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대립 만연…국민 단합에 지도자 역할 중요
美‧中 굳이 선택 안 해도 괜찮아…균형 맞춰야
‘민주주의’ 아닌 중국, 향후 발전 한계 있을 것
위기는 방관 아닌 예방 필요…선제적 대응해야

신간 ‘대변동’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윤경 김영사 편집주간,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상숙 통역사 (왼쪽부터) ⓒ투데이신문
신간 ‘대변동’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윤경 김영사 편집주간,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고상숙 통역사 (왼쪽부터)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문화인류학에서 역사‧과학‧미래 전망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적 석학인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방한해 한국의 위기를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3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에서는 재레드 다이아몬드(82)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의 신작 <대변동>(김영사)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대변동>은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표작 <총·균·쇠>와 <인류의 문명>, <어제까지의 세계>에 이은 저서로 핀란드, 독일, 일본,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칠레 등 일곱 국가가 지난 수십 년간 겪은 위기와 변화를 비교 분석한 통찰로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을 전하는 책이다.

책은 출간 직후 전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뜨거운 화제가 됐고 이런 인기에 힘입어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김영사의 초청으로 방한하게 됐다.

저서 '대변동'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투데이신문
저서 '대변동'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투데이신문

이날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24년 전 한글 때문에 한국에 처음 왔지만 이후 한글 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좋아져서 계속 오게 됐다. 한국에 올 때마다 아내의 생일, 결혼기념일 등에 쓸 수 있는 선물을 몇 년치 넉넉히 사간다”는 방한 소감으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가장 큰 위기와 그 해법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라는 위험한 이웃을 두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기라고 본다”라며 본받아야 할 사례로 핀란드를 들었다.

그는 “핀란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이웃국가를 뒀다. 강대국인 소련(현 러시아)과 국경을 마주하고서도 핀란드가 오랫동안 독립 국가를 유지한 비결은 지속적인 대화였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만이 아니라 하위 공무원까지 지위에 맞게 소통했다. 국민에게 홍보하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갔기 때문에 믿음을 줄 수 있었고, 이에 러시아는 핀란드를 신뢰하게 된 것이다. 한국처럼 대대적으로 정상회담에 대해 홍보하는 것보다 아무도 모르게 물밑에서 꾸준히 여러 단계로 대화를 지속해나가는 것이 위기 극복에 가장 큰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갈등 해결책에 대한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내의 사촌이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인 친척을 두고 있다는 다이아몬드 교수는 “항상 양국의 관계가 나아졌으면 한다. 중국과 북한이라는 공동의 라이벌을 두고 있는 한‧일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다만 폴란드인이 독일의 사과를 받아들인 것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했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고 무릎 꿇고 진심으로 잘못을 빌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독일 지도자가 보여준 모습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개선되는 데 좋은 본보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느 나라 편에 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약소국이다. 역사적으로 핀란드는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 끼어 그 사이에서 오가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한국의 상황과도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선택할 필요가 있나. 이해관계와 변하는 상황에 맞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 된다. 단지 두 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투데이신문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투데이신문

또 중국의 향후 발전 가능성을 묻자 다이아몬드 교수는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차단할 방법이 없다. 과거 중국의 결정적 과오가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교육 시스템을 닫고 교사들까지 농업에 투입시켰던 점과 경제정책에 실패해 3000만명의 국민이 아사한 것이다. 그런 정책은 한국과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절대 중국이 이번 세기의 주인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 존재하는 이념 갈등에 대해서는 “한국에 와보니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좌우 이념대립이 심각해 놀랐다. 그러나 이는 전 세계 민주국가에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도자는 좌우를 벗어나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치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수한 문자인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도 한 예가 될 것이다. 35년간 식민지를 겪어내고도 경제 기적을 이뤄낸 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광복절이나 한국전쟁 종식 기념일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겠다. 국민 전체가 단합이 돼 함께 이끌어나가려면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충고했다.

아울러 국가의 변화를 위해서는 결정적 위기가 요구되느냐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는 “보통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간과하다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이에 위기로 인해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이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보자면 먼저 핀란드에는 위기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가 있어 위기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세계 2차대전 이후 EU의 여러 국가들은 방관하지 않고 세계 3차대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재차 회의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그런 점을 본받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위기 예방을 위한 사전적 조처와 선제적 대응에 대해 강조했다.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투데이신문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투데이신문

마지막으로 최근 발간한 저서 <대변동>에 대해 그는 “핀란드와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호주, 미국 등 내가 살아 봤고 잘 아는 국가의 위기 요인을 분석한 결과 이대로라면 개별 국가만이 아니라 세계가 위기에 빠지리라는 것이 나의 예측이다”라며 “2050년에 나는 살아있지 않겠지만 1987년에 태어난 나의 쌍둥이 아들들은 여전히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 세계의 위기를 막자는 생각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출간된 <대변동>은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 중의 석학이자 베스트셀러 <총,균,쇠>의 저자이기도 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60년 문명탐사 결정판으로 6년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세계 최초 한국어판과 영어판이 동시 출간됐으며, 서문에는 한국독자를 위한 서문이 실려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세계적 문화인류학자이자 문명연구가다. 1937년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인류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생리학 및 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영국의 <프로스펙트>와 미국의 <포린 폴리시>가 공동 선정한 ‘세계를 이끄는 최고의 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 퓰리처상을 받은 <총,균,쇠>를 포함해, <제 3의 침팬지>, <섹스의 진화>,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나와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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