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할인율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첫날인 지난 2014년 11월 21일 서울시내 한 서점에 도서정가제 시행을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뉴시스
도서 할인율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첫날인 지난 2014년 11월 21일 서울시내 한 서점에 도서정가제 시행을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지난 2014년 ‘동네서점 살리기’를 취지로 도서 할인율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오히려 동네서점이 감소하고 소비자에게마저 득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서 종류와 관계없이 최대 10%의 할인만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완전 도서정가제’가 논의되면서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지난 2003년 2월 27일 ‘출판 및 인쇄 진흥법(현 출판법)’에 따라 시행됐다. 당시 도서정가제는 온라인서점에 한해 출간 1년 이내의 서적에 대해서 10%의 할인판매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출간 1년이 지난 도서는 서점에서 재량껏 할인 폭을 정하도록 했다.

이후 2007년 10월 20일 출판법은 출간된 지 18개월 이내의 책을 신간으로 정해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10% 할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2014년 다시 한 차례 도서정가제가 개정되기 전까지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최대 90%까지 할인된 금액으로 도서를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들은 저렴하게 많은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때문에 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서점으로 수요가 몰리자 동네서점이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됐다. 이에 ‘동네서점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도서정가제가 다시 한 번 개정된다.

2014년 11월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발간 이후 18개월 이내의 도서는 최대 10% 할인이 가능하고, 가격 할인과 별도로 5% 이내의 포인트·마일리지 적립, 사은품 증정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출간 18개월 이후의 책에 대해서도 신간과 동일한 할인율을 적용하도록 의무화해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가격이 같아졌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책을 비싸게 살 수밖에 없게 됐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배송비 무료,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대형서점으로 몰리게 됐다. 소비자로서는 동네서점을 이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동네서점의 어려움은 통계상으로도 나타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2018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전국 서점 숫자는 지난 2013년 2331곳이던 것이 2017년 2050곳으로 감소했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어려운 소형 출판사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형 출판사는 광고에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 있지만, 소형 출판사의 경우 광고비 지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완전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도서소비자생산자플랫폼 준비모임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스타트업브랜치에서 ‘도서소비자와 생산자, 플랫폼이 함께하는 도서정가제 토론회’를 주최하고 있다. 사진제공 = 완전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생태계 준비모임
완전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도서소비자·생산자·플랫폼 준비모임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스타트업브랜치에서 ‘도서소비자와 생산자, 플랫폼이 함께하는 도서정가제 토론회’를 주최하고 있다. <사진제공 = 완전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생태계 준비모임>

이런 가운데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청와대의 답변 요건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청원자는 “출판사는 도서정가제 이후 출판시장이 나아질 거라고 전망했지만 결과는 부정적이기 그지없다. 독서시장은 도서정가제 이후 꾸준히 하락세”라며 “출판사의 매출 규모도 줄고 동네서점도 감소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동일 도서의 전국 균일가 판매제도’ 즉 완전 도서정가제가 논의되고 있다”며 “도서정가제를 폐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완전 도서정가제는 신·구간 관계없이 10%의 할인만 가능하게 하고 도서관, 군부대, 교도소 및 공공기관에 복지의 개념으로 적용되던 할인마저 폐지하는 제도다. 이 청원은 4일 현재 20만3000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완전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도서소비자·생산자·플랫폼 준비모임(완반모)’ 배재광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행 도서정가제 도입 당시 취지는 중소출판사의 경영 개선, 신진작가 발굴 및 작가 수입 증가, 저렴한 가격의 양서 제공, 동네서점 활성화 등 네 가지었다”면서 “이 중 지금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배 회장은 도입 당시 네 가지 취지에 대해 “현재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는 중소 출판사는 거의 없으며, 도서시장이 축소되다보니 신진작가의 등용문도 없어졌다. 양서는 고사하고 소비자의 도서 접근 자체가 크게 감소했으며 지역서점은 여전히 계속 망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 회장에 따르면 도서정가제로 이득을 본 것은 상위 20% 정도의 대형 출판사, 상위 12% 정도의 온·오프라인 대형서점 정도다. 출판 업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전 세계 12개국인데, 구간에 대해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구간에 할인을 적용해 원가라도 회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출판사에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하는 등 모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시장성이 확보된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인세를 선지급할 수 있고 대형서점의 매대에 도서를 올릴 수 있고 온라인 서점 탑 페이지에 광고를 띄울 수 있는 대형 출판사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서점이 줄어드는 것은 문체부가 조사한 바로도 드러나고 있다. 다만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서점 폐업이 가속화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라며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의 할인율에 10%라는 하한선을 적용해 지역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은 ‘최소한 경쟁은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반대하는 분들의 문제제기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마저 없다면 지역서점이 살아남기는 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 소비자들의 도서 접근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출판시장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역서점의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치며 도입의 취지를 전혀 이루지 못한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출판업계의 축소는 물론 문화콘텐츠 확대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제도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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