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노동자로서의 가치 인정과 이에 따른 합당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지폈던 전태일의 시대와 비교해보면 현재는 임금, 노동시간, 노동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최저임금 1만원을 약속했다. 집권 3년 차, 최저임금은 2020년까지 8590원까지 인상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실현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취임 첫날인 2017년 5월 12일에는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기준 목표치의 약 85.4%를 달성했다.

근무시간도 짧아졌다.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에서 더 발전해 일주일 동안 노동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을 평일과 휴일근로를 포함해 52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도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라’, ‘비정규직 자회사 정규직 전환해라’, ‘임금을 인상하라’라고 울부짖는다.

이에 대해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는 객관적인 상황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고용안정이나 임금 등 측면에서는 노동자들이 과거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진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 발전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한편 청년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뀐 듯 바뀌지 않은’

헌법을 근거로 한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해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켜 균형 있는 국민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다.

전태일 시대에도 근로기준법이 존재했다. 다만 당시 근로기준법은 내용이 부실했고, 그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김종민 대표는 근로기준법 내용 자체보다는 관련법 당사자들의 태도 문제를 지적했다.

“최저임금의 기준이 없었다든가 등의 측면에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근로기준법의 큰 틀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법이 유명무실했을 뿐이다. 법을 지키려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주체가 없었다.”

존재만 할 뿐 제구실을 못하는 관련법들 때문에 그 시절 노동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임금, 노동시간, 노동환경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직을 가질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근로기준법이 있긴 했지만 제구실을 하지 못했고 노동환경은 일부 기업가, 자본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모양새였다. 당시 노동자의 다수가 산업화 시대에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었고 이들은 임금, 노동시간 등 측면에서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게 됐다. 특히 노동자들이 자기 조직을 갖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전태일도 자신의 조직이 없었던 것을 문제로 보고 바보회나 삼동회 등을 노조형태를 만들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전태일 시대와 지금의 노동환경을 비교해 본다면 분명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만 비슷한 지점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객관적인 상황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등 과거와 달리 법으로 보장되는 권리들이 많아졌다. 노조 조직률도 200만명 이상으로 10%를 넘었다. 이 같은 변화는 과거하곤 다른 지점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노동자들이 흔히 얘기하는 고용안정과 임금 측면에서는 여전히 최저의 삶 수준이다. 고용안정과 임금 문제는 더 나아가 결혼과 출산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선택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야기한다. 그 지점에서 전태일 동지가 살았던 시대와 같은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이가 어린 청년노동자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다.”

청년노동에 주목하라

전태일은 자신보다 어린, 혹은 또래 청년노동자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로서의 가치 인정과 합당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지폈다. 당시 나이는 고작 만 22살에 불과했다.

젊은 청년노동자의 죽음은 동시대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했고, 그 파동은 전태일이 사망한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전태일과 청년노동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전태일 동지는 청년노동자들에게 예수님처럼 다가왔다. 전태일 동지가 있었기에 한국사회 노동운동이 이만큼 올 수 있었다. 전태일 동지의 삶을 통해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노조가 형성될 수 있었다. 전태일 동지는 학생들, 청년들로 하여금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선진적인 의식을 깨웠다.”

전태일이 주목했던 청년노동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의 해결해야 할 노동과제 중 하나로,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대두됐다.

“청년 노동문제가 핵심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구의역 김군 사고다. 외주, 하청, 비정규직, 저임금에 대해 폭넓게 설명해서 청년의 고용불안과 임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청년의 이미지는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 입사, 공무원 되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는데 그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청년노동자의 삶이 드러난 것이다.”

김 대표는 결국 오늘날 청년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현실은 20대 전태일의 삶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년 노동자들은 결국 같은 문제를 안고 가는 형국이라는 의견이다.

또 최근 조국 사태에서도 드러났다시피 청년노동 문제는 단순히 노동 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 교육 수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인 거다. 흔히 상위 20%와 나머지 80%의 일자리 격차가 점점 벌어지다보니 임금과 고용안정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상위 20%에 들어가지 않으면 평생 저임금으로 살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제한적이고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편법과 법제도를 바꿀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급 논란이 만들어진 것이다.”

핵심은 임금인상·노동 결집력

김 대표는 한국의 노동운동 발전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임금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은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기존에 고임금을 받는 사람의 임금을 덜자가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자는 것이다. 임금격차를 줄여야 나머지 노동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 때문에 최저임금 1만원이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더불어 사회안전망 구축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퇴사자 중 자발적 퇴사자가 60%, 비자발적 퇴사자가 40%다. 사실 자발적 퇴사자는 권고사직 등의 이유가 많은데, 노동자가 성실하지 않아서 퇴사하는 게 아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가장 큰 이유다. 자발적 퇴사자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등 임금인상과 더불어 사회안전망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

김 대표는 노동운동 발전 및 노동조건 개선의 주요 과제인 임금인상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노조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노조가입률이 100%면 최저임금이 사실 필요 없다. 교섭을 통해 임금협상을 하면 되니까. 그러나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은 그게 불가능한 구조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노조가 확대돼야 한다.”

노조를 불온시 하는 경향이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 노조 결집력 상승이 가능할까에 대한 우려에는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촛불혁명 기준으로 노조 조직률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민주노총의 경우는 22만명이 늘었다. 의식의 변화가 시작된 거다. 노동자들이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노조뿐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어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시민의 입장에서 욕을 하기도 하지만 본인의 노동에 위기가 찾아오면 결국은 노조를 찾는다. 그리고 이제는 ‘파업으로 불편해도 괜찮아’하는 메시지가 많이 확대됐다. 매스컴 등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의식의 변화는 시작됐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은 활력을 띠고 있다. 다른 OECD 국가들과 견줘봐도 한국은 노동계급 운동은 강하고 탄력적이라고 평가된다. 김 대표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로 노조 조직률을 높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더불어 미조직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회안전망 구축, 제도적 변화 등 방안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노동계에서는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 앞으로의 노동운동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그 중심에는 청년노동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노동자 조직이 많이 생겨야 한다. 또 기존에 있던 노조에서도 청년 조합원들의 역할이 높아져야 한다. 전태일 동지는 노동자들이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이끌 수 있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 세대들이 30년째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촛불혁명 세대는 그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촛불혁명 세대들이 노조에서 좀 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전태일의 정신을 살리는 게 아닐까 싶다.”

1960·70년대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을 외면한 정부는 평범한 청년노동자였던 전태일을 열사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바쳐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는,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리는 외침은 그의 시대와 별다르지 않다. 그의 뜻을 이어받은 이 시대의 또 다른 전태일들은 노동시간 단축, 정규직 전환, 임금 인상을 외치며 싸우고 있다. 50년째 울리는 그들의 외침에 응답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