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허균을 만든 허균의 가족들
[칼럼] 허균을 만든 허균의 가족들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0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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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전에 필자는 허균의 파란만장한 삶, 불교와 도교에 대한 시각과 의미, 천주교를 조선에 최초로 전파한 사람이라는 주장 등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이번 회차에서는 허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서경덕의 문인이었지만, 학문 계통이 다른 이황도 허엽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허균의 큰 형 허성은 이름난 문장가이자 성리학자였고, 글씨도 뛰어났으며, 선조가 죽으면서 어린 영창대군을 부탁한다는 밀지를 내릴 때 참여한 ‘유교칠신(遺敎七臣)’이 됐다. 둘째 형 허봉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인의 우두머리가 됐다. 1582년, 허봉이 창원부사로 있을 때 병조판서였던 이이가 이론만 세우고 군정을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탄핵했고, 그 결과 허봉은 종성으로 유배됐다. 훗날 이이가 이조판서로 직을 옮기면서 아량을 베풀기를 바랬으나 유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유성룡도 이조판서가 된 뒤 허봉을 유배에서 풀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것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1585년 영의정 노수신의 노력으로 유배에서 3년 만에 벗어났다. 이후 조정에서는 허봉을 등용하려고 노력했으나, 허봉이 이것을 거절하고 백운산에 들어가 독서에 열중하고 불교에 귀의했다.1)

이러한 가족 이력은 허균의 사상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허균은 스스로를 유학자라고 자처했다. 허균의 아버지와 형이 당대 유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는 것은 허균이 유학자임을 자처하는 것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허균의 형이자 스승인 허봉이 불교에 귀의하는 과정 역시 허균이 불교에 심취하기 시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허봉도 한 때 주목받는 신하였으나, 불의하다고 판단한 것을 참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불의를 고발하다가 좌절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허균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좌절을 겪었던 시기였고, 허균의 불교에 대한 관심에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의 입장이 담겨 있었다. 또한 그 기반에는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하는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애민 정신은 그의 치세(治世) 사상이 담긴 「호민론(豪民論)」, 즉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민중뿐이라는 생각2) 과도 이어진다.

참고로 허균의 맏형 허성이 동인의 영수로서 정계의 주요 인물이었기 때문에 허균의 벼슬길은 당시 넓게 열려 있었다. 또한 선조 역시 허균의 지식과 글재주를 아꼈다.3) 선조가 허균을 아꼈던 것은 허균이 가진 지식과 글재주 때문이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선조의 입장에서도 동인의 영수였던 허성의 동생과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왕위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 역시 허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허난설헌은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꼽혔지만, 조선시대를 살았던 여성이라는 한계로 인해 그 재능을 다 펼치지 못했다. 거기에 가장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을 두었다는 것은 허난설헌으로 하여금 마음 속에 한과 분노가 쌓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허난설헌은 제 명을 다 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허균은 허난설헌을 중국에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허균을 총애하던 선조가 1609년 사망하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허균의 동학(同學)이었던 이이첨이 실권자로 등장했는데, 그 덕분에 허균은 다시 부름을 받고 광해군 1년(1609) 책봉을 위해 온 명(明)의 사신을 맞이하는 일행의 종사관이 됐다. 이 때 『난설헌집』을 명나라 책봉사인 유용에게 제공하고, 『난설헌집』은 조선보다 명에서 먼저 발간되었다. 그리고 『난설헌집』은 명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공으로 허균은 형조참의까지 올라갔다.4)

특히 허균이 사명당과 만나서 불교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허난설헌과 함께 손곡에게 시를 배울 때였다. 무엇보다도 허균은 이 시기를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상했다.5) 허균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그 곁에 허난설헌이 있었던 것이다.

허균이 가진 사상은 단순히 허균 스스로가 만들어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가족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허균의 사상이 완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이이화, 『허균의 생각』, 교유서가, 2014, 39-42쪽.

2)  김삼웅, 「허균과 정약용이 추구한 가치와 그들의 행적」, 『인물과사상』, 인물과사상사, 2007, 206쪽.

3)  이이화, 『허균의 생각』, 교유서가, 2014, 49쪽.

4)  이이화, 『허균의 생각』, 교유서가, 2014, 45-46쪽.

5)  이이화, 『허균의 생각』, 교유서가, 2014, 45-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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