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류현철 소장
한국, 노동안전보건 관심 높아졌지만 문제 여전
줄지 않는 산재 사고, OECD서 산재 사망률 선두
산안법 개정에도 노동자 위한 최소 안전망 미비
주52시간제, 탄력근무 도입 시 취지 훼손 우려
과도한 서비스노동 요구하는 사회, 감정노동 야기
노동자 삶의 가치·생명의 가치 높이는 사회 돼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류현철 소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다. 가입 이래 23년 동안 1위 자리를 내준 적은 단 두 번, 노동자 목숨을 담보로 지금의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룬 셈이다.

임기 초,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개혁과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했다. 지난해 1월에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추진해, 그 일환으로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그해 산재사망자 수는 2142명, 전년 대비 185명 증가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 매년 100명 가까이 감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되레 늘었다.

노동계의 분노는 크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나 발생하는 재래식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예방할 관련법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비하다. 또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산재사망, ‘과로사’ 예방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시행됐지만, 그 취지를 훼손하는 정책을 정부가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 산재 사각지대에 있는 감정노동자를 위해 어렵게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실효성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개혁은커녕 노동존중사회를 역행하는 문 정부의 행보에 노동계의 규탄이 끊이지 않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2일 노동 현장 최전선에 있는 작업환경의학전문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류현철 소장을 만나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와 개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류 소장은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심이 높아진 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정책들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류현철 소장 ⓒ투데이신문

Q.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노동 현장은 어떤가.

현장마다 편차가 있다. 과거에 비해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관심은 높아졌다. 다양한 직업성 재해에 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논의가 있고, 실제 능력이 되는 사업장에서는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소규모 사업장이나 열악한 사업장에서는 협착, 추락, 보호구 미착용, 중독성 질환 등 재래식 사고, 사고성 재해가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3년 전 발생한 메탄올 사고가 그런 사례다. 시신경 손상 독성물질로 잘 알려진 메탄올을 노동자가 임의적으로 혹은 실수로 마셔서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보호 장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호흡기로 들이마셔서 실명이 됐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숙련되고 훈련된 안전보건 인력도 적다.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제도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인원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Q. 최근 산업재해(이하 산재) 사망사고가 언론을 통해 많이 비치고 있다. 사고 최전선에 있는 입장에서 체감하나.

없던 사고가 늘어난 건 아니다. 사고는 늘 있어왔고, 이제야 조금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산재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연간 9만건의 산재 사고 중 사망사고는 최근까지도 2000여건에 달한다. 한국은 사망에 이르는 산재 사고가 아니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OECD 국가 산재 통계를 보면 한국의 총 산재 사고 발생률은 굉장히 낮은 편에 속한다. 반면 산재로 인한 사망률은 선두권에 있다. 사고가 많은 만큼 사망률도 많은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은 사고는 많지 않지만 사망률은 높다. 즉 사망에 이를만큼 큰 사고가 아니라면 산재 사고로 신고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Q. 산재 인정 기준은 무엇인가.

추락이나 절단 등 외상은 업무 중 발생한 사고였다는 것만 확인되면 산재 인정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질병성 재해다. 질병성 재해는 산재 인정 기준을 세우기가 곤란하다. 진폐증, 소음성 난청, 중금속 중독 등 직업적 요인이 아니면 발생하지 않는 질환이라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의학적 경과나 치료 과정이 특별히 다르지 않은 질환은 산재 인정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직업성 암이라고 해서 일반 암과 굉장히 다른 점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판단이 어렵다. 업무상 질병이라고 인정하는 것들은 법에서 ‘상당인과관계’라고 설명한다. 질병이 발병하는 데 있어 직업적 요인이 더 주도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인데, 의학적 관점에서는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다. 보통 상당인과관계를 ‘51%, 49%’라고 말하는데, ‘직업성 질환 51%와 아닌 질환 49%’의 의미다. 의학적으로 직업성 질병이라는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특정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특정 질병이 많이 발생한다’는 역학적 데이터 통계를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이에 일어나는 사고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산업안전법 전면개정 및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 ⓒ뉴시스
지난해 12월 26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산업안전법 전면개정 및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 ⓒ뉴시스

Q. 한국은 산재 인정 기준이 까다로운 편이라고.

산재 인정이 까다로운 이유는 이후 뒤따르는 논란이 많기 때문인데, 논란이 왜 생기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산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사고 당사자인 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른 OECD 국가에서는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직업성 문제인지 아닌지를 따지기에 앞서, 일을 못해 생계유지가 어려울 상황에 대비해 건강보험 수준의 지원을 일정 보장해 개개인의 산재 사고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산재가 인정돼야 진료비, 휴업급여 등이 지급된다. 때문에 인정 이전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비와 생계를 모두 산재 당사자가 해결해야 해 사안마다 따지게 될 수밖에 없다.

연간 발생하는 산재 사고 중 직업성 질환을 따져야 하는 사고가 9000건으로, 다 해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보편적으로 인정된 기준을 정하고, 이에 해당되는 사고는 행정처리를 통해 산재 인정을 해주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직종에 몇 년 이상 근무했을 때 특정 질병에 걸리면 산재를 인정해주고, 해당 질병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이 사회적 비용 면에서도 더 나을 수 있다.

Q. 문재인 정부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하위법령 개정안(이하 개정 산안법)을 통해 산재 사고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는데 공감하나. 보완돼야 할 점이 있다면.

솔직히 조금 회의적이다. 산안법 개정 논의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김군 사고를 계기로 시작됐다. 안전과 관련된 위험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김군 사고 이후 몇 년 동안 여러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흐지부지되다가 김용균님 사망으로 다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개정이 이뤄졌다. 당초 개정 산안법은 노동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서는 관리해야 할 위험의 범위를 넓히는 한편 타이트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는데, 실제 개정 산안법은 취지에 미치지 못한다. 상당 부분 후퇴해 있다. 또 산안법의 모법이 바뀐 것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하위 법령도 바뀌어야 하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하위법령 또한 최초 취지와 다르게 축소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우려와 걱정이 많다.

ⓒ뉴시스

Q.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로 ‘과로사’가 있다. 주된 원인이 장시간 노동인데, 현행 ‘주52시간근무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제도적 허점은 없는지.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 총량 통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노동시간이 물리적으로 줄어드는 주52시간근무제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근로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탄력근로제’라는 맹점이 있다. 탄력근로제는 현재 3개월 단위로 필요에 따라 어떤 때는 62시간, 어떤 때는 40시간 일하도록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를 6개월로 늘리자는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단위 기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장시간노동 기간도 늘어나게 된다.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의 노동력을 뽑아 쓰지만 평균 노동 시간은 똑같으니 괜찮다는 의미의 탄력근로제는 굉장히 잘못된 방식이며 신체적 건강과 사회적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현재 논의되는 탄력근로제는 사업주의 입맛에 따라 노동자의 근무 형태가 바뀌는 꼴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더 많은 사람이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볼 수 있는 보완대책을 내놔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의 이윤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취지의 보완책을 내놨다. 이런 식이라면 주52시간근무제의 효과는 떨어질 것이다.

Q. 정부가 내년 주52시간근무제 시행을 앞둔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정책·법까지 만든 상황에서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주 52시간근무 논의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정상화하자는 방향의 과정이었다. 그동안 이를 위해 어떤 조치를 하고, 보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묻고 싶다. 이런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유예기간을 늘리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고용노동부 행정을 통해 법으로 결정된 사안을 무화 시키는 거다. 입법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가치를 행정부에서 제대로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효과를 떨어뜨리는 것은 위험하고 잘못된 발상이다.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이미 주52시간근무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불평·불만도 많았지만 공정 재편성, 인력충원 등 주52시간근무제 도입을 고민하고 준비해왔다. 그런데 정부가 유예기간을 늘림으로 인해 그동안 중·소규모 사업장이 준비해오던 과정에 손을 놓거나, 주52시간근무제 시행의 효과가 무산될까 우려된다.

감정노동자는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Q. 최근 방문서비스 노동자가 심각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육체노동 못지않은 감정노동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노동자의 건강문제가 단순히 과도한 육체노동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외국과 비교하면 감정노동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서비스 질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서비스센터를 방문하면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비자를 깍듯이 모시고, 친절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않나. 지나친 서비스노동이다. 서비스정신만 요구하고,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를 위한 여건은 갖춰져 있지 않다. 감정노동에 대한 높아진 사회인식과 이 같은 문제가 결부돼 심각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본다.

Q. 한국사회는 감정노동 문제에 소홀한 편이라고.

앞서 말했듯이 서비스 질에 대한 요구는 많지만 노동 당사자를 위한 고민은 없다. 높은 서비스 질은 결국 이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적절한 노동강도, 적절한 노동환경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안 한다. 때문에 서비스 결과에 대해서만 평가가 이뤄지고 서비스가 도출되는 과정, 즉 노동자에게는 소홀하게 된다.

Q. 감정노동법 등 시행에도 여전히 감정노동 안전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보완돼야 할 점은.

감정노동은 조직적, 문화적 상황이 모두 개입돼야 하기 때문에 다루기 쉽지 않다. 때문에 특정 법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다만 법이라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확인시켜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감정노동법을 통해) 감정노동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사회적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이 문제를 풀 방식들이 점점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감정노동 당사자와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사용자에게도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 생긴 거라고 본다. 이를 토대로 사업장별로 표준지침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뒷받침해야 한다. 제도 변화와 더불어 과도한 서비스노동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류현철 소장 ⓒ투데이신문

Q. 노동자 스스로 안전보건 의식이 높아지고 있고, 노동건강권 강화를 위한 사회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정상화돼야 한다. 한해 2000~300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어가는 동안, 우리 사회는 그 죽음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여 왔다. 일하다 죽는다는 건 굉장히 어이없는 일이다. 일이라는 건 생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윤택한 삶을 위한 건데, 지금은 오히려 건강을 훼손하는 구조가 돼버렸다. 근무 중 사람이 쓰러지고, 다치고, 죽는 상황에 대해 사회적 감수성이 너무 낮았다. 아직 부족하다. 지금보다 감수성이 훨씬 더 올라야 한다. 노동자 삶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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