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서 홍콩 시위 지지 목소리 커져
한국도 대학생·청년 중심으로 연대 확산
홍콩, 민주화 롤모델 한국 정부 연대 호소
‘묵묵부답’ 한국 정부, 홍콩 호소에 응답할까

경찰에게 양손을 결박 당한 홍콩 시위 참여 시민 ⓒAP/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홍콩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 친중 중심의 ‘범죄인 인도법’에 대한 저항을 도화선 삼아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 확보를 위한 시민들의 싸움이 반년 째 이어지고 있다.

경찰과 정부의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모르는 홍콩 시민들의 간절함에 세계 곳곳에서 지지와 연대가 잇따르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와 온라인에서는 ‘Pray for HongKong(홍콩을 위한 기도)’ 등 응원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으며, 실제 연대 집회가 열리고 있는 국가와 도시도 있다.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도 공식 석상에서 홍콩 시위에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힘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열에 한국 정부는 빠져있다. 국내에서도 대학생과 청년 등을 중심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이 점점 확대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 연대 목소리를 내주길 염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한국 정부는 수개월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 등 혁명의 역사를 겪어온 한국 정부가 홍콩의 인도주의 및 정치 위기를 외면하지 않길 바라며 연대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 지지를 호소하는 미국 상원에서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 <사진 출처 = 미국의소리방송 중국어판 캡처>

홍콩은 혼자가 아니다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 시위는 SNS와 외신 등을 통해 다른 국가로 일파만파 확산됐다.

홍콩 대표 언론인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홍콩에서 100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열렸던 지난 6월 9일 미국과 캐나다, 호주, 독일, 대만, 일본 등 12개 국가 및 지역·29개 도시에서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연대 집회가 열렸다.

홍콩 출신 이민자 다수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 벤쿠버에서는 수백명의 집회 참여자가 중국 총영사관 앞에서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상징인 노란 우산을 들고 송환법 반대 구호를 외쳤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도 60명의 시민이 노란 우산과 함께 송환법 반대를 의미하는 ‘반송중’(反送中) 등의 피켓을 들고 연대 시위를 벌였다.

연대는 날이 흐를수록 더욱 확대됐다. 중국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앞둔 주말인 지난 9월 28일, 29일에는 미국과 영국 등 24개국 65개 도시에서 전 세계 연합 반 독재 연맹을 목적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3달 사이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Pray for HongKong’(홍콩을 위한 기도) 등 메시지를 해시태그 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지와 연대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계 주요 7개국 정상들도 홍콩 시위지지 의사를 공식화했다.

지난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프랑스에서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마지막 날인 26일 G7 정상들이 공동선언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문을 통해 G7은 “1984년 홍콩에 대한 중·영 (홍콩 반환) 협정의 존재와 중요성을 재확인하며, 폭력(사태)을 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19일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 이른바 홍콩 시위 지지법까지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현재 미국은 홍콩에 대해 관세·무역·비자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다르게 특별대우하고 있는데, 미국 행정부가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에 특별지위 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이 법안의 골자다. 이 밖에도 인권유린 등 기본적인 자유를 억압하는 당사자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홍콩을 통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해온 중국으로서는 압박을 느끼고 특별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번 민주화 시위를 겪으며 후퇴했다고 평가되는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홍콩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박도형 공동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홍콩 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며 “이제 국경은 사라지고 하나의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경 좌우 이념과 같은 고리타분한 경계는 사라지고 정의에 대해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에 열린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대학생·청년 긴급행동 ⓒ뉴시스
지난달 23일에 열린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대학생·청년 긴급행동 ⓒ뉴시스

국내서도 일렁이는 지지·연대 물결

국내에서는 대학생과 청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홍콩 시위 지지·연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홍콩 시민들을 향한 응원 문구를 적을 수 있도록 교내 중앙도서관 벽면에 ‘레넌 벽’(1980년대 체코 공산정권 시기, 민주화를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프라하의 벽에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노래 가사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구호를 적어 저항하던 데서 유래)을 설치했다. 또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침묵 행진을 벌였다.

연세대 학생들은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한국인 대학생들’ 연대를 조직하고 10월 24일, 중국 정부의 홍콩 인권 탄압에 분노하고 홍콩 시민들의 투쟁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게시했으며, 서울대에 이어 두 번째 침묵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홍콩 시위를 계기로 연대체도 구성됐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행동’(이하 아시아 공동행동)은 이번 사태의 문제는 시위대의 과격함이 아니라 반대자들을 무력으로 파괴하려는 국가 폭력이라고 규탄하며 홍콩 시민들의 5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학생, 청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홍콩 시위 연대에 대해 박도형 공동대표는 “지금의 청년들은 부정의한 것은 부정의하다,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며 “국익이나 정치이익, 좌우이념 등과 같은 낡은 프레임에 둘러싸여 있지 않고 보편적 인권,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인권을 목표로 하다 보니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1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6년 1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들 ⓒ사진공동취재단

홍콩 민주화 롤모델은 한국

홍콩 시위는 한국에 그다지 낯설지 않다. 수십년 전, 그리고 최근 3년 전까지도 한국에서는 홍콩 시위와 비슷한 민주화 운동, 혁명이 있었다.

1980년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촉구하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신군부는 계엄군을 투입해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총격해 학살했다.

5.18 민주화 운동이 기폭제가 돼 1987년 6월에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범국민적 민주화 운동이 20일 가까이 이어졌다. 당시에도 신군부는 강경 탄압으로 일관했으나 시민들은 끝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3년 전인 2016년에도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최순실 게이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분개한 국민들은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반년간 이어갔다. 경찰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끝내 이뤄냈다.

홍콩 시민들은 한국을 민주화 시위의 롤모델로 삼을 정도다. 실제 영화 <택시운전사>, <1987> 등과 같이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를 보며 공감하는 한편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민주화 투쟁을 이어온 한국 시민들의 정신을 통해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홍콩 시민들은 그 어느 국가보다 성공적인 혁명의 역사를 쓴 한국의 연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홍콩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은 지난 10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현해 “한국 사회가 홍콩인들이 계속 싸워나갈 영감을 주는 미래의 사회모델”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오늘의 한국이 내일의 홍콩이 되길 바란다”며 “홍콩도 한국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렸으면 좋겠다. 자유를 공짜로 누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 놓인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희생된 시민을 추모하는 꽃과 안전모 ⓒ뉴시스
지난달 17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 놓인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희생된 시민을 추모하는 꽃과 안전모 ⓒ뉴시스

대답 없는 한국 정부

한국의 홍콩 시위 지지자들은 중국 유학생들로 추정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대자보와 현수막이 훼손되고 직접적인 마찰을 빚으며,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홍콩 시위가 격화되자 정치권에서도 하나둘씩 이에 대한 입장을 나타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금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중국 정부가 약속한 자치권을 온전히 보장해 달라는 것으로 이해된다”며 “중국 정부가 이미 약속한 바에 따라 홍콩 시민들의 삶을 자치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존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고, 침묵할 수 없다”며 “홍콩 시민의 자유를 향한 목숨 건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원들도 자발적 모임을 만들고 “홍콩 경찰은 폭력적 시위를 유도하는 행위인 어떠한 무력적 수단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홍콩 경찰은 실탄 발포와 성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홍콩 시민과 국제사회에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다. 우리 정부는 홍콩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의 두드림에도 수개월째 무응답으로 일관 중이다.

일각에서는 홍콩 시위를 지지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중국과의 무역, 경제 등 관계에 있어 타격을 우려해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정부와 여권이 중국 눈치만 보면서 탄압받는 홍콩 시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도형 대표는 “국익도 중요하고,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이해한다”면서도 “한국은 그동안 홍콩과 비슷한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안고 가고 있다. 우리는 부정의한 것에 분노하고 약자에 공감할 수 있는 국가를 원한다”며 정부 차원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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