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연 작가 “현학적 주제 벗어나 솔직하고 적나라한 감정적 소통 원해”
허승연 작가 “현학적 주제 벗어나 솔직하고 적나라한 감정적 소통 원해”
  • 김종근 미술평론가
  • 승인 2019.10.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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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연 작가
▲허승연 작가

허승연 작가는 어린 시절 미국 유학을 떠나 시카고와 뉴욕 등 낯선 타지에서 줄곧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녀는 여류작가로 살아가는 성장통을 화폭에 쏟아내며, 과감하고 거침없이 삶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사랑의 순간과 외로움, 그리고 혼자 사는 방안의 모습들과 남자들, 꽃에서 생활의 오브제 까지 그녀의 작품들은 때로는 필름처럼 그로데스크하게 지나간다. 이는 곧 이국에서 외롭게, 그리고 아프게 살아온 그간의 삶에 관한 보고서처럼 읽혀진다.

그녀의 그림은 ‘이것이 그림이 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날것이고 거칠며 비린내가 난다. 그러나 이것이 그녀만의 개별적인 삶이고 체험이라면 이는 비린내가 될 수 없다.

그녀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 본연의 고뇌와 그 표정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그만의 언어로 드러낸다는 데서 빛난다. 

파리에서의 첫 초대전을 앞둔 허승연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 들어봤다. 

Q. 이번에 파리에서 첫 초대전을 갖는데 출품 그림들이 신선하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부터 춤이나 노래 등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픈 욕망이 강했는데 인내심이 없어 조기 교육은 안됐다. 나를 표현하고픈 충동에 십대 때 그림을 그리게 됐다. 중학교 때 예술 고등학교 입시를 하며 소묘 기초 등을 다졌고, 덕원예고를 거쳐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월넛힐 예술 고등학교로 유학하며 조금 더 자유로운 표현 방식에 노출됐던 것 같다.

Q. 다소 이른 미국 유학 생활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 예술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시카고 미대를 거쳐 뉴욕 헌터 컬리지 석사를 수료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생활과 사고방식이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 그리고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배웠다. 미술에 국한해 말하자면, 미국의 예술 학교는 강력한 아카데미아를 기반으로 항상 치열하게 독창적 이미지와 새로운 개념,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 형식적 시도가 일치하는 완성도가 요구된다. 결국 작업이 어떤 누구와 비슷하다, 혹은 누구 것 같다는 말은 비록 학생일지라도 치욕적일 수 있는 말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작가와 비슷할지라도 이러한 면은 색다르다는 평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더 나아가 이건 이 사람밖에 할 수 없다는 평가 또한 매우 긍정적이다. 스스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일정한 완성도만을 유지하는 작업은 언제나 혹독한 평가를 받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 작가들은 학부생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작가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Q. 그림 속에 아주 리얼한 뉴욕의 유학생활 풍경이 녹아 있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림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보여 주고 싶었는지.

뉴욕에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동시대 미술을 접하다 보니 작품들이 몇 개 안되는 현학적이고 거대한 주제들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아 답답했다.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았지만 똑똑한 척하기는 싫었다. 내가 정확히 알고 느끼는 감정들만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동시대 팝송에선 사랑과 이별이야기 등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왜 유독 미술에선 현학적 이야기만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일종의 반항심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모두의 경험이 다르듯, 나를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귀국한지 몇 년이나 됐으며 한국과 미국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귀국한지는 햇수로 4년째다. 아직 한국 미술계는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있다. 한국 예술계가 조금 더 신사적이고 겸손하다면 미국 미술계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강한 작업들이 많은 것 같다. 작가들 또한 한국 미술계는 조금 더 내성적이지만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고 작품들에서는 다소 조용하고 얌전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미국 미술계는 확실히 언제나 끓고 있고 빠르게 변하고 역동감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한국과 미국의 사고방식이나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 또한 상이한 면이 있다. 평가 기준이 다른데, 한국에선 잘 그리고 잘 만들어진 작업들을 많이 본다. 미국에선 작가만의 새로운 형태적 기법을 시도하는 작업들이 많다. 한국에서 잘나가는 그림이 미국에서 인정받는다고 할 수 없고, 미국에서 인정받는 작업이 한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또한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 중 하나는 한국 그림은 진중하고 진지함을 추구하는 반면, 미국 그림은 해학적 언어와 새로운 기법, 형상 만들기에 치중한 듯한 작업을 자주 접한다. 한국 회화는 회화 기법보단 내러티브(narrative)에 치중되어 있고, 미국은 ‘형식이 내러티브다(form is narrative)’ 라는 아이디어를 따르는 듯 하다. 

화장중/80.5x60.5cm/2017
화장중/80.5x60.5cm/2017

Q. 한국에서 초기엔 작품평가를 잘 못 받았다던데 그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10여년간 나름 유명 미술 학교들을 거치며 마지막 석사를 마칠 때쯤엔 뉴욕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작가와 평론가들에게 꽤 괜찮은 평가들을 받았다. 그땐 아직 어렸고 들떴던 것 같다. 자신만만하게 한국에 왔지만 평가는 참혹했다. 어떤 분은 그림 그릴 줄 모르냐며 화를 내신 적도 있다. 뉴욕에선 그래도 종종 당선되던 공모도 단 한 번도 붙은 적이 없다. 속상했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조금 겸손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 개인전을 통해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작업을 선보이며 긍정적 반응을 봤다. 이젠 욕먹어도 신경 안 쓴다. 

Q. 작가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미술 작가는 이미지를 통해 많은 대중에게 자아를 나누는 다양한 방법을 수련하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말로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을 안고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고 싶다. 

고된하루/80.5x105cm/2017
고된하루/80.5x105cm/2017

Q. 작품에서 뉴욕의 신표현주의 경향이 보이던데 혹 영향 받은 작가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지.

영향을 받은 작가는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쥬디스 번스타인(Judith Bernstein), 마리아 레스니히(Maria Lessnig), 필립 거스톤(Phillip Guston) 등이 있고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앙리 마티스(Henri Mattise)다.  

Q. 마지막으로 예술가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춤, 음악, 미술 등의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정서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내적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Q. 그림에서 강렬한 자신의 존재와 표정이 드러나는데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메시지가 없는 작업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싶다. 그건 적나라한 자기폭로를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심한 일이건 자극적인 일화이건 일상의 감정적 움직임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감정적 소통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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