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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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법원이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불법촬영한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레깅스가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피해자 역시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한 점을 들어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며 이같이 판단했습니다.

A씨는 지난해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레깅스 차림 여성의 하반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8초간 동영상으로 촬영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앞서 원심은 이 남성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하고 24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한 바 있습니다.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불법촬영한 영상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고 유죄로 판결한 것이죠.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널리 활용되는 만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A씨가 피해여성의 상반신부터 하반신까지 전체적으로 촬영했으며 엉덩이 부분을 특별히 부각해 촬영하지 않았다는 점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됐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부적절하고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불법촬영에 사용된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다른 불법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참작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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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를 두고 ‘보기 민망하다’, ‘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문제다’라는 등 많은 의견이 존재합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피해여성이 레깅스가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면, 또는 A씨가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받아들였다면 불법촬영을 했을까요?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는 피해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제3자인 판사의 입장에서 피해자가 느낀 성적 수치심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죠.

시민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불법촬영에 대한 허용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며 “피해자 의사에 반한 불법촬영 자체가 문제”라며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피해여성이 어떤 옷을 입고 있었든, 의사에 반해 불법촬영된 사진이라면 범죄라는 것이죠.

재판부의 말대로 레깅스는 ‘일상복’으로도 활용됩니다. 다만 일부 남성들에게는 여전히 레깅스가 보기 민망한, 야한 복장인 듯합니다.

자신이 입을 옷을 선택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레깅스를 입든, 노브라를 하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이를 ‘민망하다’거나 ‘야하다’는 등 비난하는 것은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것입니다.

불법촬영에 대해 대법원은 판시를 통해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촬영된 사진·영상의 노출 정도, 촬영의도와 경위, 촬영장소, 각도, 거리,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여성을 불법촬영한 의도를 더욱 명확히 따졌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자의적으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아쉬운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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