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외고·자사고·국제고 일반고 전환키로
고교서열화 해소·평등교육 실현 기대 높아져
교육특구 부활·교육 하향 평준화 우려도 있어
정권마다 바뀌는 교육정책에 학생·학부모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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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대한민국의 학교는 입시 학원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의 교육은 소위 ‘상위권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 중심 교육으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상위권 대학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는 고등학교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 영향으로 고등학교에도 서열이 매겨졌다.

창의적 사고력과 대인관계 능력, 감성적 사고력, 공감능력 등 학생 개개인이 가진 다양한 역량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적과 점수만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방식의 고교 서열화는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그간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해 고등학교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처럼 근거리 기준 또는 추첨 등의 방식으로 배정하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등을 펼쳐왔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나 자립형사립고(이하 자사고), 국제고, 과학고 등과의 간극을 줄이지 못했다. 이 학교들은 설립 취지와 다르게 학교 간 서열화, 사교육 심화 등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문재인 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7일 교육부는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은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골자로 하는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이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내놨다. 학교 간 서열화와 사교육 심화 등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교육부 발표 이후 학부모들을 비롯해 교육계, 정치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선 의견이 매우 분분하다.

서열화 해소를 반가워하는 한편 교육의 하향평준화와 강남 8학군 부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 정당에서는 교육부가 임의로 외고·자사고·국제고 지정을 취소할 수 없도록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으며, 일반고 전환 대상 학교 출신 동문들이 법적 투쟁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시스

교육부 ‘고교서열화’ 해소방안
외고·자사고·국제고, 일반고 전환

교육부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따르면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2025년에 맞춰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오는 2025년부터 외고·자사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한다.

이는 현재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부터 적용될 예정이며, 전환 전 입학한 학생들은 외고·자사고·국제고 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학생 선발과 배정 등은 일반고와 동일하게 운영하되 학교 명칭, 특성화된 교육과정 등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번 대상에서 제외된 과학고와 영재학교에 대해서는 선발방식 개선 등으로 고입 단계의 사교육 유발요인을 순차적으로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학생 개개인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위해 2025년부터는 학점제형 교육과정도 운영한다.

더불어 일반고 교육 역량을 강화하고자 △고교학점제 도입 △학생 진로·학업설계를 위한 원스톱 지원시스템 마련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맞춤형 교육 실현 △교원 전문성 향상 및 교원 양성 체제 강화 △신뢰도 높은 일반고 환경 조성 등의 방안도 함께 내놨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25년부터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에 맞춰 일반고 집중육성과 미래형 대입제도 개선, 고교체제 단순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고등학교 교육을 획기적으로 혁신하는 발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의 자사고 폐지 반대 기자회견 ⓒ뉴시스

교육특구 부활 가능성 제기
“과도한 오해와 우려일 뿐”

교육부 발표 이후 갖가지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른바 ‘강남 8학군’ 등 교육특구로 학생들이 쏠리거나 지역 명문고가 부활하는 현상이 심화될 거란 지적이다.

지난 7월 교육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자사고가 본격 개교한 시점은 이명박 정부가 ‘고교다양화300프로젝트’를 추진한 2010~2011년이다. 강남 8학군 순 유입 인구는 2009년 7690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자사고가 운영된 이후에는 △2010년 4784명 △2011년 3609명 △2012년 3313명으로 확연하게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자사고 설립이 강남 8학군 쏠림 현상을 방지하고 분산효과를 가져왔는데, 외고·자사고·국제고 등을 폐지할 경우 또다시 특정 학군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재발할 거라는 해석이다.

또 외고·자사고·국제고 못지않게 고교 서열화 중심에 있지만 다른 특목고와 비교해 설립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판단돼 일반고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과학고와 영재학교로 몰리게 될 거란 시각도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자사고나 특목고 수요를 흡수할만한 뚜렷한 일반고 강화방안 제지와 안착도 없이 폐지 수순만 밟을 경우 강남 8학군 등 교육특구나 지역 명문고가 부활해 학생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우수 학생의 해외유학 수요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입법조사처는 지난 6월 ‘자사고 정책의 쟁점 및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고교평준화 제도 아래 자사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할 경우 서울 강남 등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학교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수 있으며, 이는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때문에 일반고와 자사고의 균형 있는 발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난 7월 자사고 재지정 취소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강남 8학군 부활 가능성이 제기되자 과도한 우려나 오해라고 반박했다.

교육부는 “(강남 8학군 부활은) 과도한 우려나 오해다. 서울 일반고 배정 방식상 1단계에서 학군과 관련 없이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전입 없이도 원하는 지역에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다른 학군에 지원하는 학생은 7~8%이고, 강남 8학군 지원도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외고·자사고·국제고 일반고 전환이 일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함께 떨어지는 ‘하향 평준화’를 야기할 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우수한 학생들이 기회를 못 갖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생 선발방식만 바뀔 뿐 각 학교가 집중해서, 특성화해서 운영하고자 했던 교육과정을 그대로 운영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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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바뀌는 교육정책
혼란에 빠진 학생·학부모

외고·자사고·국제고 등 존폐에 관한 논의는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이뤄진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외고나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초·중학생의 사교육을 부추긴다며, 지양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급기야 특목고 폐지를 추진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도 사교육 과열, 입시 위주 교육 등 개선을 이유로 외고에 대해 규제정책을 펼쳤다. 다만 자사고는 강화하고자 했다. ‘고교다양화300프로젝트’란 이름으로 300개의 다양한 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했는데, 이때 자사고 100곳을 포함시켰다. 실제 2010년 이후 54개 학교가 자사고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는 자사고·특목고 등을 교육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자사고·특목고 지정 취소를 방지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했다. 자사고·특목고 지정 취소 요건을 교육부 장관과의 ‘협의’를 ‘동의’로 바꿔 정부의 의견이 더 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꾀했다.

현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번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사고·특목고 등 폐지를 목표로 한다. 특히나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이 정책의 실현 여부도 미지수다. 이번 발표 실행이 차기 정부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정책이 뒤바뀔 가능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권에 따라 교육 정책에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혼란에 빠졌다. 모 특목고 대비 커뮤니티에는 외고, 국제고, 자사고 입학을 놓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강남 지역에 거주한다는 한 학부모는 “근처 일반고에 보내면 학교 공부에 사교육까지, 미친 듯이 공부만 해야 하지만 자사고에서는 주말에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악기와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내려 했는데 (이번 발표로)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8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자사고 학부모 등 이해집단의 집단시위 비판 기자회견(상), 지난 5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일반고 일괄 전환 추진 반대 성명 발표 기자회견(하) ⓒ뉴시스

일반고 전환 둘러싼 찬반 논란
교육계·정치권 등 각계각층 시끌

외고·자사고·국제고 일반고 전환에 대한 국민 여론은 찬반이 팽팽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14일 tbs ‘TV민생연구소’의 의뢰로 진행한 교육부의 ‘외고·자사고·국제고 일반고 전환’ 결정에 따른 국민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우 잘했음 28.6% △잘한 편 △22.7% △매우 잘못함 25.0% △잘못한 편 15.6% △모름 혹은 무응답 8.1%로 집계됐다.

교육부 결정에 국민 전반 의견은 긍정적 평가(51.3%)가 우세하지만 부정적 평가(40.6%)도 결코 적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계층별로 살펴보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독재적 교육 발상’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한편 이번 정책으로 고교서열화 문제가 완전 개선되길 바란다고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시행 시기에 대한 우려도 있다.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교육을 국가 독점 사업으로 생각하는 독재적 교육 발상에서 비롯된 정책”이라며 “일반고 교육의 질적 향상은 고민하지 않고 자사고와 특목고를 공공의 적으로 만든 후 이를 없앰으로써 국민 불평을 무마하려 한다”고 규탄했다.

반면 같은 날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는 “이번 정책을 통해 고교서열화가 완전히 사라지고 평등교육이 실현되길 바란다”며 “다만 다음 정부로 (발표 시행이) 미뤄지는 점이 우려스럽다. 지금 당장 고교서열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도 의견이 갈린다. 교총은 교육의 다양성을 포기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교총은 “입시경쟁의 근본적 원인은 임금차별 및 학벌주의가 공고한 사회·노동 구조에 있음에도 그 책임을 온전히 자사고·특목고에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며 “아이들마다 다른 소질·적성·능력에 맞춰 다양하고 심화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게 되레 교육불평등이라는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적극 환영하는 한편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과학고와 영재학교에 대한 선발방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고교서열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일괄 전환에 나선 것을 매우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전환 대상에서 빠진) 과학고나 영재학교에 대한 수술 없이는 고교서열화 완전 해소는 불가능하다. 선발방식 변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보수와 진보 성향 정당에 따라 뚜렷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부모의 능력이 자녀 입시를 좌우하는 구조의 변화를 바란 국민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정의당 여영국 원내대변인은 “정부가 기득권 타파, 교육불평등 해소 등 국민 요구를 수용하고 특권학교 폐지 결단을 내린 점을 적극 환영한다”고 정부 발표에 지지를 보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교육감 임의대로 시행령을 개정하거나 자사고 등을 지정 취소할 수 없게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겠다고 맞불을 놓는 한편, 바른미래당 최도자 수석대변인은 “선택권을 뺏긴 학생과 학부모들만 또다시 교육 난민이 될 위기에 놓였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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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육정책과 그 방향도 바뀌어왔다. 때문에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같은 정부 발표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부족한 정책을 개선하고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빨리 일관된 교육정책을 마련해 학생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교육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도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괄 전환까지 앞으로 약 5년, 계획대로 외고·자사고·국제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지, 아니면 부활 가능성이 열리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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