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판결 30년 만에…재심 청구한 화성 8차 사건 윤모씨
당시 경찰‧검찰‧국과수‧재판‧언론까지 합리적 의심 하지 않아
30년 전 윤씨 자백과 이춘재 자백 중 어느 것 믿을지가 쟁점
재심 청구 통해 윤씨 무죄 입증은 물론 사법 관행 개선돼야

윤씨와 윤씨 재심변호인단은 13일 오전 10시 재심청구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부터)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변호사, 윤모씨, 박준영 변호사, 법무법인 다산 이주희 변호사 ⓒ투데이신문
윤씨와 윤씨 재심변호인단은 13일 오전 10시경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 3층 대강당에서 화성 8차사건 재심청구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부터)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변호사, 윤모씨, 박준영 변호사, 법무법인 다산 이주희 변호사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 윤모씨(52)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지 30년 만에 재심 청구에 나섰다. 윤씨는 자신의 무죄를 강조하며 경찰의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윤씨와 윤씨의 재심변호인단은 13일 오전 10시경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 3층 대강당에서 화성 8차 사건 재심 청구서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오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가정집 내에서 박모양(당시 13세)이 잠을 자다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듬해 7월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같은 해 10월 2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간 복역했다. 모범수로 감형돼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지난 10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이춘재(56)의 살인 자백 이후 변호사와 함께 재심 청구를 준비해 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 소속 김칠준‧이주희 변호사가 참석했다. 

자필로 쓴 발표문을 읽는 윤씨 ⓒ투데이신문
자필로 쓴 발표문을 읽는 윤씨 ⓒ투데이신문

윤씨는 자필로 쓴 발표문을 준비해 재심 청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윤씨는 “저는 무죄입니다.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교도소에서 나와 오갈 데가 없었지만 고마운 분들이 큰 도움을 주셨으며 지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온전히 믿는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이어 “어머니께 감사하다. 모든 것에 대해 희망을 주셨고, 인간답게 살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가와 연락이 두절됐다. 고향이 충북 진천인 모친 박금식 씨를 알고 있는 사람의 연락을 기다린다”며 외가 식구를 공개적으로 찾기도 했다. 

또 “내 인생을 보상받을 수는 없지만 경찰이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해주기 바란다”라며 “재판부도 진실을 밝혀 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윤씨가 자필로 쓴 발표문 ⓒ투데이신문
윤씨가 자필로 쓴 발표문 ⓒ투데이신문

자백은 증거의 왕이자 가장 위험한 증거

윤씨의 재심 사건을 맡은 박 변호사는 “자백은 증거의 왕이자 가장 위험한 증거다”라며 “이 사건은 30년 전 윤씨의 자백과 최근 이춘재의 자백 중 어느 것을 믿을지가 쟁점이다. 윤씨 자백은 직무상 범죄로 만들어낸 자백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박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제 420조가 규정한 7가지의 재심 사유 중 제 5호 ‘새롭고 명백한 무죄증거’와 제 7호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를 이번 재심청구의 사유로 들었다.

먼저 새롭고 명백한 무죄증거로는 화성 사건의 피의자인 이춘재가 피해자의 집 방 구조까지 그려가며 침입경로 등에 대해 자세히 진술한 점과 피해자 사망 후 현장에서 촬영된 피해자의 사진이 이춘재의 자백과 일치하는 점 등을 꼽았다. 

발언하는 박준영 변호사 ⓒ투데이신문
발언하는 박준영 변호사 ⓒ투데이신문

아울러 윤씨 유죄판결의 주요 증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가 취약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했을 뿐 아니라 주관이 개입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국과수의 방사성 동위원소 검토 결과에 대해 여러 전문가가 오류 가능성을 지적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에 대해 “당시 경찰이 소아마비 장애인인 윤씨를 불법 체포 및 감금하고 구타 등 가혹행위를 했다”며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해 맞춤법이 서툰 윤씨에게 정해진 내용을 받아 적게 하는 등 진술서 작성을 강제했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이 윤씨를 강제 연행하면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았으며 경찰 조사 과정과 검찰 송치 후에 이뤄진 두 번의 현장검증도 영장 없이 진행됐고 조서대로 연출하라고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경찰‧검찰‧국과수‧재판‧언론까지 합리적 의심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의 원본 기록은 폐기됐지만 경찰 수사 기록은 보존돼 있다. 하늘이 준 기회다. 추후 국가기록원에 수사기록을 문서송부촉탁 신청할 예정이다”라며 “(재심이 결정되면) 이춘재를 법정에 반드시 불러야 한다. 사건 당시 경찰과 검찰도 법정에 세워야 한다. ‘고문하지 않았다’고 하면 위증으로 고소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재심청구의미를 밝히는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변호사 ⓒ투데이신문
재심청구의미를 밝히는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변호사 ⓒ투데이신문

막을 수 있었던 불행…사법 관행 바로잡는 계기 돼야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변호사도 당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범죄행위에 대해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경찰이 불법 수사 및 강요에 의한 자백을 받아냈지만 검찰이 현장검증이나 국과수 감정 결과서를 합리적으로 의심했다면 걸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국선변호인 제도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불행을 막았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당시 사법기관과 수사기관은 어느 한 곳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이어 “우리 변호인단은 윤씨의 무죄 입증과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동시에 이 사건을 계기로 온 사회가 합리적 확증 편향에 빠졌던 사실을 되돌아봤으면 한다”며 “이번 재심 청구로 인권수사와 과학수사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에 관한 원칙 등이 좀 더 명확하게 개선되고 사법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라고 재심 청구에 대한 총론적 의미를 설명했다.

이날 윤씨와 변호인단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11시경 수원지방법원 민원실로 이동해 정식으로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재심 사유 검토한 후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이번 재심청구와는 별개로 지난 10월 이춘재의 살인 자백 이후 윤씨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하는 등 화성 사건에 대한 전 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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