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주 52시간 근무제…노동계‧산업계 모두 외면
‘갈팡질팡’ 주 52시간 근무제…노동계‧산업계 모두 외면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9.11.29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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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간 근로시간 OECD 평균 크게 상회
‘워라벨 확산’ VS ‘생활비 반토막’ 의견 분분
주 52시간 단축 준비 안 된 중소기업 65.8%
“제도 연장은 법안 무력화 및 직권남용 행위”
노동시간 단축해도 정당한 대가 받을 수 있어야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는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 국내 노동자들의 국민행복지수 제고를 위해 도입됐다. 실제 2016년 기준 OECD 주요국가의 연간근로시간을 살펴보면 독일 1298시간, 프랑스 1383시간, 영국 1694시간, 일본 1724시간, 미국 1789시간으로 나타났지만 한국은 2052시간으로 평균(1707시간)을 크게 상회했다. 

정부는 OECD 최장 수준인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고, 무제한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을 축소해 장시간 노동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휴일근로, 가산수당 할증률을 명확히 해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는 한편, 일반 근로자도 공무원과 동일한 휴식권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10여 차례의 논의를 거친 뒤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같은 해 7월부터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 시행에 돌입했다. 

단계별 우선적용이 이뤄진 직원 300인 이상 기업들에서는 대체로 정책 만족도가 높아 보인다. 여기에 해당하는 주요 대기업 및 공기업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컴퓨터 전원이 꺼지는 PC 오프제를 도입하며 대응에 나섰고,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며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오는 2020년 1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업체 도입을 앞두고 계도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이밖에도 재해재난 상황에 한정되던 특별연장근로 승인을 경영상의 사유로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내부적 준비와 정책적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중소기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한숨 돌렸다는 분위기지만 노동계에서는 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며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근로현장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두고 워라벨과 임금축소의 관점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들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워라벨이냐 수당이냐’ 엇갈리는 근로현장의 반응

주 52시간 근무제 이슈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르며 노동자들 사이의 의견도 분분한 상황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경우 야근과 특근을 통해 생활비를 보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의 정책으로 이 같은 통로가 완전히 막혀버릴 수 있어 결국 남은 시간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실제 자녀 2명을 두고 있는 사무직 조성원(41)씨는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나쁘지 않다고 전한다. 맞벌이 부부로 자녀를 양육하며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했던 시간들이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논의 중인 탄력근무제와 함께 운영이 되면,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다. 조씨는 직장인들에게 저녁시간이 1시간이라도 늘어난다는 건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반면 생산직 노동자 김진수(37)씨는 주 52시간제 도입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사실상 야근과 주말근무에 제한이 생기는데, 김씨 입장에서는 특근과 야근을 통해 수당을 받는 게 가계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투잡을 뛰더라도 1.5배에서 2배가량 되는 특근수당과 비교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중소기업 노동자 가족들은 “주 52시간제가 시작되면 시급제로 일하는 월급이 거의 반토막날까봐 우려된다, 다른 가족 구성원이 일자리를 알아봐야할 형편이다”, “진짜 월급 반토막이다. 벌써 도입해서 매일 5시에 퇴근, 주말에도 쉬는데 돈이 있어야 나들이라도 가지 않겠나”라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이밖에도 근무시간이 줄어든다고 해서 기업이 생산량을 줄이기는 어려우니, 결국 업무강도가 강해지거나 공짜야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탄력근무제를 활용해 연장근무 후 주간에 휴식을 보장 받는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0.5배의 수당을 덜 받게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생산라인 관리 경험이 있는 문태훈(36)씨는 “근무시간은 줄어들 테지만 결국 돈은 조금 받고 일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라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취지는 좋은데 실제적 운영에 있어서는 상당히 안 좋은 상황이다”라며 “차라리 예전에는 일한만큼 돈이라도 받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일은 더 힘들게 하고 돈은 더 조금 받는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반응이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에서는 일종의 편법을 쓰기도 하는데 만약 오늘 16시간을 일한 후에 내일 주간에 쉬라고 하면 총 근무시간 한도는 맞출 수 있지만 수당이 적용되지 않아 금액으로 보면 0.5배를 덜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이득을 보는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중앙회

경영 불확실성에 불안해 하는 산업계

주 52시간 근무제는 현재로서는 노동계와 산업계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노동계에서는 기업의 포괄적 해석이 가능한 조항 추가와 사실상 유예결정을 내린 데에 대해, 산업계에서는 정책적 보완이 미진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부분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다. 

먼저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0월 중 실시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조사’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 준비가 완료됐다고 응답한 기업은 34.2%에 불과했다. 나머지 58.4%는 현재 준비 중이었고 7.4%는 준비할 여건이 안 된다고 밝혔다. 

당초 시행일이었던 2020년 1월 안에 준비가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에는 절반이 넘는 51.7%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또 중소기업의 58.4%가 주 52시간 시행시기 유예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1년가량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52.7%로 가장 높았다. 

이들은 이밖에도 시행시기 유예와 함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및 요건 개선’(69.7%),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및 요건 개선’(24.2%), ‘재량 근로시간제 대상 업무 확대’(12.1%)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 양옥석 실장은 “기업들은 업체를 운영하고 주문이 들어왔을 때 근로시간 제한 때문에 생산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영상 불확실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라며 “인력을 추가 고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업계로 유입되는 근로자수는 한정돼 있고 노력해도 인력공백이 메워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부분은 결국 제도로 풀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유연근로제 도입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특별연장근로 기준을 추가하는 방안도 기업들은 불안해 한다“라며 “개략적이고 추상적으로 기준이 만들어지면 불확실성이 커진다. 확실히 명문화를 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그동안 한국이 장시간 근로 문제를 개선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기에 업계에서도 협조하는 분위기지만 글로벌스탠다드로 가야한다”라며 “선진국에서는 노사가 서로 협의해서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길이 남아있다. 협의의 여지도 없이 못박는 것 아니지 않나.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자유는 침해하지 말아달라는 의견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고용노동부는 지난 18일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50~299인 중소 사업장에 대해 충분한 계도기간을 두고 특별근로연장도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계도기간은 노동시간 단축 취지 훼손하는 것”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미 지난 2018년 2월 법안 통과 이후 1년 9개월 가까이 시간이 지나온 만큼 준비할 시간은 충분이 있었다며 이제 와서 연장을 하는 건 제도를 무력화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정부의 특별연장근로 승인 사유 확대 역시 사용자의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선택근로제 기간을 확대할 경우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정훈 정책국장은 “계도기간은 결국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중소사업장에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통과된 이후 단계적으로 적용을 했다. 그 기간 동안 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고 또 연장을 하는 것은 법을 무력화하는 직권남용 행위다”라며 “정부는 정책이 안착할 수 있도록 기업에게 공정혁신‧인원충원 등에 대한 지원확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지원들을 철저히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개발하고 있으니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특별연장근로제도는 자연재해나 사회재난 상황에서 인가를 받는 제도다. 즉 특수한 경우에만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제도인데 기계고장 등 경영상 사유로까지 확대가 되면 이게 일반화, 상시화 될 수 있다”라며 “또 이 제도는 사후승인이 가능한 제도일뿐더러 근로자 대표와 합의 없이 개별노동자 동의만 받으면 되는 사안이라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선택적근로는 1개월 단위로 이뤄지는데 이는 주간과 일간 근무의 상한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24시간도 가능하고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근무도 가능하다. 이건 노동자 건강권에 있어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라며 “임금도 사후정산을 하도록 돼 있는데 이게 정치권의 요구대로 3개월, 6개월로 길어지면 연장근로 여부를 두고 정산이 불확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확보한 ‘특별연장근로 신청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270건에 불과했던 특별연장근로신청 건수는 올해 들어 10월 말 기준 823건으로 급증했고 이에 따른 인가 건수도 779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기업들의 특별연장근로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동의하는 일선 노동자들 역시 즉각적인 근무시간 단축을 우선 도입하고, 과소책정 된 임금 등의 문제는 추가로 협상해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당장은 돈을 덜 벌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우선 확보하고 합리적 임금상승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버스업계 노동자는 “노동대비 단가가 낮은 임금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지 언제까지 사용자들에게 끌려 다닐 수만은 없다”라며 “적당히 일하고 먹고 살만큼 벌어야 일과 가정이 양립되는 것 아니겠나. 30~40년전 사고방식으로는 일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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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서도 표류 하는 중…생산성‧임금문제 해결해야

근로현장의 노동자들 및 노동계와 산업계는 각기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정부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세부적인 개선 기준을 두고 여전히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정당들이 노동계나 산업계의 표심을 잃는 것을 우려해 계도기간을 장기간 부여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계도기간을 밝히진 않았지만 최장 1년 6개월까지 논의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자유한국당은 주 52시간 위반 시 처벌을 유예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사실상 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라며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동시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특별근로 확대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며 생존 위협을 받고 있는 기업 연구개발분야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선택근로제 단위기간 3개월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보완책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하며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함께 국제노동기구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 등 노동 관계법 개정도 여야 간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 대변인은 이와 관련 논평을 통해 “일, 쉼, 돌봄의 균형과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주 52시간 근무제의 정착을 위해 세심한 대비가 필요하다”라며 “제도보완을 위한 근로기준법과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 및 관련 노동 관계법 개정을 위한 한국당의 초당적 협력을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정의당은 정부의 보완책은 입법취지에 역행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심각한 직권남용이라며 규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주장하고 추진해온 노동개혁 기조가 무색해지는, 노동존중사회를 포기하겠다는 취지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8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게임업계 노조들과 함께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은 별다른 질환이 없는 20대 청년 노동자가 게임 업데이트를 앞두고 1주 80시간 90시간 넘게 일했기 때문에 과로사 했다고 판정했다. 소위 말하는 ‘크런치 모드’가 젊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라며 “정부가 최근 예고한 조치들은 주 52시간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킬 것이다. 일시적 업무량 증가에 따라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할 경우 근로시간 제한이 없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에서 노동자의 선택권은 없다.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1주일 100시간 넘게 일을 해야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각 정당들이 정책방향 결정에 마찰을 빚고 정부가 사실상의 유예결정으로 이를 관망하는 사이, 근로현장 혼선은 더욱 깊어간다. 산업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업생산성 감소와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문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빠른 결단을 내리고 중소기업과 노동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내놔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 연구원 노민선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시급성을 고려해 향후 5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특별법으로 제정해 이와 관련된 시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며 ”인력양성 및 작업환경 개선과 연구개발 인력 근무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또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세제지원과 성과공유제 확산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 노동계 인사는 “그동안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임금을 줘 왔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안됐던 것은 물론 생산성도 상당히 낮은 방식이었다”라며 “이건 산업발전의 선진화에도 상당히 문제가 된다. 정상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도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방안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시간 총량으로 보면 한국이 상당히 많다. 52시간을 기본시간으로 하지만 원래는 40시간 아닌가”라며 “노동자의 시간 선택권은 52시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 안에서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게 즉 유연근로제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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