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성적 지향’ 삭제 인권위법 개정안, 성소수자 권리는 어디에
[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성적 지향’ 삭제 인권위법 개정안, 성소수자 권리는 어디에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9.11.15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018년 10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0.20 평등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8년 10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0.20 평등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12일,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 등 40명이 성별을 생물학적 남성 또는 여성 중 하나로 규정하고 성적(性的) 지향 항목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현행 인권위법 제2조 제3호는 고용·교육·직장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 의원 등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성별’이 규정돼 있으나 이에 대한 법적 정의가 누락돼 있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명확한 정의 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헌재는 지난 2010년 11월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이유로 제기된 병역법 제3조 제1항 등 위헌확인 소송(2006헌마328)에서 “성별은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어려운 생래적인 특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006년 6월 대법원은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허가 신청 사건(2004스42)에 대한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성의 결정 기준을 “종래에는 생물학적 요소에 따라 결정해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 및 정신적·사회적 요소들 역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같은 판례에 비춰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두 가지뿐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안 의원 등은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종교·표현·학문의 자유가 현행법 ‘성적 지향’ 조항과 충돌하는 등 법질서가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성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인 청소년 및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신규 에이즈감염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급증하는 등의 수많은 보건적 폐해들이 초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권위법 제2조 제3호의 ‘성적 지향’을 삭제해 우리 사회의 전통과 건전한 성도덕을 보전하고 수많은 보건적 폐해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입법 목적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성별을 생물학적 여성, 남성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혹은 에이젠더(Agender. 자신이 어느 성별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성별 정체성이 없는 사람), 인터섹스(Intersex. 간성) 등을 인권에서 배제한 것입니다.

또 성적 지향 항목을 삭제한 것 역시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행태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발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마주하게 될 차별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 의원 등은 “양심·종교·표현·학문의 자유가 성적 지향 조항과 충돌하는 등 법질서가 훼손된다”고 설명했으나, 자유와 평등이 충돌하는 경우 제한돼야 하는 것은 자유이지 평등이 아닙니다. 자유가 침해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평등에서 배제하는 것은 배제된 이의 자유를 박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료 출처 =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 홈페이지
<자료 출처 =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 홈페이지>

개정안이 발의되자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14일 논평을 내고 “차별금지법안을 발의 못하는 20대 국회의 실상이다. 혐오에 합세한 의원들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21대 국회의원 명단에서는 삭제하자”며 “인권위도 두 차례의 개악안 발의에 대해 강력한 의견 표명과 아울러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개악안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종교·표현·학문의 자유를 볼모로 삼으며 성적지향 조항과 충돌한다고 말한다. 과연 혐오가 자유일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라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며 “발의자들은 당장 인권을 후퇴시키는 개악안을 철회하고 한 줌의 염치라도 되찾으라”고 질타했습니다.

정의당도 비판에 나섰습니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평등과 차별금지는 헌법적 기본권”이라며 “법에 명시된 차별사유 중 성적 지향만을 삭제하자는 것은, 성적 지향이 다르면 차별해도 된다는 주장과 같다”고 비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성소수자위원회 준비모임도 개정안에 대해 “명백한 퇴행”이라며 “소수자의 권리를 뺏는 도둑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발의자 40인에 포함된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과 이개호 의원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으로서 자격미달일 뿐 아니라, 당원으로서도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당의 강령을 위반한 셈”이라며 “중앙당은 결코 이 사태를 묵과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번 개정안 발의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제도화하는 행태입니다. 인권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소수자를 배제하는 이들을 과연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지역구에도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소수자 국민의 인권을 짓밟고 혐오를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혐오를 이용해 지지를 얻으려는 이들은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습니다. 혐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권위법 개정안은 철회돼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