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한남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불리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흥행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장종화 청년대변인이 낸 논평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장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논평을 통해 “영화의 존재 자체가 소위 ‘페미니즘’의 상징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들여다봐야 할 문제는 그 지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가부장제 사회구조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을 드러낸 작품입니다. 원작인 동명의 소설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호평을 받기도 했죠. 장 대변인의 말처럼 이 영화가 ‘페미니즘의 상징’이 된 것은 그동안 여성들이 겪어 온 차별을 분명하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장 대변인은 초등학교 시절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따귀를 맞은 이야기, 이십대 초반 군에 입대해 선임들에게 욕을 들은 이야기, ‘키 180cm 이하는 루저(loser)’라는 등 맥락을 알 수 없는 ‘남자다움’이 요구된 삶을 살았다며 남성도 피해자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지영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살아왔나 하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남성들도 가부장제 하에서 차별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살아가죠. 하지만 모두 가부장제의 피해자임에도 여성이 받는 차별과 편견의 벽은 남성에게 가해지는 것보다 더 높고 견고합니다. 남성이 겪는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남성도 힘들어’라며 동등한 문제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장 대변인은 “육아휴직의 빈자리에 대한 부담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처지일 때. 아이 함께 키우라고, 육아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돌아갈 책상은 사라져 있다”며 김지영의 남편에게 감정이입을 합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뒤 복직을 하지 못하거나 승진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성은 임신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퇴사할 사람’으로 취급되며 경력이 단절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경력단절 이후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반면 남성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갑니다. 같은 수준의 문제로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이 영화가 ‘페미니즘의 상징’이 됐다고 한 장 대변인은 페미니즘이 젠더갈등을 조장한다고 보는 듯합니다. 그는 ‘여성만 힘든 게 아니야. 남성도 힘들어’라며 성차별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배려와 같은 개인의 태도 문제로 치환합니다.

결국 그는 “김지영 같은 ‘세상 차별은 혼자 다 겪는’ 일이 없도록 우리 주변의 차별을 하나하나 없애가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다. 당신과 나는 서로 죽도록 미워하자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문장으로 자신의 논평을 끝맺습니다.

‘남자와 여자,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이 제기하는 문제는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가자’가 아닙니다.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지적하는 것이죠. 이는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바와도 같습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뿐 아니라 남성에게 강요되는 ‘남자다움’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낮았던 장 대변인은 ‘남자도 힘들어.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이상의 주장을 펼치지 못한 논평을 내놨습니다.

장 대변인의 논평에 대해 정의당 강민진 청년대변인은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해로운 게 맞다”면서도 “그렇다고 ‘남자도 차별받는다’, ‘여자나 남자나 똑같이 힘들다’는 말이 맞는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여성을 차별하고 착취해 남성이 기득권을 누리는 세상이란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비판이 이어지자 민주당은 결국 지난 3일 해당 논평에 대해 “당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점이 있어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 김민재 비상근 청년대변인은 장 대변인의 논평이 철회된 이튿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그 자체”라며 “‘남성도 차별받고 있다’는 동의할 수 없는 근시안적인 주장은 ‘남성 기득권자의 변명’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당 지도부에 재방 방지를 위한 주동적이며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국회 내 페미니스트 보좌진 모임인 국회페미도 “장 대변인이 공적인 자격으로 성평등에 대한 일그러진 사견을 게재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처분이 필요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장 대변인이 이번 논평을 통해 대변하고자 했던 ‘청년’은 누구였을까요. 그는 정말로 ‘82년생 김지영’이 성대결로 번지는 것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죽도록 미워하자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나’라는 말을 했을 테죠. 하지만 장 대변인은 그 원인을 가부장제가 아닌 ‘페미니즘’으로 돌렸습니다.

그의 논평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많은 이들이 친절하게 ‘첨삭’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비판한 것이죠. 과연 민주당에서 이 같은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성평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 정치권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서 이번 논란을 한층 더 깊은 성평등 이해의 기회로 삼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