에서 야사(野史)는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을 뜻한다. 이것은 연암 박지원 역시 『어우야담』에 나온 구절을 인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균이 중국 사신과 접촉한 회수는 3회이고, 중국에 다녀온 것은 2회이다. 이 가운데 다른 기록들과 교차검토 했을 때 허균이 천주교를 접하고 조선에 전파한 것은 마흔 살 때 원접사인 이상의 종사관으로 중국에 갔던 1609년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때는 마태오리치가 북경에서 포교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면서 자명종을 비롯한 서양 문물을 소개하면서 청나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때였다.2) 이러한 점을 감안했을 때 천주교가 조선에 최초로 전파된 시기와 전파 인물은 1609년 허균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전부 추정일 뿐이다. 왜냐하면 허균이 반역의 혐의를 받고 참수되었고, 이로 인해 허균의 기록이 훗날 지배층에 의해서 모두 불태워졌기 때문이다. 다만 허균이 가지고 있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그가 주창했던 평등사상 등을 감안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  박지원, 「순찰사에게 답함[答巡使書]」, 『연암집(燕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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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이화, 『허균의 생각』, 교유서가, 2014, 240-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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