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환 가능케하는 ‘송환법’ 추진한 홍콩 정부
친중 중심 법안에 분노한 홍콩 시민들 거리로 나서
최루탄·고무총·곤봉 등 무력 진압에도 시위 계속돼
홍콩 시민들 “민주주의와 자유 위한 싸움 계속할 것”

홍콩에서는 반년 넘도록 시민들의 거리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범죄인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 가능하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법’를 입법하려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 경찰의 무자비한 대응에도 홍콩 시민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맞서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법안 철회가 아닌 자유와 민주주의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들의 간절함은 다른 국가들까지 움직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홍콩 시위에 지지와 연대로 홍콩 시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가운데는 한국 시민들도 있다. 투데이신문은 정점을 향해가고 있는 홍콩 시위가 벌어진 근본적 원인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연대하는 이유 등에 대해 짚어봤다.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시위 참가자 ⓒAP/뉴시스<br>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시위 참가자 ⓒAP/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홍콩에는 연일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세계 각국 여행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홍콩 거리에서는 검정색 옷과 마스크, 노란색 헬멧을 착용한 시민들과 이들을 노리는 무장경찰 간 일촉즉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최루탄 가루가 휘날리고 이따금 총성이 하늘을 가르는 홍콩은 지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지난 3월, 홍콩 정부는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강제 송환 가능하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법’(이하 송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철저한 친중 중심의 개정안에 수많은 홍콩 시민들은 분노했고 철회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홍콩 경찰은 이들을 향해 최루탄을 던지고 고무총과 실탄을 겨누며 강경대응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고, 심지어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심각한 사태로까지 치달았다.

경찰의 이 같은 무력 진압에도 시위는 잠잠해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격화됐다. 결국 홍콩 정부는 백기를 들고 송환법 철회 의사를 공식화했고, 시민들의 승리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여전히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 싸움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인도 반대’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자 ⓒAP/뉴시스

갈등의 도화선된 ‘송환법’ 

홍콩 시위의 시작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콩 행정장관인 캐리 람은 송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가 제기한 송환법 개정안은 중국 대륙으로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 홍콩 최고 법률인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 따르면 중국에서 범죄로 분류되더라도, 홍콩 법에서 범죄로 인정되지 않으면 해당 범죄를 저지른 홍콩 시민을 중국에서 처벌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중국 본토로의 송환이 가능해진다.

홍콩 시민들은 이 점을 우려했다. 만일 중국 송환이 허용되면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체제에 반하는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송환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홍콩 정부는 해당 법안을 밀어 붙이려 했고 결국 시민들은 반대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송환법 철회와 더불어 △경찰 폭력에 대한 독자적 조사위원회 설치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등 5가지를 정부에 촉구했다.

단순히 법안 하나를 무마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홍콩 내 민주화 움직임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지난 6월 9일 검정 옷에 마스크, 노란 헬멧을 착용한 시민들이 거리로 모여들었다. 100만여명이 넘게 참여한 대규모 시위였다. 당시 시위대는 질서를 지켜가며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평화시위에 강경대응으로 맞섰다. 경찰은 곤봉과 최루탄, 고무총 등을 동원해 시민들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과 경찰 사이에서는 무력충돌까지 벌어졌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이 시위를 정부를 공격하는 ‘폭동’이라고 규정해 시위 참여자들을 체포하고 이후 처벌도 자행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경찰의 무력진압은 시위를 잠재우기는커녕 되레 격화시켰다.

결국 캐리 람 행정장관은 같은 달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연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무기한 연장이라는 애매한 태도는 홍콩의 민심을 돌려놓지 못했다. 경찰은 실탄을 쏘는 등 진압 수위를 점점 높여갔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목숨까지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굴하지 않았다. 결국 홍콩 정부는 지난 9월 23일 결국 송환법 개정안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8일 홍콩 전역에서는 시민들과 경찰 간에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충돌이 이어졌다. 시위대 최후의 보루였던 홍콩 폴리테크닉대(이공대)에는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경찰은 이공대를 봉쇄하고 그들을 고립시켰다. 외부와 단절된 채 갇혀버린 시민들은 식량 부족과 부상의 공포에도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은 달 24일, 홍콩시위가 시작된 이래로 처음 실시된 구의원 선거에서 18개 지역구 452석 중 388석을 범민주 진영에서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시위는 다소 진정됐고 경찰의 무자비한 대응도 주춤했다.

그러나 잠깐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약 2주간의 휴전을 끝낸 홍콩 시민들과 경찰 간의 충돌은 지난 주말 다시 격화됐고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시민들은 송환법 철회와 함께 나머지 요구사항까지 정부가 모두 수용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홍콩 정부도 선거에서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유화책 없이 나머지 요구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홍콩 시민들은 오는 8일을 최후의 시한으로 보고, 이때까지도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전면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밝혀 강대강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8월 22일 홍콩 위엔롱 MTR 역에서 레이저 포인터를 쏘며 시위를 벌이이는 홍콩 시민들 ⓒAP/뉴시스

민주화를 꿈꾸는 홍콩

홍콩 시위의 근본적 원인은 중국과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와 연관이 깊다.

일국양제란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를 의미하는데, 즉 중국의 공산주의와 별도로 홍콩의 자본주의를 유지함으로써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서 두개의 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다.

1997년 홍콩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가 적용돼 중국과 하나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 등에서 별도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홍콩은 자치국가라는 말이 손색없을 만큼 독립적이라고 평가됐다.

그러나 2013년 집권한 시진핑 주석은 일국양제 아래 독재 체제를 강화해나갔고, 자유민주주의 침해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우려와 불만은 커져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홍콩 반환 전, 중국 정부는 합병 초기 국민의 혼란 예방을 위해 향후 20년 동안 간선제 방식으로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고 2017년 이후에는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로 변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전환 3년을 앞둔 2014년 중국 정부는 간선제 투표를 유지하겠다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이에 10만여명의 홍콩 시민들은 2014년 9월 하순부터 12월 15일까지 약 79일간 반대 시위에 나섰다. 이른바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이 시위는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대응과 시위 장기화에 따른 경제 악화로 홍콩 내에서도 부정적 여론이 커지며 결국 무산됐다.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이 났지만 홍콩 시민들의 마음 한편에는 중국과 친중 성향의 홍콩 정부에 대한 분노가 불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캐리 람 행정장관이 친중 성향의 송환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했고, 참아왔던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제시한 송환법 개정안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

현 홍콩 행정장관은 중국인민회의를 통해 추천된 3인 중 한 사람을 선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에서 임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홍콩 시민 91.9%의 동의를 얻은 존창을 제치고 선출된 친중 성향 인사로 결코 그의 독자적인 결정이 아닌 중국이 개입했을 거라는 해석이다.

홍콩의 주요 신문사는 시민의 눈과 귀, 입 역할을 포기하고 정부의 편에 섰다. 미국 CNN에 따르면 이공대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벌어진 다음날, 홍콩 주요 6개 신문사 가운데 이 내용을 1면에 실은 곳은 ‘빈과일보’와 ‘에포크타임스’ 단 둘뿐이었다. 나머지 4개 신문사는 친중 광고를 1면에 싣는 한편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중지시키자고 독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홍콩기자협회가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송환법 반대 집회에서 경찰이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했다는 언론사 항의 29건이 접수됐다. 협회는 기자의 보도 자유, 사람들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기자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다수가 그들에게 최루가스를 발사한 사례도 있다. 때문에 홍콩 언론의 이 같은 행보는 정부의 영향이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슈아 웡 ⓒAP/뉴시스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은 지난 9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콩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 국제도시로 인정되는 홍콩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방어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며 “홍콩 시민을 외면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홍콩 시위는 단순히 몇가지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그 속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식민지라는 뼈아픈 역사와 혁명에 실패한 과거가 있는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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