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 박 작가
▲다나 박 작가

프랑스의 추상화가 올리비에 드브레(Olivier Debre)는 풍경화가로 불린다. 풍경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그의 그림을 보면 풍경이 없다. 그가 캔버스를 가지고 차를 몰고 가서 그린 그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그의 화면에 풍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마음속의 풍경, 그가 느끼고 본 풍경만을 그리기 때문이다. 

Somewhere  arcylic on canvas 72.7x60.6cm 2015
Somewhere arcylic on canvas 72.7x60.6cm 2015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성리학을 사상적 바탕으로 조선 고유색을 추구하는 진경문화를 이끌면서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고유의 회화미로 표현해내는데 성공했다.

최근 다나 박의 그림 속에도 올리비에 드브레의 풍경화 같은 정신과 향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그 풍경의 실체는 불투명하다. 그는 실경산수를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마음속의 풍경을 그리기 때문이다. 

다나 박은 다른 구상 화가들이 보여주는 구상적이고 보편적인 기법들을 거부하고 애초부터 그가 본 풍경들을 손으로 그리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시작하여 고유한 필법을 선보였다. 

그 풍경이나 모습이 참으로 겸재 정선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진전된 테크닉과 감성으로 돌아온 다나 박은 과감히 생략되고 단순화된 형태로 풍경들을 해석하고 읽어낸다. 

Somewhere 60.6x41.0cm Acrylic on canvas.2013
Somewhere 60.6x41.0cm Acrylic on canvas.2013

그 풍경들은 마치 필터를 끼운 것처럼 전체가 푸른색, 혹은 붉은 색 등 단일한 톤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기술은 마치 붓을 옆으로 뉘어 빗자루를 쓸어내리듯 묵찰법의 인상을 떠올린다. 

특히 풍경이 마치 필터를 통해 보이는 듯한 현상들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표현에 있어서도 속도감 있게 그린 나무들이 또 다른 나무들을 물고 늘어지듯 안개 속에 물기가 스며든 정적인 풍경들이 펼쳐진다.

또 어떤 풍경은 설산의 웅장한 모습을 비춰주기도 하고, 바람에 휘날리는 빙하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대상을 향한 그의 시선이 사실적이지 않음을 명확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렇게 다나 박의 자연과 산풍경의 원천은 소나기가 내린 후 개이기 시작한 하늘의 느낌으로 풍경해석이 진행된다. 그리고 그는 산과 언덕, 들판 등 폭풍 속의 흔들리는 풍경의 이미지만을 집중적으로 담아왔다. 

이것은 자연을 보는 형식이 바로 마음속에 대상이 자리함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인이다. 

드브레가 실제 풍경을 보고 마음속 풍경을 그렸다면 다나 박은 그가 본 외형적인 인상을 담아 다시 걸러 풀어낸다. 그의 화폭이 보다 정제되고 새로운 풍경의 표현이 가능한 이유다. 

겸재가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차원의 풍경을 넘어 고유한 화풍을 만들어 냈듯, 이제 다나 박의 내면 속 산풍경도 스스로의 형식과 화풍을 갖추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마음 속의 풍경을 다나 박은 가능한 손과 가슴으로 그려내길 희망한다. 눈앞에 펼쳐진 대상을 아카데믹하거나 리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가슴 속의 진동과 울림으로 풀어내려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구성, 그리고 색상들이 이들을 잘 말해준다. 

somewhere  Acrylic on canvas 116.7x80.3cm 2018
somewhere Acrylic on canvas 116.7x80.3cm 2018

처음부터 대상의 이미지나 사실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결연하다.

그럼에도 사실적인 자연의 모습에서 채집된 풍경이라는 점에서 그의 마음 속 풍경읽기는 보다 폭넓은 장연주의와 추상화가의 상상력을 넘나들고 있다. 

그의 작품전에서 주목했던 <내면의 진동이나 파장처럼 미묘한 감정>, <눈 덮인 설산에  순수함과 눈 내리는 날의 모습>, < 작열하는 듯하다, 핑크빛의 열정적인 꽃>, <설산의 눈처럼 깎아지른 빙벽의 풍경> 등에 집중하는 모습은 여전히 그의 감성이 산을 향한 내면의식과 시선에 닿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과거의 핑크빛 꽃들이 화폭 전면에 봄의 멜로디처럼 들려오는가 하면, 봄날의 오후를 온통 눈부시게 하는 노란 개나리는 없지만 그의 역동적인 구성과 날카로운 풍경 해석은 여전하다.

최근 들어 부쩍 열정적이고 체험적인 산행에서 얻어진 산 작품의 경관은 단호한 의지처럼 다양하고 풍부하여 매우 인상적이다.

사람들의 가슴을 젖게 하거나 떨리게 하는 다양한 색채의 필터들이 그가 다녀온 산 풍경을 더욱 몽환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Somewhere Acrylic on canvas.162.0X112.0cm..2008
Somewhere Acrylic on canvas.162.0X112.0cm..2008
▲ 김종근 미술평론가<br>(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br>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br>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그러면서도 초기에 가졌던 풍경의 골격과 형상들을 보다 세련되게 만들어 냄으로서 풍경을 색채로 인지하거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하고 있어 다나 박만의 매력이 펼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근작에서 돋보이는 중성적인 색채와 조화를 충분히 획득하면서 그가 추구했던 색채표현에 단순미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그의 화풍은 내면의 추상화와 몽환적인 표현주의가 결합되어 새로운 풍경과 욕망의 내면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 세계야 말로 다나 박의 독창적인 표현이며 목적지이며 완성이다. 한정적인 색채에서 벗어나 거침없이 자유롭고 리드미컬한 선으로 내면 풍경의 영역으로서 회화의 특성을 살려낸다.

이는 회화의 근원적인 표현을 정착시키려 했던, 아마도 겸재 정선이 추구하고 열망했던 우리 풍경의 아름다움을 그만의 눈과 그만의 고유화법으로 풀어내려는 치열한 정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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