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도 시정연설 비해 2배 이상 사용빈도 늘어난 ‘공정’
‘공정 위한 개혁’ 의지와 함께 ‘검찰개혁’에도 드라이브
지지층 향한 시정연설 평가…찬반여론은 팽팽히 맞서
발목 잡는 경제 상황, ‘공정 위한 개혁’은 힘 받을까

지난 2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키워드로 띄웠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경제(29번)에 이어 공정(27번)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지난 2019년도 시정연설에 비해서도 경제(27번)는 언급 빈도에 큰 차이가 없는 반면, 공정(11번)은 2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공정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논란에서 화두로 떠오른 공정의 가치를 통해 현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를 깊이 받들어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공정거래법, 하도급거래공정화법,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공정경제 관련 법안 처리와 학생부종합전형 전면실태조사,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입시제도 개편안 마련, 채용비리 근절 및 공정채용을 위한 제도개선과 함께 탈세, 병역, 직장 내 차별 등 사회 전반의 불공정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야권은 비판을 퍼붓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은 ‘국민 체감과 동떨어진 자화자찬만 늘어놨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는 비판과 함께 2% 성장이 사실상 어려워진 현 경제상황에 대한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대안신당과 정의당 등도 문 대통령이 공정을 위한 개혁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정시 비율 확대 등 대입제도 개선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공정을 위한 개혁이 얼마나 힘을 받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 전면 내세운 文 대통령…첫번째는 입시제도 개선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다.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며 ‘공정’을 달성하기 위한 개혁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국민의 요구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며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 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었다. 사회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고 전했다.

이어 “공정이 바탕이 돼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민의 요구를 깊이 받들어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 정책협의회’를 중심으로 공정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새로운 각오로 임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정을 위한 개혁에서 가장 먼저 교육개혁에 초점이 맞춰졌다. 문 대통령은 25일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대입제도 개편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교육에서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국민의 절실한 요구다. 정부는 그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면서 학생부종합전형 제도 개선, 서울 소재 대학의 정시모집 비율 상향과 오는 2025년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의 일반고 전환 적극 추진 등을 마련해 오는 11월까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발언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양팔로 X자를 그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발언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양팔로 X자를 그리고 있다. ⓒ뉴시스

검찰개혁에도 드라이브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최근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국민의 뜻이 하나로 수렴하는 부분은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이라며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어떠한 권력기관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엄정하면서도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위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검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감찰과 공평한 인사 등 검찰이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달 안으로 ▲심야조사와 부당한 별건수사 금지 등을 포함한 인권보호 수사규칙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형사사건 공개금지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관련해서도 “권력형 비리에 대한 엄정한 사정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국정농단사건은 없었을 것”이라며 설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해 이견도 있지만, 검찰 내부의 비리에 대해 지난날처럼 검찰이 스스로 엄정한 문책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공수처법은 우리 정부부터 시작해 고위공직자들을 더 긴장시키고, 보다 청렴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공수처 설치의 당위를 강조했다.

팽팽한 찬반여론…발목 잡은 경제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대해 여론은 팽팽히 맞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문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대한 국민인식을 조사한 결과, ‘비공감’ 응답이 49.6%, ‘공감’이 45.8%로, 오차범위(±4.4%p)내에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모름 또는 무응답 4.6%)

세부적으로 ‘비공감’ 여론은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60대 이상과 30대, 보수층과 중도층, 자유한국당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다수거나 대다수였다. 반면 ‘공감’ 여론은 호남, 50대와 40대, 진보층, 민주당 지지층에서 다수였다. 서울과 경기·인천, 충청권, 20대에서는 양측이 팽팽했다.(이상 24일 발표, 2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8267명에 통화 시도, 최종 501명 응답, 응답률 6.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p,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아울러 시정연설에서 여야의 극명한 시각차를 보였던 경제 상황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질GDP(속보치)에 따르면 3분기 실질GDP는 올해 2분기에 비해 0.4% 성장하는데 그쳤다. 이는 올해 2.0% 성장 달성을 위한 마지노선인 0.6%에 미치지 못한 수치다.

이와 관련해 이주열 한은 총재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장에서 올해 2% 성장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남은 4분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을 것”이라며 4분기 성장률을 지켜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와 같이 올해 경제 2% 성장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야권의 책임 추궁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앞으로 국정운영에서 방점을 찍은 공정을 위한 개혁에 정부가 전념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경제는 물론 공정 위한 개혁까지…거세지는 야권의 비판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안에 대해 정부·여당과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은 이 같은 경제 상황에 대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정권이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2%대 성장률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며 “대통령이 시정연설 내내 희망사항만 읊고 간지 불과 며칠 만에 경제폭망은 수치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집경제, 바로 문재인 정권의 경제코드라고 본다. 고집경제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은 고집정치”라며 “소주성 고집, 현금살포 고집, 국민 빚내기 고집 한번 머릿속에 입력되면 절대 지워지지 않는 고집, 아집으로 경제정책을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하락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함께 장기 디플레이션의 전조일 가능성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우리나라 경제에도 시작될 수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경제가 이처럼 엄중한데도 청와대와 정부의 인식이 과도한 낙관론에 머물고 있어 국민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편향적이고 이념적인 경제철학에서 벗어나 작금의 경제위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을 위한 개혁 부분 가운데 입시제도 개선과 관련해 야권의 쓴소리도 이어졌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 시정연설은 문재인 정부에 비교적 협력했던 저마저도 실망과 분노가 치밀었다”며 “어떻게 고용 등 경제가 좋으며 대입시제도를 한마디 사전 논의 없이 그렇게 바꿀 수 있느냐”라고 질타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24일 상무위원회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대입제도 개선의 핵심 쟁점은 정시 수능 비율 확대라는 블랙홀에 빠져버렸다”고 비판했다.

심 대표는 “정시확대는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이자 2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고교학점제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라며 “정부는 정시확대 발언을 거둬들이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교육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감대가 형성된 시급한 개혁과제부터 앞장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 전 장관 관련 논란이 인사청문회와 대정부질문에 이어 국정감사까지 휩쓸면서 한국사회에는 공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조 전 장관이 사퇴했지만, 계속해서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현 정국에서 문 대통령은 입시, 채용 등 사회 전반의 불공정에 대한 개혁을 강조하며 화두로 떠오른 ‘공정’을 국정운영 전반에 내세웠다.

그러나 경제에서도 올해 2% 성장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지고, 공정을 위한 개혁의 첫 대상인 정시 비율 상향과 관련해 일부 야권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을 위한 개혁에 앞으로 제대로 힘이 실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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