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덕 작가
이흥덕 작가

이흥덕 그림의 세계관은 유머와 풍자 혹은 성에 관한 훔쳐보기다. 훔쳐보기란 것은 허락되지 않은 은밀한 시점에서 숨겨진 것을 들춰보려는 욕심이기에 그것은 인간의 숨겨진 본능을 반영한다. 

무엇보다 그가 화제로 삼고 있는 훔쳐보기 즉 관음증이라 명명되는 몰래 엿보기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호기심과 화가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그 훔쳐보기의 주요무대는 만들어진 혹은 꾸며진 몇 가지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오래 전에 시작했던 도시와 거리 그리고 카페공간에로 다시 야외나 실내로 그는 시선을 이동해 왔다. 

그 무대는 예를 들면 야외: 화창한 봄날 빨간 장미 같은 아가씨가 공원 잔디밭에 요염한 표정으로 앉아 독서를 하고 있다.<s 화랑의 큐레이터 L양>. 그녀의 적당하게 헝클어진 블라우스 틈 사이로 농염한 속살이 훤히 드러난다. 그 뒤로 이 장면을 훔쳐보는 세 명의 사내가 주목한다. 언덕 아래에 호기심 어린 이 남자들은 이흥덕 회화에 있어 훔쳐보기의 남자들의 집단성을 대변한다. (이 남자 모델들은 화가 자신, 최석운, 그리고 사진사)등을 통해 게슴츠레한 눈길로 훔쳐보기를 만끽한다. 실내: 관음증을 새롭게 드러내는 또 하나의 이흥덕 스러운 미장센이다. 슬립 차림의 처녀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TV가 놓여 있고 처녀는 책에 오히려 열중하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연출 된 듯한 오른쪽 다리 사이로 보이는 처녀의 은밀한 부분을 개가 혀를 쭉 빼물고 들여다 본다. 여기서 개는 대체된 혹은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이런 의인화는 그의 그림에 표현의 세계를 보다 상징성과 풍자로 확장 시켜준다.

이런 풍경 외에도 그는 빨간 코를 가진 대머리의 사내가 엎드린 소녀의 치마 속을 훔쳐보는 책 읽는 소녀 또는 “매춘”과 “사랑”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환락적인 이상향의 세계를 신데렐라를 통해 혹은 주변의 인물들을 빌려서 요즘 흔한 은유적 훔쳐보기의 풍속도와 에로틱한 욕망을 유감없이 노출시킨다. 한 사내가 여인의 치마 속을 들춰보는 장면에서는 이미 훔쳐보기가 아닌 보다 공격적인 여성에 대한 가학적인 행위들도 그려진다. 그는 이러한 아이러니컬한 장면들을 통해서 주로 남자들의 때로는 저급한 욕망과 값싼 에로틱한 감정에 불씨를 지피고 있다.     

여름휴가(1959). 100X80.3. oil on canvas. 2019년.
여름휴가(1959). 100X80.3. oil on canvas. 2019년.

그의 이런 화풍은 화면의 분위기와 플롯에서 다분히 발튀스(Balthus)적인 스토리의 속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발튀스의 회화 언어에 비해 그는 지나치게 단순한 장면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에게 무엇을 요구할 권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팽팽한 긴장감, 보테로적인 유머와 철학도 보고 싶다. 그림이란 어차피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타인에게 말 걸기”이다.    

그렇다면 이흥덕은 더 독특한 그만의 언어로 긴장감 있는 수사학을 쟁취할 필요가 있다. 자유롭게 펼쳐지는 거침없는 언어와 그의 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무대장치, 의미를 열어두는 상상력과 상징적이고 메시지 언어같은 것들이다. 그림과 호풍에 변덕이 많은 화단에서 이 작가처럼 일관되게 자기 세계를 풍부하게 지키고 있는 작가도 드물다. 그것이 이흥덕의 뻔뻔하고 수상한 에로티시즘이다. 

이흥덕 ‘카페’ (129×162㎝·1987) ⓒ뉴시스
이흥덕 ‘카페’ (129×162㎝·1987) ⓒ뉴시스

요즈음 잘 나가는 예술가들은 일일이 야한 장면을 그리지 않는다. 그리는 것보다 더 화끈한 에로틱한 이미지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디오와 현란한 도색 잡지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들의 몰래 쓴 일기를 본 것 같다.

초기에 그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뒷골목에서 화장품 냄새 풀풀 나는 술집의 카페 시리즈까지 남자들이 휘젓고 다닌 일상의 장면들 모두를 그가 되살려냈다. 거기에는 배가 불뚝 나온 사장 아저씨가 술집 여자를 껴안고 있는 철 지난 유행가, 연인에서 남몰래 여자를 끓어 안고 있는 불륜의 모습까지 천태만상이다. 대낮 슈퍼마켓에서, 또는 이발소에서 정사를 벌이는 낯 뜨거운 수상한 일들이 모두 그의 화폭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지하철에서, 풀장에서 그의 눈이 닿는 곳이면 뻔뻔스럽고 낯 뜨거울 정도로 변모하는 성풍속도를 그는 넉살스럽게 담아낸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최근 들어 그가 벗겨 놓는 여인들의 외로운 모습은 틀림없이 혜원 신윤복의 춘화에 나오는 여인들로 그 헤어스타일이 돋보인다. 정숙한 여인이 젖가슴을 훌렁 드러 내놓고 방바닥에 누워 있다. 그 옆 난데없이 개구리가 봄을 알려옴으로써 우리는 그 여인이 春情에 못이기는 봄날을 본다. 

그 뿐인가 뒤로 돌아서서 부지런히 수음을 하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싸우나 탕에 옷을 벗은 채 벌러덩 체면 없이 누워 있는 두 사내도 있다.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에로티시즘. 오직 섹스의 향기만 있고 모든 욕망이 종이로 만든 한 묶음의 화려한 꽃처럼 탈색해가는 세상에 이흥덕은 우울하게 비추는 뒷골목에 표현주의로 깜빡깜빡 빛나는 희망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과 기쁨이 빨리 올 것 같지 않아 그의 그림을 보는 나는 어쩐지 이 봄날, 한낮 여름에도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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