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위안부’ 피해자들, 국가배상청구소송 제기
국가의 불법적인 기지촌 조성 및 관리·운영·통제

지난 3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경기여성연대 관계자들이 기지촌 미군 ‘위안부’ 지원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3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경기여성연대 관계자들이 기지촌 미군 ‘위안부’ 지원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난 2014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가 성매매를 독려하고 관리·통제한데 대한 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 1955년 9월 5일,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밀매음을 단속하는 방법으로 특정지역을 설정하고, 동 구역에는 공개 외인용 땐싱홀(Dancing hall)을 하도록 하라’고 훈시했다. ‘공개 외인용 땐싱홀’은 특수유형접객업소인 미군 전용 클럽을 일컫는 말이다.

이후 1957년 2월 28일 정부는 특수 접객업에 종사하는 여성들, 특히 미군 ‘위안부’를 의무적 건강검진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 전염병예방법과 시행령을 제정·시행한다. 이에 따라 미군 ‘위안부’들은 정기적으로 성병검진을 받아야 했다.

1961년 6월부터는 ‘UN군과 이를 상대로 하는 땐사(Dancer)’에 대해 보건증 발급과 성병검진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또 1962년 6월에는 보건사회부, 법무부, 내무부 공동지침으로 32개 기지촌을 비롯한 국내 총 104개소에 대해 성매매 영업이 가능한 ‘특정지역’으로 지정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미군 ‘위안부’들을 ‘지역재건부녀회’에, 1964년 8월 이후에는 ‘자매회’에 의무 가입해 등록하도록 했다. 또 보건증을 ‘검진증’으로 바꾸고 이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역재건부녀회 또는 자매회에 등록해야했다.

이해 11월경부터는 지역재건부녀회에 등록된 미군 ‘위안부’ 1만640명을 대상으로 정신, 미용, 위생, 영어회화 등의 교육을 실시했다.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청구소송의 공동대리인인 하주희 변호사가 지난 4월 15일 ‘기지촌 미군 ’위안부‘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입법토론회’에서 발제한 <기지촌 미군 ‘위안부’ 관련 법률제정의 필요성: 소송과 법률안 제출 경위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교육을 실시한 담당 공무원들은 미군 ‘위안부’에게 “여러분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하면서 성병 검진을 반드시 받을 것을 강조했다. 또 ‘가랑이를 벌리지 말고,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라’는 등 미군을 상대할 때 취해야 할 태도 등을 자세히 교육했다.

군청에서 오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기지촌에) 이마만큼 터를 닦았는데, 앞으로 이런 관광을 더 할 거다, 이렇게 맨들 거다, 이 땅에다가, 이거를 얘기를 해주는 거지. 지금 미군들이 얼마를 왔고 지금 미군이 얼루 가는데 우리도 여기에 관광지대니까는 더 늘린다는 거지. 더 좋게 맨든다는 거지. 그런 거를 와서 얘기를 해주지. 그리고 나서 아가씨들이 서비스 좀 많이 해주십시오, 이러는 거야.

언니들이 이렇게 서비스를 많이 해서 언니들이 달러 수입을 이렇게 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가 그래도 언니들 덕분에 이렇게 달러 수입이 많이 돼갖고 (좋습니다), 그래야지 (미군부대) 거기서 미군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달러를 많이 벌고 미국을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이거는 언니들의 몫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지. 그러니까 맥주도 많이 팔으면 달러가 그만큼이 많이 와서 우리 정부에 많이 혜택을 줍니다, 이거 얘기를 해주는 거야.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p.159~160 (미군 ‘위안부’ 김정자의 증언. 한울엠플러스, 김정자 증언, 김현선 엮음, 새움터 기획)

경기 의정부시의 미군부대 ‘캠프 스탠리’ 후문 인근에 위치한 미군전용 클럽. ‘캠프 스탠리’의 이전으로 클럽은 문을 닫았고 현재는 옷가게가 입점해 있다. ⓒ투데이신문
경기 의정부시의 미군부대 ‘캠프 스탠리’ 후문 인근에 위치한 미군전용 클럽. ‘캠프 스탠리’의 이전으로 클럽은 문을 닫았고 현재는 옷가게가 입점해 있다. ⓒ투데이신문

법적 근거 없이 ‘성병검진’ 뒤 강제 격리수용

미군 ‘위안부’들은 정기 성병검진에서 낙검(落檢)하게 되면 보건소 직원 등에 의해 ‘낙검자 수용소’로 끌려갔다. 여기서 강제 격리돼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을 격리수용할 수 있는 법적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명백한 위법행위인 것이다.

낙검자 수용소에 격리된 이들의 치료에는 ‘벤자틴 페니실린’ 주사가 사용됐다. 이 약은 저렴하고 효력이 강력해서 각광 받기는 했지만, 1회 며칠 동안이나 근육주사로 투여를 해야 하고 갖은 쇼크의 원인이 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두레방 김은진 원장은 “사람에 따라 페니실린 용량을 다르게 처방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용량을 정해 주사하라고 지시했다.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하고 쇼크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쇼크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보건사회부는 1978년 2월경 페니실린 투약으로 인한 쇼크사고를 수사하는 검찰에 필요한 응급조치를 한 의료진을 면책하도록 하고 수사를 신중하게 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검찰은 이에 응하는 취지의 회신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거기 낙검해갖구 병원에 들어가면, 거기는, 그 ‘언덕 위에 하얀 집’은 가상이에 전부 다 사과밭, 이런 데였었어, 그래갖구 아가씨들을 거기다 갖다가놓으면 얘네들이 도망을 가기가 힘드니까, 거기 들어가면 운동장이야. 말하자면 교도소나 진배없어.

‘언덕 위에 하얀 집’ 하나 있고, 운동장은 크고, 철문 철커덕 잠그고, 곡 교도소지. 그래갖구 그 안에 들어가면 또 (건물 출입문) 철커덕 잠궈. 그러면은, 우리 나가서 좀, 바람 쐴게요, 그럼 (수위가) 옥상 위로 올라가라! 그래.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도 있었어. 거기서 인제 도망 나가다가 떨어져서 즉사해서 죽었지.

걸루 끌려가면 거기서 인제 놔주지, 주사를. 페니실린 맞고 죽는 사람도 있구, 부작용[페니실린 쇼크(penicillin shock): 페니실린 주사로 인한 심한 이상 반응. 귀울림, 호흡곤란, 발한 따위가 일어나며 죽기도 한다]이 나서, (주사를 맞고 나면) 걸음을 못 걸어. 이 다리가 끊어져나가는 것 같애. 그걸 이틀에 한 번씩 맞쳐줘. 그런데 그거를 맞은 사람은 다른 주사가 안 받어. 젤 쎈 거라, 페니실린이. 부작용이 나서 죽지. (팔뚝) 요런 데 테스트 하잖어? 부작용이 이렇게 부풀어 오르잖어? 그런데도 그거를 이만큼을 맞으니까는 죽더라구. 맞았는데 한두 시간 됐어. 우린 두 시간 됐으니까 괜찮겠지……. 아니! 변소칸에 가가지구 변소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죽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것만 맞는다 하면 덜덜 떨었지. 그걸 누가 가지고 오냐, 미군들이 가지고 와, 부대에서. 그거 맞는 거지.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p.245~246 (미군 ‘위안부’ 김정자의 증언. 한울엠플러스, 김정자 증언, 김현선 엮음, 새움터 기획)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미군부대 ‘캠프 스탠리’ 후문 인근에 위치한 미군전용 클럽 입구. ‘캠프 스탠리’의 이전으로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투데이신문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미군부대 ‘캠프 스탠리’ 후문 인근에 위치한 미군전용 클럽 입구. ‘캠프 스탠리’의 이전으로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투데이신문

고법서 ‘국가 위법성’ 확인…대법 판단 남아

이처럼 미군 ‘위안부’를 국가가 관리·통제했다는 자료와 증언이 나온 뒤 미군 ‘위안부’ 피해자 122명은 2014년 6월 25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전지원)는 지난 2017년 1월 20일 1심 선고공판에서 국가에 “원고 57명에게 각각 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기지촌 위안부들을 낙검자 수용소 등에 격리수용해 치료한 행위는 위법하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1심은 1977년 격리수용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이전 수용된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만 강제 격리수용 사실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국가가 기지촌에서의 성매매를 조장·권유했다는 원고 측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 ‘위안부’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최초로,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라 매우 의미가 컸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달랐다. 2018년 2월 8일 서울고등법원 민사22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원고 모두에게 300만~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관리하며 사실상 성매매를 조장했다고 인정했다. 미군 ‘위안부’를 대상으로 실시된 ‘애국교육’에서 “여러분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격려하거나 미군을 상대할 때의 태도를 공무원이 직접 교육하는 등 정부가 성매매를 정당화·조장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의료전문가의 진단 등 합리적 절차 없이 ‘토벌’, ‘컨택’ 등의 방법으로 강제 격리수용한데 대해서는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격권과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법의 이 판결은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진술하고 법원이 이를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또한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인권가치의 확인과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면서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일임을 확인했다.

2심 판결 이후 원고 중 44명은 △국가의 보호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점 △국가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한 것을 각각 별도의 청구로 다루지 않은 점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점 △1977년 이후 전염병예방법에 따라 격리수용치료를 당한 경우 법령에 위반된 것이 아니라고 오인한 점 등을 이유로 2심에 불복해 지난 2018년 2월 22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원고 측이 상고하자 국가도 뒤따라 상고했으며, 이에 상고를 제기하지 않았던 나머지 원고들도 부대상고했다. 이 판결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 2015년 1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2차 변론기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5년 1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2차 변론기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미군 ’위안부‘ 지원법 발의됐지만…피해자 지원 여전히 제자리

고법의 판결로 미군 ‘위안부’의 진실과 피해자의 명예가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이뤄져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기지촌의 미군 ‘위안부’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와 착취를 당해 현재는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김 원장은 “두레방에서 지원하는 피해자는 35명 정도인데,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많다”면서 “(기초생활수급비) 45만원 정도를 받아 월세 내고 나면 생활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착취를 당해 모아둔 돈도 없는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을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김 원장은 “고법 판결로 국가의 잘못이 밝혀진 만큼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 등 의원 18명이 지난 2017년 7월 발의한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미군 ’위안부‘ 지원법)’에는 미군 ‘위안부’의 임대주택 우선 공급, 임대보증금·의료비·간병비·생활안정금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군 ‘위안부’ 지원법은 발의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기지촌이 가장 많았던 경기도에서도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이 박옥분 의원 등에 의해 입법예고 됐으나 상위법이 없다는 등 여러 이유로 번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조장한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로 미군 ‘위안부’들은 성병검진, 치료과정에서 감금, 폭행 등 인권 피해를 입었다. 미군 ‘위안부’는 명백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다.

김 원장은 “국가배상 청구소송 당시 122분의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함께 소송을 냈으나, 이 중 벌써 7분이 돌아가셨다. 의정부 지역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65~75세고, 평택 지역 피해자들은 다 70세 이상의 고령”이라며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하고 정당화하면서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은 역사는 자료와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명백히 드러났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속히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인권유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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