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노조 판결 오보에 불거진 ‘꾸밈노동’ 논란
여성은 화장해야 예의?…명백한 성차별 발언
뿌리 깊은 ‘성적 대상화’ 심각성 환기하는 계기
근본적 해결 위한 인식개선과 법안마련 시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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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꽃’처럼 아름다울 것을 요구당하는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화장과 옷차림 등 용모에 관한 암묵적 가이드라인은 ‘꾸밈노동’이라는 말로 치환된다.

꾸밈노동이란 통상 ‘일하는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꾸미는 행위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해야 하는 노동’을 뜻하지만, 넓은 범위로는 화장과 옷차림 등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사회적 요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여성 근로자에게 화장을 강요하고 안경을 착용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머리모양 등을 규정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꾸밈노동이 엉뚱한 곳에서, 이상한 오해를 받았다. 최근 샤넬 노동자에 대한 판결을 둘러싼 일부 보도때문이다.

앞서 샤넬 화장품 판매 직원 335명은 서류상 표기된 근무 시작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해 회사에 ‘공짜노동’을 제공해왔다며 하루 30분씩 추가근무를 한 데 대한 수당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법원은 지난 7일 “직원들이 거의 모든 근무일마다 30분씩 조기 출근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쪽 청구를 기각했다.

그런데 해당 내용이 일부 언론에 의해 ‘꾸밈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은 판례’로 기사화됐다. 샤넬 측은 ‘꾸밈노동’을 이미 노동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수당도 지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꾸밈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라는 주장을 한 적도, 할 필요도 없는 잘못된 보도였다.

기사가 나간 이후 샤넬 직원들은 극심한 악플 등 2차 가해에 시달렸다. 샤넬 노동조합 김소연 위원장은 “화장하는 데 돈을 받다니 배가 불러서 그렇다는 둥 갖은 수모를 당하고 있다”며 “재판의 쟁점은 초과 근무에 대한 것이지만 모든 초점은 ‘꾸밈노동’에 맞춰져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꾸밈노동의 강도가 센 것은 맞다. 무대화장 수준의 완벽한 풀메이크업을 요구받기 때문에 집에서 하고 올 수도 없다. 집에 갈 때도 지우고 가는 등 정말 매장만을 위한 화장이다”라며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가이드라인이 바뀌어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메이크업을 재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꾸밈노동’에 대한 일부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도 회사 갈 때 씻고 옷 차려입으니 수당 받아야겠다, 어이가 없네”, “미친, 화장품 매장 특성상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을 배가 불러서 돈을 요구하냐” 등 조롱성 댓글이 올라오는 등 비난이 줄을 이었다.

이렇게 ‘꾸밈노동’에 대한 평소 생각들이 여과 없이 쏟아지며, 오히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사회적 요구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샤넬의 6월 그루밍(몸단장) 가이드 ⓒ샤넬노조
샤넬의 6월 그루밍(몸단장) 가이드 ⓒ샤넬노조

‘여자만’ 업무관련 없어도 규제…뿌리 깊은 ‘외모평가’에 눈물

그동안 노동현장에서 요구되는 외적 기준이 여성에게 유독 엄격하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난 2017년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 여성노동자 49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하면서 외모 품평을 당한 알바노동자는 98%에 달했다. 

또 한국여성민우회가 2017년 4788건의 성차별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일터 영역에서의 성차별 1위로 외모지적 및 복장규정이 꼽혔다.

이 같은 꾸밈노동이 가장 노골적으로 요구되는 곳은 단연 서비스 업종이다. 대표적으로 백화점 화장품 매장이나 항공사 승무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외모가 업무와 전혀 관계가 없더라도 불필요한 규정이나 사회적 인식에 갇혀 불편을 겪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11일 국정감사에서는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 유은정씨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몸매가 드러나는 유니폼이 일하기에 민망하고 불편하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한 항공사에서 3년간 근무했었다는 김민지(가명‧33)씨도 “립스틱과 손톱, 머리 색깔까지 통제당했다”며 “간절히 원했던 직업이었지만 숨 막힐 정도의 규제가 힘들었다. 하지만 남들도 다 하니까 억지로 꾹 참고 다녔다”고 토로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남의 한 병원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윤진(31)씨는 “머리가 짧은 사람에게도 단정하게 보여야 한다며 억지로 머리망을 하게 하는데 이게 정말 고통스럽다”며 “왜 여자만 탈모를 유발시키는 머리망에 타이트한 유니폼을 입게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7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여의사에 대해 ‘화장기 없는 얼굴이 건강하지 않게 보이므로 생기 있는 메이크업을 권장한다’ 등 구시대적 의사 용모 복장 매뉴얼을 배포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서비스업과 전혀 상관없는 일반 직장에 다니더라도 외모 지적을 피하기는 힘들다. 가구회사에서 일하는 장민희(33)씨는 “지각해 화장 한 번 안하고 갔더니 그날 하루 종일 예의없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같은 팀에서 일하는 남자직원에게는 당연히 하지 않는 말을 여자라는 이유로 들으니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성환경연대 안현진 활동가는 “여성은 서비스직과 무관한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굉장히 엄격한 기준을 강요받는다”며 “남성은 기준이 있더라도 청결 등의 굉장히 단조롭고 합리적인 요구를 받는다”라고 꼬집었다.

안 활동가는 “이 같은 꾸밈노동에 대한 암묵적 강요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며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하는데 이를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주장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로밖에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화장 안 해 수난 겪는 여성 없어야…인식개선과 법안마련 시급

꾸밈노동은 해외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3월 영국 버진 애틀랜틱 항공에서는 승무원의 의무에 포함됐던 ‘메이크업’ 규정을 없앴다. 아울러 여성 직원에게 하이힐을 강요하는 문화가 만연한 일본에서는 지난 8일 여성복장 규정 개선을 청원하는 ‘구투(Ku too)’ 서명운동이 일어나 2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구투는 신발을 뜻하는 일본어 ‘구쓰’와 고통이라는 의미의 ‘구쓰’, 미투 운동을 결합해 만든 단어다.

이 같은 움직임에 국내에서도 미약하나마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2년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승무원에 대한 과도한 외모 및 복장 규제에 대한 진정을 제기해 이듬해 바지 유니폼을 지급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아냈다. 이와 함께 머리모양 규정 등도 ‘안전을 해치지 않는 선’으로 개선됐다.

은행권에서도 수평적인 기업문화 조성을 표방해 유니폼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그 선두에 섰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9월 노사협의 후 유니폼 지급을 중단했고 지난 5월부터는 유니폼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KDB산업은행은 지난해 11월 유니폼 의무 규정을 폐지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는 꾸밈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적 인식개선과 법안 마련을 꼽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는 “꾸밈노동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이 장식품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라며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화사하고 예쁘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여성의 인격권과 건강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업무 방해까지 야기한다”고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어 “현행법상 꾸밈노동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법령이 없다. 남인순 의원이 지난해 3월 발의한 ‘성별에 의한 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 중 8조 2를 살펴보면 근로자 등에게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복장의 착용을 요구하는 등 성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이조차 현재 계류 중이다”라며 “가장 시급한 것은 사회적 인식 개선과 관련 법안 마련이다. 먼저 여성이 화장을 안 하고 와도 수난을 겪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하고 법안 마련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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