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군대 내 채식권 보장’ 인권위 진정 제기
“채식주의, 기호 아닌 헌법상 보장된 신념이자 양심”
군대·학교·교정시설 등 공공급식서 채식 보장 안 돼
정부 “현실적으로 어려워…대체식 등 대안 모색할 것”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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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달 12일, 녹색당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하 공감), 동물권행동 카라 등 30여개 시민단체가 진정인 4명과 함께 군대 내 채식권 보장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채식주의는 단순한 기호가 아닌 동물 착취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자 양심”이라며 “채식선택권 보장은 채식인들의 행복추구권과 건강권, 양심의 자유 등과 결부돼 있다”고 주장했다.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보통 육류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프루테리언(Fruitarian, 과일, 곡식 등 열매만을 허용), 비건(Vegan, 과일, 곡식을 포함해 뿌리, 줄기, 잎 등 채소까지 허용), 락토(Lacto, 과일, 곡식, 채소, 유제품까지 허용), 오보(Ovo, 과일, 곡식, 채소, 달걀까지 허용), 락토-오보(Lacto-Ovo, 과일, 곡식, 채소, 유제품, 달걀까지 허용), 페스코(Pesco, 과일, 곡식, 채소, 유제품, 달걀, 어패류까지 허용), 폴로(Pollo, 과일, 곡식, 채소, 유제품, 달걀, 어패류, 가금류까지 허용),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평소에는 비건이나 상황에 따라 육식) 등 여러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종교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가축 사육으로 인한 동물권 문제, 환경오염 등 윤리적 문제로 보고 양심·신념에 따라 채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대·학교·교정시설 등 공공급식을 하는 곳에서 채식 식단을 보장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육군훈련소 11월 식단을 보면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밥과 김, 과일 등이 전부다. 유제품은 물론 액젓이 들어가는 김치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무를 하는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군에서 별도의 채식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조리병을 대상으로 채식 교육과 조리인력, 조리시설 확보를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며 “인권위에서 제도개선권고가 온다면 내용을 검토해 조리병 대상 채식 교육과 조리 인력·시설 확보를 위한 예산확보 등 채식 식단 보장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도개선권고 전이라도 예산 범위 내에서 조리병 대상 채식 교육,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있는 대체식 제공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학교에서도 채식 급식을 제공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부산·광주광역시의 경우 관내 초·중·고등학교에서 주 1회 채식 급식을 시행 중이며, 부산시에서는 학생들이 선택할 경우 우유 급식을 채소·과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전면적인 채식 급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8년 6월 한국채식단체연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14개 지역 15명의 교육감 후보들에게 학교 급식에서 채식 선택권 보장에 대해 질의한 결과 △적극 공감 1명 △수요 있을 시 채식메뉴 제공 5명 △현실적 어려움 있으나 건강, 인권, 다양성 측면에서 적극 고려 5명 △수요파악 및 공급가능성 검토 필요 2명 △현실적으로 어려움 1명 △무상급식 우선 실시 후 검토 1명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답변 내용으로 볼 때 학교 급식에서 전면적인 채식 급식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식단을 구성하기 때문에 특정 학생에 맞춰 식단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종교식이 필요한 학생은 특정 지역에 몰려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영양사·영양교사들이 이를 고려해 식단을 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청이나 학교별로 학부모 의견 등을 수렴해 주 1회 채식식단을 구성해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면서 “학교별로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채식식단을 완전 보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채식을 요구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영양사·영양교사들이 그에 맞는 대체식을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와 교육부 모두 공공급식의 특성상 채식 식단을 따로 준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대체식 준비를 대안으로 내세웠지만, 한정된 예산 내에서 준비되는 대체식으로 온전한 영양을 공급받기는 부족하다.

교정시설에서는 채식을 보장받기가 더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2년 교도소에 복역 중인 채식주의자가 제기한 진정에서 “채식주의에 대한 일관된 행동과 엄격한 수용생활 태도는 양심에 근거한 것 외에 달리 보기 어렵다”며 법무부에 채식 식단을 마련하도록 권고했으나 법무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집단 급식이 이뤄지는 교정시설의 특성과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권장하는 ‘한국인 영양섭취기준’ 등을 고려할 때 채식을 요구하는 수용자에 대한 개별적인 처우는 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수용자의 건강권 등을 위해 처우상 특히 필요한 경우 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개인적 특성을 고려해 급식을 제공하는 사례는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할랄(무슬림 식단) 등 종교식 제공에 대해서는 “종교에 따라 급식을 구분해 제공하고 있지는 않으나, 수용자 중 무슬림에게 돼지고기를 제외한 식단을 제공하는 등 문화를 고려해 급식하는 경우는 있다”며 “채식·종교식 식단 등에 대한 개선 대책은 수용자의 건강관리와 교정급식의 특성 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공급식에서 채식이 보장되고 있지 않아 채식주의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채식권이 보장되지 않아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먹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먹게 돼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등 채식인의 권리가 침해되기도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행복 추구권에 따라 공공 급식에서 채식권에 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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